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리핀/역사 (문단 편집) === 필리핀 독립전쟁(1896~1898): 필리핀 혁명 === [[라틴아메리카]]에서 독립 전쟁을 주도한 현지 지주들의 식민지 자치권 확대에 대한 요구, 그에 대한 스페인의 거절로 식민지들이 반발해 독립해 나가면서 아시아-태평양-유럽 사이의 바닷길이 정치외교적 문제로 인하여 가치가 흐지부지 되었고, 필리핀 또한 독립을 원하는 흐름을 타게 된다. 모든 문제의 직접적 원인은 누구의 잘잘못이라기보다는 스페인 본국의 국력약화에 있었다. 16세기부터 적국을 많이 만들어 씨앗이 뿌려진 유럽 내의 여러 문제들로 인해 스페인 본국의 힘이 서서히 빠지다가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침공한 이후 스페인이 휘청거리게 되자 식민지들로부터의 과세가 이전보다 가중되는 모양새가 되었고 그렇게 거둬진 세금은 스페인 본토의 내정 위주로 쓰이면서 정작 식민지들의 안보와 정치적 균형들이 위태로워져 각 지역의 토착 지배층들의 재산으로 현지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또한 재정의 본국으로 쏠림으로 인해 구심점이 약해지자, 식민지들 끼리도 이합집산하며 서로 뭉치지 못하고 각자 이익을 위해 분열하게 된다. 자연스레 차라리 독립하는게 낫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또한 이것은 [[예수회]]가 오래전부터 만들어 놓은 가톨릭 [[해방신학]]을 말미암아 촉진되어 갔다.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유럽 내에서도 독립해나가는 지역에 대해서는 군사적으로 매우 강경한 진압을 하였는데, [[포르투갈]],[[네덜란드]],[[카탈루냐]],[[벨기에]],[[이탈리아]] 일부 지방 등 모두 스페인에게서 독립해 나가려 하면서 많은 유혈사태가 났던 지역들이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라틴아메리카, 필리핀 또한 적용되었다. 이는 영미권 식민지들의 독립역사와는 다른 부분이다. 필리핀인 [[독립운동]]의 계기가 된 사건으로 [[곰부르자 사건]][* Gomburza. 스페인에 의해 희생된 3명의 [[가톨릭]] [[신부(성직자)|신부]]인 Gomez, Burgos, Zamora를 합친 약어다. 문서 첫머리의 동영상 38초쯤에 나온다. 16세기 사람인 라푸라푸 다음으로 나온다는 점에 주목하자. 곰부르자 사건은 필리핀 근세사와 근대사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다.]이 있다. 1872년 카비테의 산 펠리페 요새에 위치한 무기고에서 과중한 조세에 대해 노동자들이 집단 봉기를 일으키자, 스페인 당국이 당시 개혁적 성향의 가톨릭 신부들이었던 [[마리아노 고메즈]], [[호세 부르고스]], [[하신토 자모라]]에게 반란 사주라는 누명을 씌워 처형한 사건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당시 마닐라 [[대주교]]는 반란 혐의로 체포된 신부들의 [[사제]]직을 박탈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교회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았다'라는 이유에서였는데, 사주 혐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독실한 가톨릭 문화가 지배하는 필리핀에서 스페인 지배에 대한 반란을 대주교가 '[[야훼|하느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라고 간접적으로 인증한 셈이 된 것이다. 이 사건을 이후로 필리핀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이 태동하기 시작한다. || [[파일:Illustrados_Google.jpg|width=400]] || || 정중앙 밝은색 양복이 호세리잘. [[마드리드]] || 이 필리핀 [[민족주의]]의 대표적인 사람으론 [[호세 리살]](Jose Rizal)이 있다. 그는 위에서 언급한 곰부르자 사건에 연루된 신부 부르고스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고 한다. 호세 리살은 지주 출신으로 온건파 단체 필리핀 민족동맹을 조직한 반면, 빈민 출신인 안드레스 보니파시오(1863~1897)는 1892년에 원주민 중심의 급진파 독립운동단체 '카티푸난'[* 약칭 KKK. 미국의 KKK와는 전혀 연관 없다. 지금도 필리핀에서는 국가기념일에 빨간 바탕에 하얀 글씨로 KKK가 박혀있는 카티푸난기가 걸린다.]을 결성하여 1896년에 봉기를 일으켰다. 같은 시기 쿠바 같은 스페인 식민지 곳곳에서 독립투쟁이 일어나자 놀란 스페인 정부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카티푸난 중심의 독립운동을 철저히 탄압했다. 심지어 온건주의자 리살까지 카티푸난과 엮어서 붙잡아 그해 12월 30일 아침에 총살해버렸다. 필리핀에 가면 리살이 사형당할 때를 생생하게 청동으로 만든 게 전시되어 있다. 같은 필리핀인(스페인군 소속 필리핀인들에게 총살)의 총에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며 일부러 등을 돌려 뒤에서 총에 맞아 죽은 게 재현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