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린스(음악가) (문단 편집) === 주요 활동 === >'''The Greatest Musical Talent of His Generation'''[br]'''당대 최고의 음악적 재능''' >---- >[[빌보드]][[https://www.billboard.com/music/music-news/prince-tribute-greatest-musical-talent-of-his-generation-7348527/|#]] 프린스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전설적인 뮤지션이다. 최고의 히트작은 1984년 '''[[Purple Rain]]'''. 직접 주연한 동명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음반은 [[빌보드 200]]에서 24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미국에서만 1,300만 장이 팔렸다. 이 음반에서 9분이 넘는 대곡 '''[[Purple Rain(노래)|Purple Rain]]'''[* 프린스의 대표곡], '''[[When Doves Cry]][* '''[[1984년]] [[빌보드 연말 차트]] 1위''']''' , [[Let's Go Crazy]][* 빌보드 핫 100 1위], [[I Would Die 4 U]] 등이 싱글차트를 휩쓸었다. 이어서 바로 다음해 'Around the World in a Day' 음반으로 차트를 점령했다. 이 시절이 프린스의 최고 전성기. 1987년에 발매한 명반인 '''[[Sign 'O' the Times]]''' 발매 이후로 대중의 비난이 계속되고 개인적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의미있는 작업물이 현저하게 줄었다. 1987년은 프린스가 첫 앨범을 발매하고 10년이 되지 못한 시점이고 1980년 그의 첫 번째 명반 Dirty Mind 발매부터 7년밖에 지나지 않은 해였다. 자신의 최대의 히트 앨범과 동명이자 자전적인 스토리를 담은 영화 Purple Rain에도 출연, 영화도 나름 흥행했다. 당시가 바로 리즈 시절이며, [[When Doves Cry]], [[Let's Go Crazy]]를 모두 [[빌보드 핫 100|싱글 차트]] 1위에 랭크시키는 기염을 토하고, 앨범도 천만 장이 넘는 슈퍼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그리고 자신의 저택에 미발표곡이 1,000곡 정도가 쌓여 있었다고 하는데 프린스 팬들은 이를 'The Vault'라고 부른다. 본래 1,000곡을 전부 차례로 발표하려고 했으나, 음반사에서 프로모션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필사적으로 뜯어말렸다고 한다. 사실 이런 문제들이 아래 서술하는 음반사와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시절 우리나라에서도 정식으로 음반이 발매되어, [[마이클 잭슨]]의 라이벌로 여겨지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처음엔 단순히 댄스가수로 오인되었지만, 곧 그가 싱어송라이터이자 대단한 기타리스트 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듯 팝뮤직계의 슈퍼스타로 부상했지만, 음반사와의 갈등으로 1990년대에는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다. 프린스가 기행의 상징이 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소속사와의 기나긴 분쟁인데, 프린스의 창작 욕구와 재능은, 다른 뮤지션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숫자의 곡을 만들게 했고 프린스는 이 음악들을 엮어서 꾸준히 앨범으로 발매하고 싶어했다.[* 실제로 프린스의 디스코그래피는 상식을 초월한다. 80년대를 풍미한 가수의 디스코그래피가 정규작만 39개이며 2000년대 이후 발표한 정규작만 16개라니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 그러나 소속사는 앨범의 희소성, 판매량등을 고려해 2년에 한 번 정도 발표하기를 원했다. 열받은 프린스는 '그럼 prince 명의로만 안 내면 되겠네 ㅇㅇ'라는 결론에 이르렀으며, 음반사와의 분쟁으로 수 년동안 법정소송을 벌였다. 