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시마섬 (문단 편집) == 특징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하시마_1905.jpg|width=100%]]}}} || || '''{{{#ffffff [[1905년]] 당시 모습}}}[* 당시에는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이기에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age-kinarino.ssl.k-img.com/db4d39a1fcbfed08367ea20f2c94d0176980f607.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하시마_1960.jpg|width=100%]]}}} || ||<-2> '''{{{#ffffff [[1960년대]] 당시 모습}}}'''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UXwgu5cOidM)]}}} || || '''{{{#ffffff [[1960년]]에 찍은 촬영본}}}'''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tUXM72JXWns)]}}} || || '''{{{#ffffff [[1975년]]에 찍은 촬영본[* 지금에 비해 상당히 온전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 물론 그럴수록 더 무섭지만.]}}}''' || 크기가 400m×140m에 면적은 6헥타르가 채 안 되는,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섬이지만 5,000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전성기 때에는 헥타르당 무려 835명이라는 당시 도쿄 23구의 9배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인구밀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인구 밀도를 가진 곳은 그 유명한 [[구룡성채]]지만 애초에 그 둘을 비교할 수가 없는지라…]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되어 석탄을 캐기도 했다. 그러나 [[석유]] 때문에 [[석탄]]이 도태되면서 1970년대 이후 에너지 정책의 영향을 받아 1974년 1월 15일에 폐광되었다. 폐광 당시 2,000명으로 줄어있던 주민은 3개월 뒤인 4월 20일 모두 섬을 떠나면서 완전히 폐광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당시의 자취는 여전히 남아있어 찾아가보면 을씨년스럽기 이를 데 없다. 수많은 건물들은 사람이 다 빠져나가고 섬 자체가 통째로 폐허가 되었다. 게다가 인구밀도가 워낙 높았던지라 오밀조밀 뭉친 건축물들은 [[구룡성채]]를 방불케 한다. 조그마한 섬 위에 고층건물, 그것도 폐허가 된 고층건물이 떠 있는 광경은 매우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폐광되고 난 뒤에도 섬의 소유권은 [[미쓰비시그룹|미쓰비시]] 마테리얼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2001년에 지자체인 다카시마정에 무상 양도되었으며 지금은 [[나가사키현]]으로 편입되어 [[나가사키시]]의 시유지가 되었다. 건물이 노후화되어 폐허가 된 곳이 많아 섬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2005년 8월 23일 기자들에 한해 특별히 상륙이 허가되어 완전히 폐허가 된 섬 곳곳이 여러 매체에 소개되어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이후 2008년에는 나가사키 시에서 조례가 제정되어 섬 남부에 정비된 견학통로에 한해 2009년 4월 22일부터 관광객의 상륙ㆍ견학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견학시설 이외의 섬 전체는 아직까지 출입금지구역이다. 출금 해제 한 달만에 4천 5백명이 넘는 인원이 섬을 방문했으며, 1년만에 약 59,000명이 섬을 방문했다. 또한 상륙하는 데 있어서 바람이나 파도 등 기상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나가사키 시에서는 상륙 가능한 일수를 연간 10일 정도로 예측하고 있다. 이 섬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2015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이게 한동안 논란이 되었다. 이걸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타지의 외국인과 한국인이 강제노동과 비참한 삶을 산 사람들이 죽은 참담한 곳을 등재해야 하냐는 입장이고 찬성파는 당시 일본의 경제를 이끌었으며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당시의 참담함을 그대로 갖고있어서 역사적으로도 가치가있다 라는 입장이다.] [[역사스페셜]]에서 제대로 [[http://www.kbs.co.kr/1tv/sisa/historyspecial/view/vod/1665656_30885.html|다룬 적]]이 있는데 군함도를 알고 싶다면 참고할 만한 가장 적절한 자료이다. 조금 부담이 적은 자료를 원한다면 같은 KBS의 [[역사저널 그날]]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jEfM9iTt3gwH_r7gFGVQ8fZtrOrsf4WT|80화에서 다룬 내용]]을 보는 것도 좋다. 책으로는 안재성의 <신불산:빨치산 구연산의 생애사>가 있다. 경상남도 지역 [[빨치산(조선인민유격대)]] 대원인 구연산(본명 구연철)이 어린 시절 모습으로, 군함도에 살았던 경험담이 잠시 언급된다. 구연산 자신은 광부인 아버지를 따라 군함도에 와서 학교를 다니던 학생으로 광산에는 한 번도 안 가봤지만, 강제징용이 시작되기 전의 군함도 모습부터 나오는 진귀한 자료. 구연철은 이후 군함도 영화가 나와 이 곳에 대한 관심이 생겼을 때 이곳에 대한 증언을 하기도 했다. 2016년 5월에는 작가 한수산의 2권짜리 소설 <군함도>가 나왔다. 같은 작가의 2003년에 나온 소설 <까마귀>[* 일본인들이 조선인에게 까마귀에게 하듯 돌팔매질을 했다고 해서 징용공을 까마귀로 치환해 붙인 제목.]에서 군함도 관련 부분만 발췌해서 내용 보강한 소설이다. 15세에 군함도에 징용된 서정우나 조총련계 박민규 등에게 취재한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합중국 해군 잠수함이 이 섬을 진짜 군함인줄 알고 [[어뢰]]를 발사하기도 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는데 실은 1945년 6월 11일 잠수함 USS 티란테(USS Tirante, SS-420) 함이 군함섬 앞바다에서 석탄운반선 한 척을 격침한게 '군함섬을 진짜 군함으로 오인공격'했다는 얘기로 와전된 것이다. 하긴 섬 자체가 작고 섬 위의 건물이 [[아일랜드(군함)|군함 상부구조물]]을 연상케 하는데다 연기를 내뿜는 굴뚝까지 솟아 있으니 얼핏 [[실루엣]]만 보자면 군함이라 착각할 만하다. ([[https://ja.wikipedia.org/wiki/端島_(長崎県)|일본어 위키 하시마 문서]], [[https://ja.wikipedia.org/wiki/ティランテ_(潜水艦)|잠수함 티란테 문서]]) [[메이지 유신]] 시대의 근대화의 산물로서 유네스코에 등록되었지만 정작 현재 하시마 섬 내의 메이지 시대 건축물은 다 무너져가는 3m 남짓의 제방 하나 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메이지 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현재 기준으로 60년 정도 된 건물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