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폼페이 (문단 편집) == 발굴 == 화산 폭발로 한 번 망한 이후, 장장 [[15세기]]까지 폼페이의 존재는 사람들에게서 잊혔다. 그러다가 서기 1592년 이탈리아에서 수로 건설을 목적으로 땅을 파다가 폼페이의 유적이 발견되면서, 무려 14세기만에 폼페이가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이후 [[18세기]]인 1748년, 보르보네의 [[카를로스 3세|카를로 국왕]][*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 자녀가 없던 이복형 [[페르난도 6세]]의 사망으로 스페인 왕위를 물려받기 전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의 국왕이었다.] 치세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여러가지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한창 전성기였을 때 갑자기 멸망해버려 전성기 로마의 유물과 유적들이 잔뜩 남아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엄청난 가치가 있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굴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3분의 2 정도밖에 발굴되지 않았다 할 정도. 관광 중 펜스가 쳐져 들어갈 수 없는 지역들이 보일텐데, 이들이 발굴 관련 장소이다. 좋지 않은 이야기도 있는데 빙켈만이 발굴 현장으로 갔다가 인부들이 제멋대로 파헤치는 것도 모자라 장신구가 나오면 몰래 빼돌리거나 왕에게 진상을 하는 바람에 간언했다가 쫓겨나 인부를 매수해 기록했다고. [[파일:external/post.cloudfront.goodinc.com/org_Pompeii-dead.jpg]] 당시 사망한 로마인들의 화석 [youtube(5gbmKGbIeL8)] [[화석]]이라고 표기 했지만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형태의 화석과는 다르다. 기존의 화석은 압력에 의해 신체의 단단한 부분[* 예시로, [[공룡]] 뼈나 [[삼엽충]].]이 그대로 '''돌과 같은 성분으로 변성해 만들어진 것'''으로, 화석 자체가 생물체의 잔재이다. 반면 폼페이 화석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산물이다. 화산재에 묻힌 시체가 부패 등 과정을 거쳐 유기물이 사라진 후 뼈만 남지만 화산재가 비교적 단단하게 퇴적되어 속 빈 공간에 사람들의 형상이 남는다. 그 빈 공간에 거푸집처럼 [[석고]]를 부어 만든 것이 폼페이의 화석이다. 즉, '''일종의 석고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저 사진의 사람 형체는 진짜 사람의 남은 잔재가 아닌 그 형태의 본을 뜬 것이다. 물론 그 내부에 뼈 같은 부분은 남아 있다.[* 화산재가 시체를 덮어서 높은 온도로 시체를 녹여 없애고 그 대신 화산재가 시체 겉에 딱딱한 껍질 형태로 경화되어 화산재 덩어리가 시체 형태로 형성되었다는 [[카더라]]도 퍼져 있지만,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다. 즉, 석고상이 아닌 화산재 덩어리 형태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석고가 충분히 입혀지지 않은 부분에 인골이 노출된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때때로 사람이 아닌 [[http://assets.atlasobscura.com/media/W1siZiIsInVwbG9hZHMvcGxhY2VfaW1hZ2VzLzY2Y2M4YzAzMTRmOTM3YTRhZjEyMTUxYjZmNDA0NzYzMzQ3MzkxOWYuanBnIl0sWyJwIiwidGh1bWIiLCJ4MzkwPiJdLFsicCIsImNvbnZlcnQiLCItcXVhbGl0eSA5MSAtYXV0by1vcmllbnQiXV0/66cc8c0314f937a4af12151b6f4047633473919f.jpg|동물의 화석]]도 발견된다고 한다. 그 외에 나무, 문, 가구, 수레 등의 물체들을 되살릴 때에도 응용되고 있다. 이 석고상을 만들게 된 과정도 극적이다. 폼페이 발굴 당시 오랫동안 묻혀 있어서 건물이나 도로, 물건 등의 보존 상태는 매우 좋았는데 사람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던 중 1860년 이탈리아 국왕이 발굴 책임자로 임명한 고고학자인 주세페 피오렐리가 흙더미 사이사이에서, 주로 건물마다 발견되는 빈 공간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에 석고를 부어보자 사람의 형상이 드러났다고. 