실제로 1996년에 공개된 앨범의 수록곡인 Face Down으로 이때 갈등을 벌인 Warner Bros. Records에 대해서 강한 비판을 한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을 통해서 얻는 수익을 포함한 권리가 적다는 항의를 늘 해왔다. [[파일:princesymbol.png|align=right&width=120]] 1994년 발매된 앨범인 Come의 표지에는 Prince 1958-1993이라고 나와있는데, 즉 「'''너희가 알던 프린스는 93년에 죽었다.'''」 이런 뜻. 계속되는 소속사와의 불화로 뺨에 노예(slave)라고 문신을 새기더니 아예, Prince라는 이름을 버리고 남성과 여성의 성 기호를 조합하여 만든 [[https://en.wikipedia.org/wiki/File:Prince_logo.svg|기호]]로 자신의 이름을 대신했다. 당연히 그런 기호의 이름 자체는 없었기 때문에[* 편의상 Love Symbol이나 Prince Symbol로 부르긴 한다. 'The Artist'이나 'Symbol'도 그 때 만들어진 이름] 궁여지책으로 사람들은 TAFKAP(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 즉 "한 때 프린스라고 알려졌던 아티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때 기자가 '뭐라고 읽어야 됩니까'라고 했더니 '읽을 필요 없다(no need to read)'고 응수했다. 현재는 분쟁 해결 후에 이름을 되찾았다. 이 때 프린스가 이름을 바꾸고 낸 첫 음반인 The Gold Experience가 프린스의 90년대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점에서 몇몇 팬들은 Come 앨범 대신 이 앨범을 홍보했다면 90년대 프린스의 암흑기는 없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다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음악들이 점점 더 난해해지고, 연주곡으로만 이루어진 앨범이나 종교적 색채가 짙은 앨범들을 발매해서 팬들이 꽤 떠나간 것도 한 몫 하긴 했다. 이 때문에 Come 앨범, 90년대 후반에서 00년대 초반 앨범들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받기도 한다. 음반사와의 분쟁으로 암흑기를 거치며 대중들은 점점 그를 잊어가는 듯 했지만, 2004년 'Musicology'를 내놓으며 [[빌보드 200]] 3위와 더블 플래티넘 획득 그리고 [[그래미 어워드]]를 석권(2개 부문 수상)했으며 그해 가장 많은 공연 수익을 올린 아티스트가 되는 등 완벽하게 부활했다. 차기작인 '3121' 앨범(2006년)으로는 대망의 [[빌보드 200|앨범 차트]] 1위를 탈환, 역대급 천재의 클라스는 변치 않는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다. 2007년에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폭우 속에서도 변함없는 라이브와 기타연주를 보여주었다. 특히 비가 내리는 와중에 퍼플레인이 울려퍼졌던 이 짧은 공연은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슈퍼볼 하프타임쇼" 1위를 차지했다. 미국 내에서 슈퍼볼 하프타임 쇼가 누리고 있는 위상과, 더욱이 이런 무대에서 다른 가수와의 협연 없이 오롯이 혼자서 무대 조명을 독차지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음악적으로 프린스의 위치가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한 이벤트였다. 연이어 2007년에는 Planet Earth 앨범을 발매하여 빌보드 앨범차트 3위를 기록하고, 2008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R&B 보컬 퍼포먼스 상을 수상했다. 투어도 전석을 매진시켰고, 2009년에는 Lotusflow3r / MPLSound로 빌보드 200 2위와 빌보드 탑 R&B 앨범 차트 1위, 빌보드 탑 인디 앨범 차트 1위를 거머쥐었다. Lotusflow3r / MPLSound 앨범은 대형유통사를 거치지 않은 인디 앨범으로는 이례적인 성공이었다. Planet Earth 앨범은 영국에서 개최된 콘서트의 티켓과 함께 부록으로, 20Ten 앨범은 영국의 데일리 미러 2010년 7월 10일자에 부록 개념으로 동봉하여 배포하는 방식 등으로 '새로운 릴리스 방법을 시도해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오피셜 릴리스가 많이 뜸해졌다. 