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리핀/역사 (문단 편집) ==== 경제 및 문화 ==== [[고대]]부터 필리핀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접경지역에 있어 다국적 자본의 교차로 이면서 중국으로 가는 주요한 길목에 위치했던 연유로 예로부터 [[중국인]], [[아랍인]], [[인도인]], [[페르시아인]], [[크메르인]], [[태국인]], [[말레이인]], [[베트남인]], [[참파]]인, [[일본인]], [[대만인]], [[류큐인]], [[자바인]], [[바자우인]]등 다양한 이방인들이 오고갔으며 이들이 각 섬에 정착하기도 했는데 지배층과 피지배층, 노예 간의 인종 구분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지역별로 특정 인종, 문화권이 우세했던 [[인도차이나 반도]]와 다르게 필리핀 제도는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권의 인종들이 비교적 균일한 숫자로 거주하면서 상업, 전쟁 등으로 경쟁했고 그 결과는 대체로 인도 및 이슬람계 문화권 출신들이 전후반기 모두 우위를 점하였다.[* [[메소포타미아]], 인더스계 문화가 모든 시기동안 우세하였다. 지배층들의 혈통을 살펴봐도 아랍이나 인도계 인물들이 [[말레이인]] 세력을 이끌고와서 정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적인 예로 [[크메르]]계 인구의 우세속에 크메르계 문자를 쓰던 태국, 중국계 인구의 우세속에 [[한자]]를 쓰던 베트남과 달리, 필리핀 제도는 인도, 아랍계의 [[바이바이인]] 문자를 사용했다. 상술했듯 스페인이 도래하기 이전부터 [[금]],[[은]], 귀금속 등의 [[화폐]]경제가 발달했으며 다른 금속화폐들은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당시 필리핀의 경제적 구조는 폐쇄성 보다는 개방적 성격이 매우 짙은 자유로운 무역을 했던 것으로 분류된다. 일단 스페인 도래 이전 기준으로도 매우 부유하였고, 스페인의 기록상 마닐라, 부투안 등은 동남아시아 내에서도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하고 있던 곳 중 하나였다. 중계무역지로 유명해서 이전부터 다국적 [[상인]] 및 [[군인]]들의 잦은 왕래, 정착이 이루어졌다. 역사적으로도 그들 사이의 [[혼혈]]이 자주 이루어졌고, [[필리핀인]]은 특정 민족계통의 한가지 뿌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필리핀 역사가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들의 역사흐름과 구별되는 독특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한 비슷한 배경은 [[실크로드]]의 중앙아시아 다민족 국가들과도 유사하다.[* 여러 문화와 인종이 만나는 교차로라는 점. 오랜 옛날 상업으로 번성했지만 세계무역의 지리적 구조가 바뀌며 오늘날 가난하단 점에서 유사하다. GDP 규모는 필리핀이 34위로 중앙아시아 국가들 보다 월등히 높다.] 실로 혼혈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동남아시아 여러 남방계 민족들을 중심으로, 북방계[* 동남아 유전인자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중동, 남아시아[* 중국 유전자 다음으로 높은 비율로 존재한다.], 이후에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유럽 혈통들도 조금씩 얹어져 많은 인구가 [[유럽인]]과 간접혼혈이 되는 등, 서양과 동양, 남방계와 북방계,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을 망라한다.[* 유전자 검사결과 [[유럽인]] 혈통은 대체로 5% 이하이다.] || [[파일:Philippine golds.jpg|width=400]] || || 귀족들로 추정되는 유골들과 함께 발굴된 부장품들과 다량의 금화들이 측정결과 순금에 가깝다고 한다. 이들은 매장시 자녀들의 상속분과는 별개로 금화를 함께 매장할 정도로 금이 매우 많았다. || 필리핀제도는 주요 지진대인 [[불의고리]]에 속해있고 규모있는 [[태풍]],[[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따라서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화려한 [[궁궐]]과 건축물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반면, 당시 [[스페인인]]들의 기록에 남아있는 마닐라, 부투안 등의 화려한 궁궐이나 건축물, 그리고 도시들은 소실되면서 스페인 건축물들로 대체되었다. 그렇기에 건물의 양식이 정확히 어떠했는지는 현재로써는 찾아볼 수 없다. 