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폭염/한반도 (문단 편집) ==== [[1910년대]] ==== * [[1913년]] 여름, 10월 초, [[일제강점기|일제강점기 조선]]: 서울은 초이상 저온으로 극값이 31.7°C에 불과했고 일제강점기 중 유일하게 폭염이 없었으나 대구는 8월 17일에 '''38.9°C'''의 기록이 나타났다. 그렇게 저온이 만성적으로 나타났던 1913년 특징상 더위가 빨리 물러가는 듯 싶었는데, 9월 말~10월 초에 다시 더위가 찾아와서 3일 최고기온이 '''30.1℃'''에 일평균 '''21.9℃'''로 때늦은 더위[* [[8월 22일]] 이후로 다시 30℃대를 기록. 그리고 9월 중순, 하순에 최고 30℃도 더운데, 점점 서늘함이 가속화되는 10월 초라면 더욱 덥게 느껴진다.]가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때늦은 더위가 으레 그렇듯이 비구름 때문에 바로 기온이 내려가 더위가 오래가진 못 했다. 서울에서 10월에 유일하게 30도를 남은 사례이다. * [[1914년]] 여름, 조선: 6월부터 이른 더위가 찾아왔으며, 24일 '''35.0℃'''까지 치솟았다. 그후 7월 하순에 재차 찾아온 더위로 '''35.6℃'''를 기록하며 연중 가장 높았다.[* 한편 이 즈음에 유럽에서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였다. 후술할 1939년 역시 35℃라는 늦더위가 찾아왔을 때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였다.] 8월에도 더위가 있었으며, 9월은 태풍의 영향 탓인지 초순 평균기온이 당대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2023년 9월 초순이 경신할 때까지 109년 동안 1위를 지켰을 정도. * [[1915년]] 여름, [[일제강점기|일제강점기 조선]]: 8월 5일 대구 최고기온 '''39.0°C'''. 비슷한 시기 서울도 '''34.8℃'''를 기록했다. * [[1917년]] 여름, [[일제강점기|일제강점기 조선]]: 강한 [[라니냐]]로 인해 시작된 [[이상 저온]]으로 1917년 1월은 서울에서 [[1936년]], [[1963년]]과 더불어 가장 강한 [[한파]]가 기승을 부렸고 그 여파로 봄에도 1981년~2010년 기준은 물론 당시 기준의 평년보다도 낮았으나 6월부터 갑자기 더워지더니 16일에 결국 '''36.7℃'''를 기록하고 만다.[* 얼마나 높은 수준이냐면 서울 6월 최고기온 '''상위 2위'''이며(1위는 후술할 1958년이다.) 2012년 8월의 서울 최고기온하고 같으며 [[이상 고온]]으로 취급되는 2020년 6월 최고기온인 35.4℃보다 높고 심지어 [[2016년 폭염]]이 발생한 2016년 8월 서울의 최고기온인 36.6℃보다도 높고 2019년 연중 서울 최고기온보다 고작 0.1°C밖에 낮지 않았다. 시기도 굉장히 빠른 것이, 앞서 언급한 [[1949년]], [[1958년]] 등보다 더 빠르다.][* 이 폭염의 근원은 아무래도 대륙에서 내려온 난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태평양에서 왔다기엔 비슷한 시기의 [[나가사키]]에선 폭염은 커녕 27℃도 못 미치는 날씨를 보여서 어폐가 있고,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대구 등지에선 32℃에 그치는 등 오히려 난기의 기세가 서울보다 약했기 때문. 거기다 6월 16일경의 서울 일평균기온과 최고기온의 격차도 컸다. 다시 말해 원활한 기온 상승과 하강을 방해하는 습기와 구름이 별로 없어야 가능한 일인데, 그러려면 습기를 머금을 일이 별로 없는 대륙 난기여야 하기 때문.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 시절의 이른 폭염은 기세가 센 대륙 난기+습기, 구름 없이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기온 상승을 부채질하는 풍향 등이 맞물려 그와 같은 기록을 낸 것으로 보인다...] --급발진 甲-- 장마도 7월 중순에 어중간하게 끝나서 2018년급은 아니지만 다소 더위가 강했다. 이후 7월말~8월초에는 더위가 가장 심해 7월 31일, 8월 2일 각각 경성 최고기온 36.6℃가 관측되었다. [[대구광역시]]는 7월 31일 '''37.7 °C''', 다음날인 8월 1일에는 '''37.3 °C'''가 기록되면서 서울보다 한층 심화된 폭염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8월 중순부터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서 더위가 물러갔고 가을에는 또다시 [[이상 저온]]이 기승을 부렸다.[* 9월 늦더위도 없었고 평균기온도 다소 낮았으며 10월은 일제치고는 조금 낮있으나 2018년 10월 수준을 보였으며 10월 말부터 기온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해 11월은 [[1912년|5년 전]]에 필적할 정도로 강했다. 그로 인해 1917~1918년 겨울도 역대 기록들이 경신되었다. 