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나은행 (문단 편집) == 역사 == || [[파일:하나은행 로고(1991-2003).svg|width=100%]] || 1991년 설립 당시 로고. || [[파일:하나은행 로고(2003-2015).svg|width=100%]] || [[파일:외환은행 로고.svg|width=100%]] || || [[하나은행/합병 이전|구 하나은행]] 로고 || 구 [[외환은행]] 로고 || ||<-2> [[파일:KEB하나은행 로고.svg|width=100%]] || ||<-2> '''KEB하나은행''' 로고 || [[파일:하나은행역사.jpg|width=350]] --2998년은 무시하자--[* 1998년이 오타가 난 것이다.] 주: 1991년~2015년 8월까지의 역사는 [[하나은행/합병 이전]], [[충청은행]] 문서 참고. * 2012년 1월 27일: [[금융위원회]],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 * 2015년 8월 7일: 합병 공고 * 2015년 9월 1일: 통합 KEB하나은행 출범 * 2016년 6월 3일: [[외환은행]]의 전산이 18시 부로 내려감과 동시에 [[금융결제원]]에 장애은행으로 등록, 전산 차단([[현금 자동 입출금기|ATM]]은 16시부터 전면 차단) * 2016년 6월 4일 ~ 6일: 전산통합 작업으로 예금거래 전면 중단 * 2016년 6월 7일: 오전 1시 50분부터 '''통합전산시스템 및 공동망 가동 개시'''. 인터넷 뱅킹은 예고시각보다 1시간 앞당겨진 아침 5시부터 가동. * 2020년 2월 3일: KEB하나은행에서 '''하나은행'''으로 브랜드명 변경 [[1971년]] [[한국개발금융]]이 '한국투자금융'이라는 [[단기금융회사]]를 설립하여 서울 중구 남대문로1가 [[조흥은행]] 본점빌딩 12층에 본사를 두고 영업을 개시했다. 1972년 본점을 남대문로 KAL빌딩 20층으로 옮기고 1980년 1월 [[경방]]으로부터 [[태평증권]]을 인수하고 3월 영업업무 온라인화를 단행했다. 1983년 을지로 두산빌딩으로 이전 후 1984년 국내 최초로 기업고객 전담제(AM)을, 1984년 CMA를 최초로 발매한 뒤 1988년 수신잔고 1조 원을 돌파했다. 1990년 한국투자경제연구소를 출범시키고 [[1991년]]에 재무부 인가를 받아 [[은행]]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장기신용은행 품을 떠났다. 법인 설립은 다른 날짜이지만 '''하나은행'''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1991년이므로 표제어 괄호가 1991년이었다. 그래도 그 때는 나름 한국투자금융의 20주년이란 시점을 기념하긴 했고, 2001년 30주년 당시 사사를 편찬할 때도 그랬다. 아무래도 한국투자금융은 자료도 부실하고 법인 역사 자체도 복잡해서 하나은행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것이 이 때이므로 그렇다. 처음에는 [[어음]]이나 융통해 주고 [[CMA]]를 팔던 [[단기금융회사]]가 세상에 넘치고 넘치자 1990년대 들어 이 [[단기금융회사|단자회사]]들을 [[노태우 정부]]가 대대적으로 은행과 증권사로 변경시켰는데, 이 때 은행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이 때 같이 한양투자금융과 LG가 갖고 있던 금성투자금융이 합쳐져서 [[보람은행]]이 되었다. 서울투자금융, 고려투자금융, 한일투자금융, 한성투자금융도 각각 상업증권, 동아증권, 국제증권, 조흥증권으로 출범됐다.] 덕분에 IMF 이전까지는 다른 은행들에게 서자 취급을 받고 살았다. 은행 전환 당시 직원들을 상대로 행명을 공모하였는데, 반드시 [[순우리말]]이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여러 후보가 나왔는데, 그 중에는 '''[[우리은행]]'''도 있었다. 하지만 일반명사라는 이유로 탈락. 직원들로부터 가장 인기가 많은 이름은 한국에서 아시아로 뻗어나간다는 뜻의 '한아은행'이었는데, 이것을 살짝 비틀어 '하나은행'으로 행명이 제정되었다. [[1991년]] 은행으로 전환되어 갓 출범했을 때 기존 시중은행들에 비해서 [[듣보잡|인지도가 매우 낮았고]], 지점 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1992년 신용카드업무 개시 후 1993년 2월 국내 최초 클럽상품을 냈고, 7월 <유로머니> 지로부터 '한국 최고 은행'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10월 은행권 최초로 '비밀보장 서비스 제도'를 실시해 기반을 다졌다. 1994년 영국령 홍콩에 처음으로 해외사무소를 연 뒤 국내 은행 역사상 최초로 창립 3년 9개월 만에 총수신 10조 원 돌파라는 신기록을 달성, 1995년 은행권 최초로 PB상품을 냈고, 1996년 하나파이낸스를 세우는 등 사세확장을 거듭했다. [[1998년]] 부실 [[지방은행]]으로 지정된 [[충청은행]]을 인수하면서 [[대전광역시|대전]]/[[충청남도|충남]] 지역 점포망이 순식간에 확대되었고,[* 당시 충청은행의 지점망이 110개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의 하나은행 점포수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오죽했으면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김승유]] 하나은행장에게 충청은행을 맡아 달라고 했을 때, 김승유 행장이 황당해하며 '''"우리보다 덩치 큰 은행을 무슨 수로 인수합니까?"'''