당시 무역품들을 태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어떤 형태의 건축물을 세웠는지도 남아있지 않다. 스페인 식민통치기 지배층들의 건물은 스페인식으로 대체되어 명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 유물로 남아있는 건 도자기, 화포를 포함한 무기, 금화, 은화 등이다. 상업 왕국들이 주변국들의 기록과 고고학적 발견으로 교차검증이 되는데, 주로 [[해적]] 활동을 동반한 국제 무역이 활발하게 나타난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전반기엔 [[동남아시아]] 전역과 [[인도]], [[중국]]이었고 후기로 가면 [[이슬람]]과 [[포르투갈]] 상선들도 주요 대상이 된다. 전반기에 많은 인구집단이 문명이 발달되지 못한 원주민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후반기로 갈수록 번성해나갔다. || [[파일:luzon maharika.jpg|width=400]] || || 1668년 스페인측의 기록화. 마닐라, 톤도의 루손인(Luzones) 귀족계층들. 소위 인도,아랍,말레이 등이 혼혈된 계통들이 중핵을 담당하던 지배구조는 식민통치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고 중국인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식민통치 말기이다. || 국제 무역구조는 [[루손 섬]]의 마닐라, 톤도 왕국 이 독점적으로 중국 정부 및 민간상인들로부터 도자기, 비단, 벨벳, 철광석, 장뇌, 백단향, 각종 사치품 등 중국산 제품들을 대량으로 구입해 보유하면서, 필리핀 제도 지역 내 각 상업왕국 및 바랑가이 국가들에 판매 및 재분배 하였다. 각 국가들은 이것을 보유하고 있다가 동남아, 중동, 인도에서 온 상인들에게 판매하면서 차익을 남겼다. 혹은 역으로, 인도, 아랍, 동남아의 상선들로부터 각종 향신료, 옥돌, 사치품들을 대량으로 구입한 후 필리핀 제도에 거류하고있는 [[화교]]들에게 판매하면서 차익을 남겼다. 당시 루손 옹기 또는 [[항아리]]는 비간 지방의 A급 점토로 고온에서 구워졌는데 찻잎 또는 [[젓갈]],[[장아찌]] 같은 보존식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더운 열대지방에서 장기보존이 가능한 항아리로 오히려 저장음식이 맛이 좋아지기까지 하면서 [[송나라]]시대부터 루손에서 일본에 팔리기 시작하여 [[천황]],[[다이묘]]들이 귀하게 여긴 기록이 남아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호평을 받은 기록도 남아있다. 필리핀 원주민과 중국식의 혼합 기술이기도 하다. 미학적으로 예쁘지 않지만 되려 일본 전통 미학인 와비사비(불완전 속의 완전함)와 기능성으로 당대 일본에서 인정을 받았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일본 가문들에서 가보로 내려오는 골동품이기도 하다. 몇 백년간 일본에 수출되었는데 특히 16세기에 일본의 많은 은화가 루손으로 유입되었다. 스페인이 도착한 당시에 필리핀이 이것만으로도 많은 이익을 얻고 있었음이 기록되어있으므로 당시 필리핀의 부유함을 가늠할 수 있다. 이외에도 [[열대기후]] 속에서 1년 내내 생산되는 말린 과일과 어육, 쌀, 면화, 설탕, 밀랍, 꿀 등 농어업 생산물을 규모있게 저장하고 있었고, 주변국에 기근이 들거나 할 때 외국 상선들에게 이것을 식량으로 판매하였다. 농사 방식은 대부분 정글 사이에서 [[화전(농업)]]으로 이루어 졌다. 산간 [[오지]] 지방에서는 계단식 쌀농사와 관개농업도 발견된다. 식량자원의 주요 거래대상은 [[광동성]],[[푸젠성]]을 비롯한 중국 남부 해안도시들이었다. 이 해안도시들은 [[중원]]과 달리 평야가 매우 적고 산지로 둘러쌓인 지형이 많아 날씨가 더움에도 불구하고 예로부터 농업 수확량이 많지 않았고 특히 복건성(푸젠성)민들은 과거 급제만큼이나 상업에 종사하여 부유해지는 것을 중요시하여 해외 진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푸젠성은 역사적으로 많은 수의 과거급제자와 해외 [[화교]]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고대로부터 20세기 초까지 필리핀에 진출한 화교들 80%이상이 복건성 출신이었던 것은 이러한 전통적인 무역 관행이 연관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외모상 차이가 있어 괴리감이 있을 수는 있지만, 유전자 연구분석에 따르면 필리핀인 유전인자의 30%가 동아시아계인데 이 유전인자들은 80%가 광동성도 아닌 푸젠성 지역과 일치한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푸젠성으로부터 필리핀으로의 꾸준한 교류와 이민이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또한 이것은 중국인들이 동남아시아에 이민할 정도로 당시 상업이 발달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외국 상단들은 [[항구]]에 정박 또는 통과 시 통행세를 냈다. 