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란드/경제 (문단 편집) === 인민공화국 시대 === [[제 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4년 7월 22일 출범한 폴란드 민족해방위원회[* 소련의 지원을 받은 단체. [[폴란드 망명 정부|제2공화국 망명정부]]와 대립했다.](Polski Komitet Wyzwolenia Narodowego)의 후신인 [[폴란드 인민 공화국]](Polska Rzeczpospolita Ludowa)은 전쟁기간 동안 파괴된 [[바르샤바]]를 비롯하여 전쟁기간 동안 파괴된 수많은 폴란드의 도시와 산업시설들을 재건하는 데에 힘을 썼다.[* 바르샤바의 경우 그 피해가 워낙 심각하여 1948년까지 [[우치(폴란드)|우치]]가 폴란드의 임시 수도를 맡았다.] 전후 폴란드의 지도자이자 [[폴란드 통일노동당|폴란드 통일노동자당]](Polska Zjednoczona Partia Robotnicza)의 서기장으로 부상한 [[볼레스와프 비에루트]](Bolesław Bierut)의 주도 하에 스탈린화 정책을 포함하여 강력한 공업화 정책과 농업집단화 정책[* 그러나 폴란드 농민들의 저항이 워낙 완강하여 결국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로 편입된 독일 영토에서 제한적인 농업집단화 정책을 실시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루지 못했다.], 경제의 중앙집권화 등 [[공산주의]]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또한 소련에게 잃은 동부 영토에서 강제이주된 폴란드인들을 마찬가지로 독일로 강제이주된 독일인들이 떠나간 구 독일 동부 지역에 정착시켰다. 하지만 초기에 마치 약빤 것처럼 성장하던 폴란드의 경제는 얼마가지 않아 공산주의 경제 자체의 결함을 드러내면서 정체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무리한 공업화정책으로 인해 정작 폴란드인들은 궁핍에 시달렸고 이는 반소 성향이 심하던 폴란드인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이후 1953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하고 소련에서 [[니키타 흐루쇼프]] 주도 하에 스탈린 격하 운동이 벌어지며 때마침 폴란드 내의 볼레스와프 [[비에루트]]도 1956년 3월 12일 모스크바 방문 도중 시의적절하게 죽으면서 폴란드 내에 급속도로 진행되던 공산화도 정체를 맞게 된다. 이후 3달만인 1956년 6월에는 폴란드 서부의 핵심 공업도시인 [[포즈난]](Poznań)에서 정부 당국에 반발하는 유혈 봉기[* 안 그래도 궁핍에 시달려 울분에 차 있는 포즈난 노동자들에게 폴란드 당국이 약속한 보너스 임금 지급을 거부했고 이게 노동자들의 신경을 '''정말 제대로 건드렸다'''.][* 한국에는 보통 이 봉기가 '반공 봉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과는 꽤 거리가 있다. 봉기에 참여한 폴란드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임금 인상 및 보너스 지급과 노동자 평의회 설치였지 공산주의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폴란드 노동자들이 부른 것은 다른 노래도 아니고 '''[[인터내셔널가]]'''였다. 한마디로 폴란드 노동자들은 관료화된 공산당 엘리트를 상대로 계급투쟁을 벌인 것.]가 발생했고, 결국 이후 폴란드 서기장에 취임한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Władysław Gomułka)[* 원래 폴란드 민족주의자라는 이유로 권력에서 숙청당했다가 폴란드인들의 지지를 얻고 복귀했다.]가 자유화 조치를 시행하면서 폴란드인들의 분노도 어느 정도 풀렸다. 70년대, 특히 78년 경에는 [[CIA]] 연구를 포함해 적지 않은 사료에서는 폴란드의 명목 1인당 소득이 최소 4천 달러를 넘어가며 그에 따라 총 GDP나 GNP도 15위 안에 들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CIA 등의 방법론과 관해서는 당시 이용할 수 있었던 정보의 제약도 심하고 데이터 산정시 공산국가의 소련의 공식 가격을 이용하거나[* CIA도 바보는 아니라 보정을 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정확하진 않았다.] PPP 방식을 사용하는 등 등 오류의 여지가 심각했던 바 이와 관해서는 중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즉, 이 수치는 공산권의 GDP 관련 수치를 뻥튀기한다 볼 수 있다.