최근에는 석고 대신 [[유리섬유]]를 부어넣어서, 형태를 고스란히 보존하면서도 내부의 유골이나 공반유물도 같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내부가 투명하게 비치는 크리스탈 조각상 같은 모습을 생각하면 오산. 작업공정상 그렇게 깔끔하게 나오진 않는다. 이런 석고들 외에도 탄화되어 표면에 빵집 도장까지 생생히 찍혀 있는, 벽돌 오븐에서 발견된 빵과 탄화된 호두, 탄화된 무화과 열매가 그릇째로 담긴 채로 발견되기도 했으며, 달걀이나 화려한 보석류도 발굴되었다. 특히 보석류는 유난히 같은 모양이 많아서 당시 인기있는 형태는 대량생산되어 팔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이 발굴지역은 관광지로 보존되어 있는데, 천년 넘게 화산재에 뒤덮혀 외부와 차단되어 있었던 관계로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당시 죽은 사람의 모습 또한 남겨져 있는데, 사망 당시의 자세를 비롯해 옷주름과 표정까지 '''고스란히''' 남겨져 있어 비극성을 더한다. 당시 화산재에 말 그대로 '''순식간에 뒤덮여서''' 그때의 그 표정 하나까지 전부 남게 된 것. 발굴된 사람들의 형체 중에서 유명한 것은 두 사람이 껴안은 모습의 유해로 폼페이의 연인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후 밝혀진 바로는 두 사람 모두 남자였고 죽어가면서 우연히 서로 가까이 붙어 생긴 것일 뿐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관광객 유치와 관리 소홀로 2010년에 들어 유적 중 '검투사의 집'이 무너지는 등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57&aid=0000216336|여러가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4756005|악재]]를 겪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는 [[유럽연합]]과 '폼페이 복원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전문 복원 기술은 [[독일]]이, 고고학과 역사적 고증은 이탈리아가, 그리고 지리와 환경 자문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3&aid=0002571338|영국 옥스퍼드 대학 팀이 책임지기로 하였다.]] [[파일:로마 폼페이 2.jpg]] 술집이 매우 많다. 직접 가보면 술집처럼 보이는 게 그다지 없는데, 집 내부에 [[http://melindatrips2010.files.wordpress.com/2011/01/pompeii-bar.jpg|세면대처럼 생긴 바(Bar)가 있는 집]]이 전부 술집이다. 굉장히 외설적인 벽화가 그려진 매음굴도 많은 편이니 어린아이와 관광올 땐 주의. 2015년 상반기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었던 폼페이전에서도 [[성행위]]를 묘사한 벽화 몇 점을 가져와 전시했는데, 초등학생도 입장이 가능한 전시회인 만큼, 이 홍등가 관련 벽화들은 어린이들의 관람을 방지하기 위해 커튼을 친 별도의 공간에 몰아서 전시했다.[* 실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에서는 욕설과 음란함으로 가득한 외설적인 낙서들이 가득 발견되어 후세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자신의 테크닉이 여성들이 절로 신음하게 한다고 자랑하는 [[검투사]]의 낙서나, 매춘굴에 다녀간 [[프라이토리아니]]의 낙서, 창녀 아무개는 얼마 주면 무슨 행위까지 한다고 광고하는 낙서, 여기저기에 노상방뇨를 하지 말라고 써놓은 경고문이나 '''노상방뇨를 했다고 자랑하는''' 낙서, 술집에서 사기 도박이 들통나 도박꾼들이 싸우고 주인이 말리는 내용을 그린 만화 등, 로마인들의 저속한 서민 정서를 가감 없이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바실리카]]에는 "이렇게 (벽에 새겨진) 낙서가 많은데 네가 무너지지 않는 게 신기하구나!"라고 '''벽면에 새긴''' 낙서도 있다.] 이곳에서 나온 19금 유물 중 일부는 [[나폴리]] 국립 박물관의 '비밀의 방'에서 전시하고 있다. 2014년에 폼페이의 음식점 유적에서 기린의 다리뼈와 성게가 발굴되었다. 검투경기에서 희생된 동물들을 잡아먹었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실제로 도살의 흔적이 발견된 것은 처음.[[https://www.livescience.com/42309-food-eaten-by-pompeii-residents.html|#]] 2018년 5월에 화석이 아닌 유골이 발굴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5&oid=001&aid=0010116969|#]] 10월에는 신전까지 발굴되었다.