라고 반문했을 정도. 물론 김승유 본인은 훗날 이 때의 일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1999년]] 1월에는 [[보람은행]]을 먹은 뒤 규모가 커져 8월 은행권 최초로 이동은행 서비스 '움직이는 하나은행'을 실시했다. [[2002년]] 2월 [[프랑스생명]] 지분 절반을 인수한 후 12월 1일에는 [[서울은행]]을 인수한 다음 하나은행 법인을 해산하고 서울은행을 하나은행으로 행명을 바꾸는 방식으로 합병하였다.[* 존속 법인이 구 [[서울은행]]이었다. 즉 [[신한은행]]이 [[조흥은행]]을 합병한 [[역합병|그 방식]]인 것. 이로 인해 세금을 덜 낼 수 있었다는 논란이 두 사례 모두에 따라붙었는데, [[조흥은행]]의 역사 계승이라는 뚜렷한 명분이 있었던 [[신한은행]]과 달리 하나은행은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이다. 실제로 [[신한은행]] 홈페이지의 은행소개-연혁 페이지를 보면 [[조흥은행]]의 모든 역사를 낱낱이 기록한데 반해 하나은행 홈페이지에는 [[서울은행]]의 역사가 전혀 없다. [[하나금융지주]] 홈페이지에도 1959년이 아닌, 1971년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당시 재정경제부는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합병이 [[역합병]]에 해당한다고 유권해석을 하였으나, 9,000억 원 가량의 세금은 과세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 은행 전환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국민, 우리, 신한과 함께 소위 빅 4로 일컫는 거대 금융 회사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합병 후 행명까지 충청하나은행으로 썼고 지금도 충청사업본부로 남아있는 충청은행은 이렇게 잊혀져 간다. 이후 2005년 [[대한투자증권]] 인수 뒤 12월 [[하나금융지주]] 출범으로 자회사가 됐고, 2012년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다시 인수해 2015년 3월 합병될 예정이었으나 2015년 2월에 법원으로부터 합병절차 연기 판결로 인해 합병하지 못하고 있었다가 [[외환은행]] 노조와의 끈질긴 협상 끝에 동년 7월에 통합에 합의하였다.[* 존속 법인은 [[외환은행]]으로, 통합 브랜드명은 [[KEB하나은행]]이 된다.] 통합이 계획대로 성사되면 국내 자본규모 1위가 된다. 후발 시중은행으로서 선발주자들과의 차별을 위해 처음부터 [[프라이빗 뱅킹]]을 주력 업무로 삼았는데, 사실은 단자 시절부터 고액 개인고객들이 많이 거래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나는 물론이고 [[보람은행]]도 [[프라이빗 뱅킹]]이 주력 업무가 된 것. 그러다가 기업금융이 후달린다는 생각에 기업금융을 전문으로 하다가 나가 떨어진 [[서울은행]]을 2002년 말에 주워먹었다.[* 이 표현이 결코 과장된거나 한게 아니라 정말 사실이다. 자세한건 [[서울은행]] 항목 참고.] 덕분에 하나은행은 건들지도 못해 본 [[증권사|증권대행업무]]와 상대적으로 약한 [[신탁]] 업무[* [[서울은행]]은 1970년대에 신탁은행과 합병하여 한동안 행명도 서울신탁은행이었다.]에 대해 보완할 수 있었다. 하나은행의 기업금융 부문은 [[우리은행]]이나 [[기업은행]]에 비해 못하다는 평이 있지만, [[국민은행]]에 비하면 나은 수준. 2015년 9월 1일부로 [[외환은행]]과의 합병 법인이 출범한다.[* 서울은행 합병 때 처럼 외환은행 법인을 하나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舊 하나은행이 없어지는 방식이다.] 행명은 "KEB하나은행". 이에 따라 하나은행의 존속 법인으로 남아 있던 [[하나은행/합병 이전|(구)하나은행]]은 완전히 사라졌다. 2016년 6월 7일 통합전산이 개통되며 존속 법인은 외환은행인 것과 달리 존속 전산 시스템은 [[하나은행/합병 이전|(구)하나은행]]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