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얀거탑(MBC) (문단 편집) === 2003년 일본 드라마와 비교 === 2003년 [[일본]]에서 제작된 <[[하얀거탑]]>과 MBC <하얀거탑> 중 어느 쪽이 더 잘 만들어졌냐에 대해서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일본 <하얀거탑>이 "하얀거탑"으로 은유되는 일본 의료 체계에 대한 비판과 고발 분위기라면, 한국의 <하얀거탑>은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비판받는 드라마계의 새로운 활력으로 기대를 모았다. ~~물론 이후 한국 방송계는 수많은 [[의학 드라마]]를 쏟아내며 다른 차원의 매너리즘에 빠졌지만(...)~~ 일본 <하얀거탑>이 원작에 충실하며, 주인공 못지 않게 조연 캐릭터를 잘 살린 반면 한국 <하얀거탑>은 장준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극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병원 의사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드라마 자체는 [[의학 드라마]]가 아니라 정치 드라마에 가깝다.[* 근데 사실 원작자 [[야마사키 도요코]]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원작자는 원래 어느 분야든 그 분야의 정치/권력 문제로 인한 갈등 구조를 주로 작품으로 쓰는 작가다. 그러니 당연히 원작도 의학의 탈을 쓴 정치 소설이다.] 사실 드라마 내에 묘사된 과장직을 둘러싼 정치 투쟁은 실제 한국 의과대학에서는 일본 의과대학만큼 심하지 않다. 일본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직도 각 과에 정교수는 과장 1명뿐이며 (그나마 내과나 외과의 분과장들에게 교수 직함을 주면서 원작 소설의 배경이던 1960년대에 비하면 나아졌다.) 나머지는 다 조교수(助教授/우리식으로는 부교수)와 강사(講師/우리식으로는 조교수)에 불과하다. 여기에 명예도 명예지만 주어지는 권한도 상당히 막강하다. 일본의 의과대학은 단 1명의 정교수가 그 밑의 조교수와 강사 및 의국장을 비롯한 의국원 등 수십 명의 스태프들의 인사권 등에 관해서 모든 권한을 가진 체계였던지라 아무리 조교수라 하더라도 정교수인 과장 눈밖에 나면 본원에서 쫓겨나 분원으로 전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다이묘]](大名)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의 의대 과장직은 투표로 선출하는 것도 아니고 의대 교수직 자체가 대부분의 교수들이 일정 업적과 근속 조건만 채우면 임상강사에서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로 차례차례 승진하는 케이스라 대부분의 병원에서 정교수들이 기간을 두고 서로 돌아가며 맡는 자리이기 때문에 거의 무소불위의 권한이 있는 일본 의대의 과장과 달리 인사권이 강하지도 않고, 때로는 과장에게 인사권이 전혀 없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례가 되어서 맡아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다 과장에게 주어지는 권한도 그다지 강하지 않다. 오히려 한국 같은 경우는 병원 및 사학 재단과 재단 이사진의 힘이 막강하지 병원장이나 중간 관리직들은 힘이 별로 없다. 아무리 의대 교수라도 그저 조직의 중간 관리직일 뿐이라 권한은 제한적이다. 물론 한국도 일본과 비스무리한 정치 싸움이 없지는 않다. 사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정치 싸움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특히나 외과 같이 규모가 크고 의국비나 연구비 등의 비공식적인 금전 문제가 많이 얽힌 과의 경우에는 한국에서도 과장 자리를 둘러싼 일정 급수 이상 중진 교수들의 정치 싸움이 간혹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한국 의과대학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일일 뿐, 일본처럼 교수들 간의 정치 싸움이 심하지는 않다. 이러한 차이의 원인은 일본은 과거 메이지 유신 이후 개화기 때 현대식 의과대학의 교육의 체계를 정립할 때 학과마다 1명의 종신 정교수가 존재하고 나머지 부교수와 조교수는 그저 정교수의 보조자일 뿐인 [[독일]]식 도제 교육의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여 의과대학의 교육체계를 설계한 반면 한국의 의과대학은 보통 전임강사로 임명되면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자동으로 승진하는 [[미국]]의 의과대학 시스템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발생한 차이다. <하얀거탑>을 크게 둘로 나뉘면, 절반은 외과 과장 선거를 둘러싼 여러 정치적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조직사회의 단면이고 나머지 절반은 [[의료사고]]를 둘러싼 의사와 병원 그리고 환자의 법적 공방이다. 