이것도 주요 수입 중 하나였다. 무역시 담보 대출을 해주기도 하였는데, 주요 사신단의 [[인질]] 및 각종 귀금속 장신구, 일부 선박 등을 담보로 하였다. 각 상업왕국들은 [[인장]] 문화가 발달했다. 외국 상단들이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에 각 상단들의 신분확인을 위해 도장이 찍힌 문서들을 보여주어 국적을 확인하였다. 부투안 왕국의 인장이 발견되어 남아있다. 필리핀 제도의 금과 은, 보석들은 많은 인구를 보유한 중국대륙에서 특히 희소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꽤나 쓸모있는 수출품이었다. 부투안 왕국은 금, 은 귀금속 공예품들을 세공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동남아, 아랍, 인도 왕실들에 전문적으로 판매하기도 하였다. 남부 민다나오 이슬람 왕국들은 은을 도금한 도자기들을 다른 이슬람 네트워크에 속한 국가들에 판매하였다. || [[파일:Visayan makarika.jpg|width=450]] || || 1668년 비사야인(Visayans) 귀족계층 및 평민들. 자세히 보면 평민들도 금 귀걸이 등을 하고 있다. 귀족층들은 100여 년간 백인 [[메스티소]]들과의 통혼을 통해 피부가 희다. || 상업이 발달한 만큼, 자연스레 도적들이 형성되기 마련인 바. [[스페인]] 기록에 이들은 일본 [[왜구]]들과 비슷하게 일종의 정기적인 계절적 행사 처럼 함대를 구성하여 다른 동남아 국가들의 해안가 마을이나, 무역선을 털러 가는 등 습격(Raid)을 통해 약탈경제에도 종사했다. 또한 사로잡은 포로들로 [[노예무역]]이 크게 성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레 상무정신 또한 발달했고 이러한 활동들은 중부 비사야 제도나 남부 이슬람 왕국들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스페인은 [[필리핀 도독령]]을 구성하고 나서 [[노예제]]를 금지시키고 이러한 활동을 그만두게 했다. 그건 스페인이 착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여 광범위한 중계 무역로를 더욱 안정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각 국가들의 복식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대개 노예를 제외하면 평민층부터 왕족까지는 [[비단]] 및 [[벨벳]], 면 등으로 옷을 만들었는데 어떤 국가는 긴바지,긴팔인 반면, 어떤 국가는 반팔, 반바지이고 중국식, 이슬람식, 토착 원주민식 등 다양하고 독특한 양식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 시기의 전통 복장이 일률화 되어있지 않다. 다만, 공통적으로 각 국가의 노예계층을 제외한 평민층부터 왕족에 해당하는 계층들은 전투시를 제외하고 일상생활에서도 금 귀금속 공예품을 치장하고 다녔다. || [[파일:20221206_030548.jpg|width=350]] || || 좌측의 노예계층과 우측의 잠발레스 출신 사냥꾼들. 이들도 무릎에 금발찌를 차고있다. || 노예계층을 제외한 평민층부터 귀족층은 [[바이바이인]] 문자를 통해 글을 공부하는 문화가 보편적이었고, 주로 무역활동의 장부기록과 타국에 문서전달 용도로 용이하게 사용하였다. [[학문]] 발달은 어느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 베트남처럼 [[과거]]제도가 있었다는 기록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슬람]], [[힌두교]], [[남방 불교]] 서적을 학습했다는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글자 공부에 계층차별이 없었고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했다는 기록만 남아있다. 당시 서적들이 보존성이 약한 [[패엽]]으로 기록되었고 식민통치기 유럽의 [[로마자]]로 대체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전부 소실되었다. 스페인이 [[가톨릭]] 국가인 특성상 타 종교에 관용적이지 않았던 점도 기록 소실에 한몫 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16세기 [[스페인인]]들이 이들이 [[어업]]에 종사하는 것을 보고는 모든 종류의 어업에 능숙한 어부들이라 되어 있다. 이 시대의 필리핀인들은 수영의 달인들이기도 했는데,[* [[양식]], [[작살]], [[그물]], [[낚시]]에 능했고 민물과 해양을 가리지 않고 잠수와 수영의 달인들이라 되어 있다. 