물론 1918년 2월은 [[라니냐]]가 끝나면서 중순의 반짝 [[한파]]를 제외하면 포근했다.] * [[1918년]] 여름, [[일제강점기|일제강점기 조선]]: 앞뒤 년도보다 최고기온 극값이 높지 않으나 서울은 36 ℃를 넘는 폭염이 이 해에도 찾아왔다. 7월 중순은 [[이상 저온]]이 있어서 평년보다 낮았지만 이후 7월 하순부터 급격히 올라 서울은 25일에 '''36.1 ℃'''를 기록해 36도를 넘기며 한해 가장 높은 극값을 기록했고 이후에 30도 밑으로 급락하며 좀 진정되나 싶었더니 8월 7일에 35.2 ℃를 기록했다. 이후 또 기온이 낮아져서 9월은 [[이상 저온]] 현상이 다시 찾아온다.[* 1918년의 더위는 아마도 동풍으로 인한 [[푄 현상]]을 연상시키는 듯한 더위가 이어졌다. 실제로 서울에서 36도가 관측된 7월 25일에는 [[강릉시]]의 최고기온이 26.6 ℃에 그쳤다. 8월 7일도 27 ℃의 최고기온을 보였고 이후 강릉은 기온이 더 낮아져서 8월 9일부터 최고기온이 '''19.1 ℃로 20도에도 못 미치는''' 기온을 기록하며 급락했다. 또한 강릉에서는 7월 평균기온이 '''20.9°C'''로 강한 이상 저온을 보였다. [[이상 저온/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한편 [[대구광역시]]는 전해와는 다르게 그닥 큰 폭염을 보이지 않았지만 8월 6일에는 34.9 ℃를 기록했다. * '''[[1919년]] 여름, [[일제강점기|일제강점기 조선]]''': 7월 초는 그맘때 기온이었으나 13일부터 점차 30도 이상으로 오르더니 18일에 서울은 35.3 ℃까지 올랐다. 이후 계속 30~32 ℃의 최고기온을 보이다 27일 경성은 35 ℃를 다시 기록하였으며 7월 말인 31일에는 35.9 ℃, 다음 날인 8월 1일에는 '''37.5 ℃'''로 1919년 한해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서울에서 이보다 더 높은 해는 [[1939년]], [[1943년]], [[1949년]], [[1994년]], [[2018년]]밖에 없다! 아마 이 기록은 동풍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동시기 강릉은 큰 더위가 없었고 제주도 남서쪽에 태풍(1940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최근 사례로 보자면 태풍 [[바비(2020년 태풍)|바비]]가 접근하고 있을 당시인 [[2020년]] 8월 25~27일의 날씨와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이 태풍은 바비와는 다르게 대한해협을 가로질러 빠져나갔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진 100년 뒤 [[2019년]] 8월의 최고 극값보다도 0.7℃ 높다.] 밤에도 열기가 식지 않아 8월 2일 최저기온은 26.4 ℃로 서울에서 '''[[열대야]]가 관측되었으며'''[* 지금이야 열대야는 매년 여름마다 일상적인 수준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열섬 현상]] 등이 없어서 열대야를 기록했다는 것은 강한 더위였다. 게다가 1919년은 열대야 기준보다 1.4°C나 높아 기록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최고기온이 낮아지긴 했으나 33~35 ℃를 넘는 폭염이 중순까지 기승을 부리다 10일부터 서서히 다시 오르더니 12일에 '''36.5 ℃''', 다음 날인 13일에는 '''{{{#red 37.3°C}}}'''까지 올라 8월 초의 악몽을 생각나게 하는 더위가 다시 찾아왔다. 이후 다시 소강 상태에서 18일부터 34 ℃를 다시 기록하더니 '''20일까지 35.7 ℃'''를 기록하며 8월 하순이 시작되는 시기까지도 더웠다.[* 이때 서울의 최저기온은 오히려 평년보다 낮아서 최저기온은 빨리 떨어져 20 ℃ 이하를 기록했는데 최고기온은 34~35 ℃까지 오르는 15~17 ℃ 차이의 강한 [[일교차]]를 보여 특이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다시 최저기온이 올라서 20 ℃ 이상이 기록되었으며 8월 말까지 이어졌다.] 8월 21일의 33.9 ℃ 이후 서서히 폭염의 기세가 꺾였으며 이후 9월은 [[2018년]], [[2020년]]처럼 평범한 날씨를 보였다. 한편 [[강릉시]]에서는 서울에 폭염이 찾아오지 않은 7월 21~25일 사이에 폭염이 찾아왔는데, 22~25일 기간 동안 최고기온 35~36 ℃를 연일 기록했으며, 23일에는 '''36.4 ℃'''로 1919년 한해 가장 높은 [[강릉시]]의 기온을 기록했다. 이후 8월 말까지 최고기온이 떨어지는 속도가 느려서 28일에는 33.3 ℃의 늦더위가 오기도 했지만 거의 그맘때 수준이었고 34 ℃ 이상의 폭염기록은 없었다. 또한 [[대구광역시]]는 [[1917년]]보다는 최고기온이 조금 낮았지만 전년도보다는 더웠으며 7월 21~26일까지 계속 최고기온 35 ℃ 이상을 기록하더니 26일에 '''35.9 ℃'''까지 오르고 급락해서 강릉과 비슷하게 거의 그맘때 기온으로 내려갔다. 정리하자면 일제강점기 치고 당시 평년보다 꽤 더운 여름이었으며 서울의 평균기온은 '''26.3 ℃'''로 [[2015년]] 8월의 평균기온과 같고 공동 기록된 년도들을 합한 순위로는 상위 14위이며 [[열대야]]가 드물었던 당시 치고는 꽤 높은 평균기온을 기록했다.[* 1919년 서울의 열대야는 8월 2일 26.4 ℃ 기록밖에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