[[https://news.v.daum.net/v/20181013150103749?f=m|#]] 12월에는 말의 유골이 나왔다.[[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4&sid2=235&oid=001&aid=0010543335|#]] 2018년 12월에 당시 장군 소유로 추정되는 온전한 형태의 말 화석도 발굴되어 동물화석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234722|#]] 2020년 10월에 뇌세포가 두개골 안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됨에 따라 고대 인류의 연구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923688?sid=104|#]] 2020년 12월에는 로마식 간이식당 중 가장 상태가 양호해보이는 간이식당이 발굴되었는데, 가판대의 벽화도 온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22&aid=0000463667|#]] 2021년 2월에 온전한 형태의 사륜마차가 발굴되어 고대 교통수단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었다. [[https://news.nate.com/view/20210228n06504|#]] 2021년 8월에 2천년 된 석관과 그 속에서 흰 머리카락이 생생히 남아있는 사람 유골이 발견되었다. 심지어 왼쪽 귀의 형상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고. 폼페이고고학공원 측은 화산 폭발하기 전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며 '지금까지 폼페이에서 발굴된 것 중 가장 잘 보존된 유골'이라고 평가했다.[[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58402&ref=A|#]] 2021년, 연구자들이 1980년대 헤르쿨라네움 근방의 해변에서 배의 잔해와 함께 발견된 300여 명의 병사들 중 한 유골이 [[프라이토리아니]]의 고위 장교였다고 결론내렸다. 같이 발견된 주화들이 근위대의 월급 액수와 일치하고 각종 호화로운 장비를 걸치고 있었으며, 타원형 방패가 이들이 사용하는 제식 장비였기 때문에 그렇게 추측된다고 하는데, 당시의 사건이 너무나 처참한 나머지 프라이토리아니 같은 정예 부대도 방재 임무에 투입되었음을 시사한다.[* 물론 프라이토리아니, 즉 근위대가 정예여서 투입된 것도 있겠지만, 애시당초 이탈리아 반도에 주둔한 유일한 정규 군대가 프라이토리아니이기 때문에 신속한 투입을 위해서는 프라이토리아니 말고는 다른 부대를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소 플리니우스]]는 [[타키투스]]와 주고받은 서간문에서 같은 구조 임무를 수행했던 외삼촌 [[대 플리니우스]]가 화산에서 쏟아진 재와 바위더미로 인해 바다가 너무 거칠어져서 해변에 배를 댈 수 없을 정도였고 대 플리니우스 본인도 유독가스로 인해 숨졌다고 기록했기 때문에, 그의 부대도 같은 피해를 입어 배와 함께 전멸한 것으로 보인다. 유골은 40-45세의 남성으로 정예답게 매우 건장한 인물이었다고 하며, 검게 그을린 주검의 상태로 볼 때 손쓸 새도 없이 한순간에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https://www.nbcnews.com/news/world/2-000-year-old-skeleton-identified-senior-roman-soldier-vesuvius-n1267056|#]] 2023년엔 폼페이 유적의 벽화에서 [[파인애플 피자]]로 보이는 그림이 발견되면서 파인애플 피자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특히 파인애플 피자를 전통을 벗어난 시도로 취급하던 이탈리아인들의 충격이 꽤 컸던 모양. [[https://www.businessinsider.com/2000-year-old-fresco-in-italy-appears-to-show-pizza-with-pineapple-2023-6?amp|#]][* 다만 파인애플이 유럽에 전래된 시기는 [[대항해시대]] 이후라는게 정설이므로 이 벽화가 사실이라면 기존 학설이 수정되어야 할 판이다.] 2023년 말, 노예와 짐승들을 볕 안 드는 밀실에 가두고 제분에만 종사하게 한 '빵 감옥'이 발굴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https://m.yna.co.kr/view/AKR20231209026600009?site=popup_share_copy|#]]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