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이텔 (문단 편집) == 하이텔 시절 == 1992년 7월 가입비 10,000원 + 이용료 월 9,900원으로 유료화를 단행한다. 단, 가입비는 1990년대 후반까지 면제되었고, 이용 요금은 1990년대 후반에 11,000원으로 오른다. 덕분에 한국PC통신 본사 앞에서 유료화 반대 [[촛불시위]]가 벌어졌는데, 이 시위가 '''한국 최초의 네티즌 주도 촛불시위'''라고 한다. 당시 하이텔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부분. 이 시위에서 훗날 '하동연'으로 자리 잡는 '동호회 연합회'가 결성되었고,[* 사회언어학에서도 이 사건이 유의미한데, 이 시점이 남한 한국어의 두음법칙이 음운화(phonologization)를 완료한 시점이라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즉, '연합회'의 도출이 더이상 /련합회/ → [연하푀\]가 아니라, 아예 기저형에서부터 /연합회/가 되었다는 의미. 만약 ㄹ어두 기저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국련]]', '[[한총련]]', '[[자민련]]', '[[소련]]' 등의 사례를 따라 '하동련'이 되었을 것이다. 즉 '聯'의 본음은 '련'이고 두음 법칙상 '연'이 될 뿐임을 인지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본음 자체가 '연'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이후 '[[전장연]]', '[[대진연]]' 등 수많은 파생형이 생기게 되었다.] 당시 KETEL 전체 동호회의 대다수가 동호회 초기화면을 통일해서 바꾸는 등, 상당한 파급이 있었다. 시위의 원인은 단순 유료화 반대가 아닌 "신용카드 ONLY"라는 대금 결제 조건[* 지금이야 체크카드가 보급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학생들의 경우 카드 발급을 받을 수 없으므로 자동으로 유료 이용자 층에서 떨어져나가게 된다는 점.] 때문이었고, 이러한 촛불시위와 결합된 온라인 시위의 결과로 결국 회사는 유료화 요금 결제 조건을 신용카드 ONLY에서 "지로 선납제"까지 후퇴하게 된다. ~~후불은 죽어도 안 된다?~~ 이 촛불시위를 당시 KORTEL 소식지인 '꿈따라'[* 하이텔 유료회원들을 대상으로 발간하던 매거진 형태의 월간 소식지로서 매달 우편을 통해 회원들의 집주소로 직접 일일이 보내줬다.]에서 '촛불잔치(!)'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다시 한번 가루가 되도록 까였었다.[* 요즘 세대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부분인데, 촛불잔치는 1985년 이재성이란 가수의 힛트곡 이름이다. 단순 폄하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유행가 제목을 따다 붙여놓고 뉘앙스를 가볍게 퉁치려 해서 당시 유저들이 빡친 것.] [[1994년]]부터 한국통신(현 KT)에서 [[PC통신]]의 인기가 높아지자 01410 접속만 가능한(즉, 채팅이나 정보 검색만 가능하고 파일 다운로드 따위는 안 됨) 단말기를 무상으로 대여해주기도 했다. 2,400bps(0.3KB/s)짜리 모뎀, 브라운관, 키보드를 포함하고 있었다. 전화 접속뿐 아니라 시리얼 통신도 가능했기 때문에 당시 얼마 없었던 리눅스 유저들은 자기 컴퓨터에 2번째 접속하는 터미널로 쓰기도 했다.[* 그리고 '''현 세대 리눅스 컴퓨터에서도 터미널로 사용 가능하다!''' 심지어 한글 입출력까지 완벽하게 지원한다.] [[한국통신]]에서는 사람들에게 대여해 준 후 --처분하기 귀찮아서-- 회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 현재까지도 이 물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90년대말에는 전화국 재고단말기를 무상으로 나눠준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는데, 애초에 많이 만들지도 않은 것이고 연한이 지난 재고를 가지고 있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56kbps 모뎀에 컬러ANSI가 난무하는 1990년대 후반에 2400bps에 그린모니터니... 어쨌든 매년 수백억의 매출액과 수십억의 흑자액을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이익을 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물론 하이텔 본사인 한국통신은 전화요금으로 하이텔로 벌어먹는 금액보다 훨신 많은 이익을 얻었다.~~ ~~ATDT~~ 01410(14.4kbps 모뎀용), 01411(28kbps 모뎀용), 01412 or 01432(56kbps 모뎀용)를 통해 접속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까지 [[모뎀]]이 내장된 하이텔 단말기를 전화국에서 무상 대여했는데, 뒤에는 전화국에서 이 대여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때 전화국을 방문하면 남은 재고를 무료로 가져갈 수 있었다는 얘기가 있다. 01411도 이후 33.6kbps, 56.6kbps를 지원하게 되었고 01412는 POWWOW라는 별도의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게 된다.] 