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폼페이 (문단 편집) == 폼페이 최후의 날 == '''서기 79년 8월 24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52px-Mt_Vesuvius_79_AD_eruption_3.svg.png]] 폼페이로 쏟아진 [[베수비오산]] 화산재의 영향권 추측 지도 [youtube(dY_3ggKg0Bc)]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된 폼페이 최후의 날[* 멜버른 박물관 제작.] 통념과는 달리 로마인들도 [[화산]]의 위험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데, 당시 로마령이던 [[시칠리아]] 섬에 당시도 활화산이었던 [[에트나#s-1|에트나 화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베수비오 화산이 당시에 수백 년간 폭발하지 않았기에, 로마인들이 [[휴화산|겉으론 화산이 아닌 듯 보이는 화산]]이 잠에서 깨어 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몰랐다고 이해하는 것이 올바르다. 게다가 폼페이는 [[이탈리아]] 최대의 화산인 베수비오 화산과 대략 10km 거리에 위치한 도시였으므로, 사실상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껴안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폼페이는 화산폭발이 일어나기 17년 전인 서기 62년에 대규모 [[62년 폼페이 지진|지진]]이 발생해 포룸, 유피테르 신전, 목욕탕 등 공공건물을 포함한 대부분 건물이 지진 피해를 입었고, 화산폭발 당시에도 그 피해가 다 복구되지 않았다. 지진 직후 [[네로]]가 이곳을 시찰하면서 가망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 날, 서기 79년 8월 24일은 불의 신 [[불카누스]][* [[그리스 신화]]의 [[헤파이스토스]]에 해당한다. 화산을 뜻하는 [[영어]] 단어 volcano(볼케이노)의 어원이 된다. 좀 더 정밀하게 따져보면, 불칸 신의 이름에서 화산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vulcanus가 만들어졌고, 이게 [[이탈리아어]] vulcano로 이어졌다가, 다시 이게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로 차용되어 volcano가 됐다고 한다.[[http://www.etymonline.com/index.php?term=volcano|#]]]를 기념하는 축제일이어서 도시 내에서 [[축제]]가 진행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상한 구름이 밀려오자 시민들이 동요했으며, 이에 [[대 플리니우스]] 등이 해변으로 가서 조사를 하던 중 화산이 폭발했다. 분화로 [[화산재]]가 하늘을 덮은 뒤 18시간 동안 무려 수백억 톤에 달하는 뜨거운 [[화산쇄설류]]가 도시로 쏟아져 내려왔고 폼페이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도시는 3m 가량이나 되는 [[화산재]]로 뒤덮였고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 이탈리아-영국 공동 연구진은 화산 폭발 당시 화쇄류(Pyroclastic Flow) 지속 시간을 초고온의 화산재와 유독 가스 등이 약 15분간 분출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https://media.naver.com/press/001?sid=104#lnb|#]] 이 분화로 폼페이 주민들이 모조리 [[몰살]]당했다고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오해다.[* 1980년대 초중고 국내 과학 및 지리 관련 교과서에서 화산 폭발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폼페이에서 약 1만 6천 명이 거의 몰살되었다.'고 나오던 적도 있다. 7차 교육과정 당시 두산동아 중학 영어 교과서에서는 2만 명으로까지 나왔다.] 실제로는 당시 폼페이 주민은 1만6천~2만 명 정도로 추정하는데, 사망자는 대략 2천 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즉 나머지 주민들은 [[탈출|어떻게든 도시를 빠져나와 피신했다]]는 뜻이다. 그래도 인구 중 적어도 10%는 사망하고 부상자는 더 많았을 테니 궤멸적인 피해라는 사실임은 변함없지만.[* 한국 최악의 태풍으로 꼽히는 1959년 [[사라(태풍)|사라호]] 태풍보다도 인명피해가 더 크다!] 사실 인명피해는 폼페이 옆 도시인 헤르쿨라네움 쪽이 더 컸는데, 이 쪽은 분화 직후 화산재 구름 방향에서 빗겨갔으나 나중에 [[화산쇄설성 밀도류]]와 [[화산재]]에 묻혀버려서 덜 유명하다. 