초반을 따로 떼어놓고 정치 드라마라고 비판하는 것은 수긍이 가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얀거탑>이 전체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지적이라 하겠다. <하얀거탑>에서 지목하는 건 의술이 아니라 의사 자체이다. 하얀거탑에는 다양한 의사가 나온다. 야망을 추구하는 의사, 휴머니스트인 의사, 연구자인 의사 등. 그 다양한 의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의사란 무엇이고 그들에게 향할 수 있는 패러다임에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가? 물론 의사를 형성해가는 쉬운 방법은 "의사가 하는 일"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일이다. 그러나 <하얀거탑>에서는 그들에게 향한 시각, 그들의 꿈과 야망을 다룸으로 우리 사회 속에서 의사를 찾아내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단순히 장준혁이란 인간의 판타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존재한다. 병원이라는 무대 자체가 그저 현대사회의 성공담을 다루기 위해 선택된 직업일 뿐이라는 반론이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보자. 이 드라마가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고 성립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장준혁]]의 죽음이 의사라는 직업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이야 말로 우리나라 드라마의 고질적인 상투성을 답습하는 일이 아닐까? <하얀거탑>은 장준혁이 의사이고, 그 무대가 병원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생기지 않는 허무한 이야기일 것이다. 우선 그 이야기는 대단히 정직하고 모범적인 정통 비극의 스토리를 따르고 최후의 장준혁은 다른 어떤 존재가 아니라 진짜 의사로서 거듭나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의사에 대한 이야기, 의사를 고찰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최도영]]과 [[오경환(하얀거탑)|오경환]]처럼 매사에 원리원칙을 따지고 엄정하고 공정한 사람이나 [[노민국]] 같이 단 한가지 부분도 흠잡을 수 있는 부분이 없이 완벽한 사람이 판타지적이지, [[장준혁]] 같이 조직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다 양심에 거스르는 일도 눈 딱 감고 해버리는 사람이 오히려 현실적이라 봐야 한다. 장준혁은 완벽한 삶을 손에 넣기 위해 의사를 선택했고 때로는 비굴하고 야비하게 남을 속이고 물리치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또한 자신의 죽음과 대면하면서도 '폐결핵의 옛병소'를 '암전이'로 의심하고 "혹시 모르니까 폐생검부터 하고 수술하라"는 최도영의 권고를 무시하고 수술을 거부하지만, 결국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최후를 맞는다. 우리는 그의 삶과, 그가 만났던 많은 의사들을 통해 의사들의 다양한 모습과 그 진정한 정체성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막연하게 환자를 구하는 사람, 봉사하는 사람으로만 존재한 [[한국 드라마]]계에 뚜렷한 인간성을 가진 의사 캐릭터를 추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이 드라마의 가치는 각별하다. 덧붙여서 일본 드라마와 한국 드라마의 엔딩이 살짝 다르다. 여기까지 이르는 20회 동안 다소 고비가 됐던 부분도 있고 극적으로 실패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뛰어난 영상미와 관념적으로 삽입하던 배경음악 사용의 타파, 강렬한 개성을 발한 캐릭터로 인해 2007년 최고의 드라마라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이 드라마의 성공은 드라마계의 왕자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MBC 드라마를 되살렸고 나아가 한국 드라마계에 일침을 가했다. 한류 열풍이라는 이름으로 외국 시청자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시청자를 바로 보고 작가의 긍지를 걸어 볼만한 드라마를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성공하는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아부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작품이라는 것, 그렇기에 이 드라마의 성공은 통쾌하고 개운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