프로젝트 말아먹기의 제왕답게[* 실제로 앨범 제목, 트랙리스트만 알려지고 발매되지 않은 앨범들이 꽤 많다] 2009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DVD, 20Ten 디럭스 앨범, Welcome 2 America 앨범[* 가칭. Welcome 2 투어 당시 라이브로만 선보인 신곡들이 있어 20Ten 디럭스가 아닌 새 앨범을 발매한다는 루머가 돌았다. 결국 그런거 없었다.] 등등이 연이어 취소되고, 이 아저씨 뭐 하나 싶었을 즈음 '3rdEyeGirl'이라는 3인조 여성 밴드를 조직하고 2013년에 복귀했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엔 헤드라이너로 출연한다는 소식이 뜨자마자 티켓팅이 불지옥이 되는 마술을 보여주었다. '프린스가 뛰어난 뮤지션인걸 모르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재즈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가 되기엔 장르가 안맞지 않나?'라는 우려에도 공연장에서 신보 CD를 나눠주며 '니네 그거 들으면 공연장에 올 수밖에 없을걸?'이라는 패기를 보여주고, 여전히 뛰어난 보컬과 [[Purple Rain(노래)|Purple Rain]], [[Let's Go Crazy]]같은 히트곡을 모두 빼버리고 엄청난 숫자의 연주자들과 재즈 페스티벌에 맞는 자신의 곡과 많은 커버곡을 섞어서 도합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공연을 소화하여 관객들의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그는 그가 왜 못하는 장르가 없는 뮤지션이라 평가받는지, 왜 투어만 했다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익을 내는지 다시 한번 증명하였다. 이후에도 2013년에도 등장하여 다시 한번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공식 유튜브 채널도 개설하고, 라이브 스트리밍(3rdEyeTV)도 열면서 이제 드디어 앨범이 나오나 싶었지만 결국 2013년도 디지털 싱글만 계속 발매하다 그냥저냥 지나갔다. 사실 발매된 노래들만 모아 보면 앨범 하나 정도 분량이 나오긴 한다.2013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DVD도 찍긴 했는데 발매소식은 없다. 라이브 콘서트 음원도 발매한다고 했지만 역시 감감 무소식. 이쯤되면 남아있는 팬들이 불쌍할 지경. 결국 프린스 데뷔 이래 정규앨범간 발매 간격 최장기록을 경신한 2014년에 앨범을 낸다고 한다. 그래도 2014년도에 들어서는 슈퍼볼 직후 방송된 미드 New Girl에 출연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Cn8aiu82KRw|신곡]]도 선보이고, Arsenio Hall Show에도 출연, 각종 잡지에도 표지에 등장하는 등 미디어 노출이 늘긴 했다. 2014년 9월 Art Official Age과 Plectrumelectrum이라는 두 장의 앨범을 동시에 발매, 각각 펑크와 하드락에 특화된 앨범으로, 두 장 모두 [[빌보드 200]] 탑 10에 랭크시켜버렸다! 예상을 깨고 과거의 적이었던 워너 브라더스와 재결합하여 발표한 앨범이었기에 과거의 앨범들을 리마스터[* 놀랍게도 아직 과거 앨범 리마스터가 제대로 되지 않은 뮤지션이기도 하다.] 해줘서 내주지는 않을까 하고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시기였다. 2015년엔 볼티모어 폭동 사건의 도화선이 된 프레디 그레이의 사망을 기리며 그를 추모하는 공연인 Rally 4 Peace을 열고 볼티모어 폭동사건을 주제로 한 노래인 Baltimore를 발매하고, 2015년 그래미에서는 올해의 앨범 시상자로 나와서 기립박수를 받고 시상식 소감 처음부터 '''앨범은 중요합니다. 책과 흑인의 생명처럼요.''' 라며 [[Black Lives Matter]]를 대놓고 언급하고 박수를 받았다. 여전히 사회적인 언행을 멈추지 않는 뮤지션임을 보여주고 2016년에도 멋진 신보를 기대하게 하였다. 그러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