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치스코회 (문단 편집) === 작은형제회 === [[라틴어]]: Ordo Fratrum Minorum [[이탈리아어]]: Ordine dei frati minori [[프랑스어]]: Ordre des Frères mineurs [[영어]]: Order of Friars Minor 약칭 '''O.F.M.''' 작은형제회는 탁발수도회다. 탁발(托鉢)은 걸식을 통해 얻은 음식을 담은 바리때에 목숨을 맡긴다는 뜻으로 ‘얻어먹는다’는 의미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세상을 [[수도원]]으로 삼아 살면서 탁발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던 형제들이 머무르던 곳을 ‘수도원’이라고 부르지 않고 ‘거처’나 ‘집’, ‘장소’로 불렀을 만큼 탁발 정신을 철저하게 살았다. 작은형제회(O.F.M.)의 영성은 ‘작음’과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복음적 삶에 있다. 작음의 정신을 기초로 회원들 서로 간의 형제애를 중시했고, 수도회라는 말 대신 형제회의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수도자]]들의 공동성을 표현했다. 이어 1211년에는 관상 수녀회로 2회인 클라라회를, 1221년에는 3회인 재속 프란치스코회를 세워 많은 형제자매가 대가족을 이루게 됐다. 프란치스코회의 [[한국]] 진출은 1937년 9월 작은형제회 [[캐나다]] 성 요셉 관구 선교사 출신의 도요한, 배쥐스탱 두 [[선교사]]가 [[부산]]에 도착함으로써 시작됐다. 이듬해 12월 [[대전광역시|대전]] 목동에 수도원을 설립, 국내 첫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 세워졌다. 1940∼50년대엔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으로 일시 현존이 끊겼다. 1955년에 수도원을 복구했고, 1963년 프란치스코 법인이 설립됐으며, 1969년 한국 순교복자 준관구로 승격된 데 이어 1987년 관구로 승격됐다. 현재 작은형제회 한국관구 회원 수는 종신서원자 137명과 유기서원자 16명 등 153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