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담 (문단 편집) == 역사 == 필담은 [[중국]]이 아직 지역마다 방언이 강세였고 [[한문]]이 [[한국]], [[일본]], [[베트남]] 3국의 서면어로 남아있던 전근대에는 보편적인 것이었다. 한국 사신이 중국이나 일본을 방문해서 글로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역관을 쓰기 힘든 상인 간의 거래나 개인적인 방문같은 경우는 필담이 아니면 대화 자체가 어려웠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외국어를 누구나 접하고 공부하기 쉬운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자문화권]] 간의 [[언어동조대]] 현상이 서로간의 교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현대 중국에서 북방방언을 기준으로 [[표준중국어]] 문언일치가 이루어져 말하는 중국어와 쓰는 중국어가 같게 되고, [[베트남]] 역시 한문이 아닌 베트남어를 서면어로 채택한 이후 필담은 많이 줄어들었다. 영어라는 강력한 국제어의 부상도 이유로 들 수 있다. ~~그렇다해도 영어는 국가마다 사투리가 심해서 필담이 늘어날 여지가 있다~~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실학자)|박지원]]도 당시 청나라에서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다만 역관도 같이 갔다.] 이로 인해 가벼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0128172|낭패]]를 본 일이 있다. 아래의 사례에도 나온다. [[19세기]]에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이 조선과 접촉할 당시 이 필담을 사용한 예가 있다. 중국과 교류를 하는 과정에서 한문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를 통해서 조선인과 한문으로 필담을 나눈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