민물어업은 빠른 시간 안에 씨가 마를정도로 잡아내서 스페인인들이 그만 잡으라고 말려야될 정도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그들의 조상들처럼 [[태풍]] 속에서 바다수영이 가능한 사람들이 있으며, 최대 70m까지, 10분 넘게 아무런 잠수장비없이 잠수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바자우족]]이 있다. 이후 같은 [[스페인 제국]] 영토의 아메리카로 이주한 [[필리핀인]]들은 그곳에서도 대대로 [[어부]]로 유명했었다. 비사야 지역 사람들은 스페인 도래 당시 정교하고 세밀한 문신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몇몇 한국 사학자들([[이도학]] 교수가 대표적.)과 재야사학자들은 백제의 담로중 한 곳인, [[흑치상지]]의 출신국인 흑치국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도학 교수는 [[환단고기]]는 부정하기 때문에 재야사학자와 따로 구분해서 쓴 것이다.]. 사실, 백제와의 연관성은 보이지 않는다. 백제인들이 수많은 다국적 상인 중 하나로 왔을 가능성은 있으나 인도계와 중국계 만큼의 뚜렷한 족적은 커녕 흔적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일본과의 연관성은 어느정도 찾을 수 있으나 그것도 인도,아랍 등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써이다. 일본인들이 지배한 흔적은 하나도 없고 인도,아랍 및 말레이 계통들이 모두 20개가 넘는 국가들의 지배계층으로 내내 있었다. 간간히 왜구들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금,은 등을 노리고(..) 꾸준히 왔던건 분명히 맞는데, 알려진 명성에 비해 다른 세력들을 압도하거나 하진 못했다. [[도요토미]], [[도쿠가와]] 정권 모두 필리핀을 정복하려 했으나 둘다 포기한다. [[영락제]]는 필리핀에 출정했으나 결국 정복에는 실패하였다. || [[파일:Negritos.jpg|width=350]] || || 원주민인 [[네그리토]]들. 5~9만년 전부터 정착하기 시작했던 필리핀 [[흑인]] 계통의 선주민들이다. 오늘날 필리핀 사람들의 뿌리라고 볼 수 있다. 필리핀 네그리토는 현재까지 발견된 세계 여러 인구집단 안에서 멸종된 고인류인 [[데니소바인]] 유전인자 비율이 가장 높은 인종그룹이다. 몸집이 두터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데니소바인들이 섬에 정착하여 호모 사피엔스 중 피부가 검고 몸집이 작은 계통의 원주민들과 혼혈되고 섬환경에서 몸집이 작게 진화된 것으로 보인다. 데니소바 유전인자가 대략 5%로 매우 높은편인데, 이는 증조,고조,현조부까지 올라가면 훨씬 높은 비율의 데니소바 필리핀인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스페인이 필리핀에 도착했을 500여 년전에는 오지 지역에 데니소바인 유전인자가 50%에 가까운 일부 집단들도 있었을지 모를 일. [* 필리핀 역사에서 타인종과의 혼혈이 그나마 적게되면서 토착민 문화집단으로써 유지된 그룹이 필리핀 [[네그리토]]들이기도 하다.][* 필리핀 네그리토들은 흑인으로 분류되나 아프리카 흑인들에서는 데니소바인 유전자가 나타나지 않는 차이가 있다.] || [[필리핀 도독령]]을 설립한 미겔 로페즈 데 레가스피 기록엔 네그리토들은 철제도구와 무기들을 사용했고 정글속에 매복에 능하고 특히 궁술이 매우 빠르고 정확한 기량이 뛰어난 '무시무시한 전사들'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중남미 대륙을 몇백명으로 무쌍을 찍고 정복한 [[콩키스타도르]]들이 인정한 강한 전사들인 셈이다. 네그리토들은 최소 언어가 다른 150개가 넘는 부족들이 있었고 같은 부족 안에서도 내부분열이 잦아 조직화 및 통합되지 못했다. 그래서 개개인은 뛰어난 전사였으나 전투시 진을 제대로 형성할줄 모른다 기록되어있다. 이들 부족장들 대부분은 스페인에 회유되어 후술될 엔코미엔다 자치제도로 장기적으로 편입된다. 이후 필리핀 도독령은 인도네시아 일부,브루나이,대만 등을 공격하고 점령하는데 콩키스타도르들은 갑옷도 입지 않는 네그리토 궁수들을 금을 지불하고 용병으로 많이 고용했다. 동남아시아의 도서부 지역들은 육로를 통한 내륙 간의 용이한 교류를 이어나갔지만, 필리핀 제도 지역은 이런 아시아 내륙의 무역 흐름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소외되어 있었으나 루손인들을 필두로 하여 해외에 관료,상인,지주,용병업으로 많이 진출하여 이를 극복하였다. 한편으로는 해양 한 가운데 섬으로 떨어져 있어 대륙에 속한 국가들의 사이의 지역 패권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