별칭으로는 안녕텔 및 안녕전화[* 이 용어를 즐겨 쓴 사람이 [[이영도]]이다. [[https://bbs.ruliweb.com/family/212/board/300143/read/50551492|serial]]란에 올린 [[드래곤 라자]] 연재분 말미의 잡담에 이 용어가 많이 언급되었다.], 로우텔, 빡텔, 미친텔(...) 등이 있었다. 저런 멸칭이 붙은 이유는 심심하면 서버 접속이 끊겨서 처음부터 다시 전화걸기부터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했기 때문에[*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저 당시 전화접속이 끊기면 모뎀으로 전화를 걸어서 → ID. 비번 치고 로그인 → 아까 전에 활동하고 있던 게시판이나 동호회로 명령어를 직접 입력(예: go serial, go ani 4)해서 다시 들어가야 했다. 특히 대화방에서 채팅 중에 "통신장애로 퇴장되었습니다" 뜨면 사람 성질 버린다. 요즘으로 치면 배그나 롤 하는 중에 회선 장애로 갑자기 접속이 끊어지는 사태에 비유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게 한 시간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에러였다는 것.] 빡친 이용자들이 내뱉는 육두문자에 가까웠다. 유명한 동호회 중 하나로는 개오동[* 개털 오락 동호회의 약자. 케텔 시절 하도 장애가 많아서 케텔을 '개털'이라고 불렀던 것이 그 시초다. 개오동 공지란에 있던 개오동의 역사를 적은 게시물에 이 유래가 언급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ㅐ와 ㅔ의 구분|게]]임/오락동호회로 잘못 알고 있다. 그렇다고 개오동나무가 유래인것은 더더욱 아니다.]이 있었다. 2000년대 이후 '적절한 그분'으로 인터넷에서 희화화된 [[김대기(프로게이머)|김대기]]도 이 곳 출신이며, [[김동준(게임 해설가)|김동준]] 해설도 이곳 운영진 출신이다. [[채정원|이 분과 스타크래프트로 맨날 싸우던 분]]도 이곳 출신. 유명한 개발자 몇몇을 배출한 게임제작동호회도 원래 개오동의 게시판에 있다가 독립해 나간 케이스이다. 이러한 인원풀이 있었기 때문인지, 당시 PC통신상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다루는 게임 동호회중에서는 심도있는 글이 많이 올라오던 게임 동호회이기도 하였다. 멀티플레이 전략은 물론, [[한스타]]가 나오기 이전부터 스타크래프트 캠페인 모드의 대사번역이 가장 빨리 올라왔으며 캠페인 스토리에 관한 이야기도 꽤 있었다. 나우누리에서 비슷한 포지션의 게임동호회로는 나모모가 있다. 사실 개오동의 리즈 시절은 스타크래프트 이전이었다. PC방 열풍이 불기 전 특히 도스 환경에서의 게임은 소수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게임 실행, 공략, 또는 [[파고들기|** 안 하고 깨기]] 등 모든 범주가 다양하게 논의되었다. 여담이지만 개오동에선 국회의원을 두 명[* [[이찬진]], [[안철수]]. 특히 안철수는 백신 개발자로써 개오동 외에도 여러 곳에서 활동했고, 개오동에서 유령 회원을 정리하는 목적으로 회원을 전부 탈퇴시키자 바로 재가입 신청을 넣은 적도 있다.]이나 배출하여 나름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또 유명한 동호회 중 하나로 애드립 동호회가 있다. 1990년대 PC에서는 소리를 내기 위해 [[애드리브(사운드 카드)|애드립]], [[Creative|사운드블라스터]], [[옥소리(사운드 카드)|옥소리]] 등의 기판이 추가로 필요했고, 애드립 동호회는 도스 환경에서 이들을 구동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보와 창작물(주로 작곡한 곡)이 오가는 교류의 장이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미디]](MIDI) 음원으로 작곡을 하는 미디 동호회도 활동하였다. 1990년대 말 사운드카드 및 미디가 소프트웨어 에뮬레이션으로 구동되고 메인보드에 통합되는 시대의 변화를 맞아 쇠퇴하게 되었다. 동호회에서 가장 규모가 큰 PC 관련 OS동우회(동호회가 아니다. 공식 명칭이 동우회였다.)가 있었는데, 온라인 쇼핑이 없던 시절 PC관련해서 다양한 제품들의 공동구매를 이끌어내고,(워낙 규모가 큰 동호회였기 때문에, 제품 총판과 공동구매를 많이 이끌어 냈다.) OS 동우회에 제품이 좋다는 소문(바이럴?) 이 돌면 해당 제품이 [[용산전자상가]]에서 해당 제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현상이 있었다. 한국 1~2세대 [[오타쿠]]의 산실인 ~~동인샵이 아니라~~ [[애니메이트(커뮤니티)|애니메이트]] 등이 있었고, [[알지롱]]이라는 PC통신풍 커뮤니티도 하이텔이 전신인 셈. (후술한다.) [[스타크래프트]] [[유즈맵]]계의 [[고대]]작들 중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이 많으며, [[판타지 소설]]계에서도 [[드래곤 라자]]와 [[퇴마록]], [[데프콘(소설)|데프콘]]이 연재된 곳이라는 의의를 갖고 있다. 