[[http://www2.palomar.edu/users/llee/Economics%20110%20Chapter%2012%20%20%20The%20Communist%20Economy%20of%20the%20Former%20Soviet%20Union.doc|#]], [[http://www.google.co.kr/url?sa=t&rct=j&q=&esrc=s&source=web&cd=9&ved=0ahUKEwiZwI-Q3sfKAhWmqqYKHR7eAKQQFghCMAg&url=http%3A%2F%2Fehf.koreaexim.go.kr%2FFile.down%3Ffile%3D%2Fattach_file%2Fikcf%2Feconomy%2Fpds%2Fsub%2F08_Autumn_Kim.pdf&usg=AFQjCNEzZ-f8wkttMRim0sPSp6StuvOVnw&sig2=SDG_R0gDxudus_h3iPKefQ&bvm=bv.112454388,d.dGY&cad=rjt|#]][* 소련의 경우 공식 환율은 시기나 학자들의 연구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시장 환율의 1/10, 공식 가격은 시장 가격의 1/2~1/3 수준이었다.] 소련 해체 이후 UN이나 IMF에서는 GDP를 산정하는 국제기준인 국민계정체계(SNA)에 따라 몇몇 공산권의 명목 GDP 등을 다시 계산했다. 이에 따르면 70년대~80년대 초반의 폴란드 1인당 GDP는 1,000달러~2,000달러 수준으로 대한민국과 대체로 비슷했다는 결론이 나오며 총 GDP는 당시 터키와 비슷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IMF의 자료[[http://countryeconomy.com/countries/compare/turkey/poland?sc=XE15|#]], [[http://www.econstats.com/weo/CPOL.htm|#]]][* UN의 1인당 GDP 자료[[http://data.un.org/Data.aspx?q=gdp+poland+current+&d=SNAAMA&f=grID%3a101%3bcurrID%3aUSD%3bpcFlag%3a1%3bcrID%3a616|#]]][* UN의 총 GDP 자료[[http://data.un.org/Data.aspx?q=gdp+poland+current+&d=SNAAMA&f=grID%3a101%3bcurrID%3aUSD%3bpcFlag%3a0%3bcrID%3a616|#]]] 1980년대엔 경제난이 극심하였다. 이에는 외화 운용 실수가 컸다. 70년대 초반 에드바르트 기에레크(Edward Gierek) 정부하에서 경제개방정책을 펼쳤는데 이 때 서구에서 거액을 빌려와서 공장을 짓는 것까지는 좋았다. 서구에서 폴란드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경제가 다시 급성장했다. 문제는 내적으로는 계획경제면서 외적으로는 서구식으로 운영했고, 거기에 '''[[오일쇼크]]'''로 수출이 위축된데다가 금리인상까지 겹치면서 거액의 외채를 떠안게 되고 결국 외채를 갚으려고 복지정책을 줄이다가 혼란을 자초했으며 대규모의 폭동과 반정부운동이 여러 번 일어나기도 하고 마이너스 성장을 겪기도 하였다. 특히 1956년의 포즈난 폭동과 1980년대에 이어진 전국적인 노동자 파업은 경제는 물론 폴란드의 정치체제를 뒤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 체제 자체[* 적어도 1956년 [[콘스탄틴 로코솝스키|로코솝스키]]가 쫓겨날 때부터 군부가 전면에 나서는 80년대까지]는 그다지 억압적이지 않았다. 동유럽 국가 치고는 정치를 제외하면 국민의 자유가 비교적 보장되었으며 인구 다수가 서구 유럽국가의 여행 경험이 있을 정도로 대외정보(서구사정)에 밝았다. 그래서 공산정권 붕괴 후에도 폴란드 공산당인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은 과거청산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들은 의회주의를 도입하고 민주좌파연합(Sojusz Lewicy Demokratyczne)으로 이름을 바꿔 계속 존속할 수 있었으며, 후에 집권도 가능했을 정도. 그러나 2004-2005년의 부정부패 사건으로 인해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졌고 2005년 총선에서 10%대의 득표율을 확보하는데 그치면서 수권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현재는 지지율 10% 미만의 정당으로 몰락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