폼페이 유적이 화산재가 2~3m 정도 쌓인 반면 헤르쿨라네움은 두께가 '''20m'''나 되는 화산 쇄설물에 파묻혔다. 또 폼페이가 시내의 시민들이 발굴된 반면 헤르쿨라네움은 1980년대에 바닷가에 서 있던 아치 밑에서 해골 수백 구가 발견되었기에, 주민들이 해안으로 피난했다가 밀려온 화산재와 가스로 한꺼번에 죽었다고 추정한다. 이 두 도시와 더불어 인근에 있던 오플론티스와 스타비아이도 함께 화산폭발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화산 분출물이 남동쪽으로 집중되어서, 네아폴리스([[나폴리]])를 비롯한 북서쪽 지역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또 다른 천운으로, 당시 화산 분출물을 제외한 기상 상태는 양호했고 화산 폭발의 충격파로 인한 [[쓰나미]]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대피할 수 있었다. 만약 쓰나미까지 발생했다면 더 많은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물론 로마에서도 이 폭발에 대해 연구했던 사람은 있어서, [[백과사전]] 격인 '[[박물지#s-3|박물지]]'를 남긴 문인이었던 [[대 플리니우스]] [[제독]]이 이 폭발을 보고 기록한 것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大플리니우스는 당시 폼페이 인근 미세눔에 주둔하던 [[해군]] [[함대]] [[사령관]]이었는데, 폭발을 기록한 후 휘하 함대를 이끌고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주민들을 구조하다가 화산 가스에 중독되어 향년 56세로 현장에서 [[순직]]했다. 후에 조카 [[소 플리니우스]]가 쓴 편지를 보면 그의 시신은 수습된 듯하다. 大플리니우스가 특별한 외상이 아닌 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 보니 '너무 평온해서 주무시는 것 같았다'고 적었다. 그 외에 나폴리 만 건너편에서 화산 분화를 지켜보던 18세의 [[조카]] 小플리니우스[* [[트라야누스]] 황제의 신임받는 신하로 유명하며 비티니아 [[총독]] 재직시 트라야누스 황제와 주고받은 편지가 지금까지 많이 남아있다.]가 이 모든 일을 기록에 남겨 현재까지 전해졌다. 그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에 대한 글을 [[타키투스]]의 〈역사〉에 기고했다. 시기적으로는 10년간 로마를 안정화시켰던 [[베스파시아누스]]가 죽고 [[티투스]]가 황제가 된 지 2달 만에 벌어진 참사였다. 티투스 황제는 2년이라는 짧은 재위기간 동안 베수비오 화산 폭발, 로마 화재 등의 여러 재앙 속에도 [[콜로세움]]을 완성시키는 등 재건에 힘쓰다가 세상을 떠났고, 그 뒤로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즉위했다. 그리고 그가 살해당한 후 [[오현제]] 시대가 열렸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76e9a45d75f2c4bd444f8939ecb241f6.jpg|width=400px]] 현대의 베수비오 화산의 모습. 그 후로도 베수비오 화산은 몇 번 분출했다. 마지막 분출은 [[제2차 세계대전]] 말이던 1944년 분출이며, 이후 더는 분출이 없다. 마지막 분출 때는 인근 폼페이 비행장에 [[미합중국 육군]]의 [[육군 항공대|항공대]] 제340폭격비행단(340th Bombardment Group)이 [[이탈리아]] 항복 후 주둔했는데, 78~88대의 [[B-25]] [[폭격기]]가 화산재를 뒤집어 쓰고 고장나 전투불능 상태에 빠졌다. 다행히 큰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도리어 현장을 조사하러 온 [[미합중국 육군/군사경찰|미군 헌병]]들이 아직 굳지 않은 [[용암]]을 보고 [[식빵]]을 나뭇가지에 꿰어 [[토스트]]를 구워 먹는 [[사진]]이 [[https://preview.redd.it/lbmb3j8r74921.jpg?width=960&crop=smart&auto=webp&s=19e0f3dc2f1cb733e47ef68504b7ee03c783ea4c|남아있을 정도다.]] 이 분화로 인해 베수비오 화산을 등산하는 [[강삭철도]]가 파괴되어 폐선했다. 이 철도는 이전에도 화산 분화의 위험성 때문에 사람들이 우려했고, 정부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홍보 노래까지 만들었다. 이탈리아 가곡으로 잘 알려진 [[푸니쿨리 푸니쿨라]][[https://youtu.be/XW0W7j04iRQ|#]]가 그것이다. 베수비오 화산은 [[활화산]]으로 언제든지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베수비오 화산 연구센터를 만들어 마그마 굄의 축적상황 등을 수시로 관측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