작가 라인업에서는 후에 [[커그|작가들이 커뮤니티를 결성할 정도]][* 다만 그 결성의 계기는 좀 씁쓸하다.]로 화려한 나우누리 SF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퇴마록과 이영도의 브랜드 파워는 나우누리의 쟁쟁한 작가진들과 맞먹어도 꿀리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흑역사]]급 동아리도 있는데, 하이텔 내에 존재했던 '주부동호회(주부동)'는 서울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및 기타 학부모 단체들과 연계하여 [[세일러문]], [[소년기사 라무]]의 국내방영을 필사적으로 반대한 바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축구 국가 대표팀]] 서포터즈 '[[붉은악마#s-2]]'를 하이텔 축구동호회를 주축으로 결성해 냈다.[[https://theme.archives.go.kr/next/worldCup2009/redDevils.do|관련자료1]][[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2/06/11/2002061170366.html|관련자료2]] [[운동권|학생운동단체]]가 애용하기도 했다. 바른통신동호회(go barun). [[전대협]] 시절과 [[한총련]] 시절 여기서 자료집을 받아 인쇄해 각 학교에 배포하기도 하고 연락을 주고받는 통로로 사용했다. 학습이라는 명목으로 각종 불법자료도. [[김영삼]] 정부시절 [[청와대]] [[신문고]]도 하이텔에 개설되었다(go bluehouse). 이것은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에 모두 있었던 듯. 좀 더 범위를 넓히면 [[대우자동차]]가 전성기였던 1994년에 대우자동차가 '오토컴'이라는 '''기업 최초의 자동차 게시판'''을 개설해[* 1993년에 [[현대자동차]]도 PC통신 서비스를 천리안에서 제공했으나, 현대차는 자사 모델만을 중심으로 서비스했다. 대우 오토컴은 타 제조사 관련 내용도 자유롭게 적을 수 있었다.] 현재 [[보배드림]]급의 파워를 자랑했었으나... 대우자동차 홈페이지가 96년도에 설립된 이후로는 힘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민간인 측에서 서버 이전을 받고 2002년 1월까지 운영하다 폐쇄되었다. 이후 오토컴 내의 동호회들 중 하나였던 [[대우 르망]], [[대우 씨에로]] 오너들의 '내친구 르망(LCN)'은 자체적으로 게시판 데이터를 대우차로부터 백업받아, [[LCN]]이라는 자체 동호회를 세운 뒤 이시절의 자료들을 제한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1991년에 세워진 진보계열 동아리인 '바른 통신을 위한 모임(이하 바통모. [[천리안(포털사이트)|천리안]]의 희망터와 [[나우누리]]의 찬우물 포지션.)'도 있는데, 1988년 10월에 [[한겨레]]가 창간되자 진보성향 유저들은 한국경제신문에 한겨레 기사도 올려달라고 했으나 한경 측이 이를 거절하자 일부 유저들은 직접 한겨레 기사를 타이핑해서 케텔 게시판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런 유저들이 모여 처음엔 ‘한국민주통신동호회(이하 한민동)’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200명의 발기인을 모아 동호회로 만든다는 목표로 준비작업에 들어가 1991년에 위와 같은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전대협 말기와 한총련 초기에 자료를 교환하는 게시판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상한 것들을 올리고 다닌 건 아니다. 노태우 말기에는 [[마르크스주의]] 철학 쪽은 일반 출판물로도 해금돼 있었다.] 하이텔 출신의 유명 네임드로는 '''[[김유식]]''', [[안철수]][* ahn.cs라는 아이디를 사용했다. 특수문자 아이디 사용은 초창기에만 허용되었으므로 매우 이른 시기에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영도]], [[김경진(소설가)|김경진]], [[델리스파이스]], [[듀나]], [[이우혁]], [[송락현]], [[주석(가수)|주석]], [[PC Tools|PCTools 김현국]], 그리고 앞서 말한 적절한 그분 등이 있다. 그 외 plaza란에서 [[1997년 외환 위기|IMF]]가 닥치기전 '''독자적으로 [[1997년 외환 위기|IMF]]를 예견했다가 [[코렁탕]]을 먹을 뻔한''' 용자 (seokjeff : 석진욱)도 당시 plaza란 유저들 사이에서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흑역사급 인물로는 [[김완섭]]이 있다. 여성운동 진영에서 종종 보이는 "부모 성 함께 쓰기"도 하이텔에서 출발하였으며 (조은광순, 신정모라 등), '벙개' 등의 통신용어, '수구꼴통' 등의 표현 등이 처음 시작된 곳도 하이텔이다. 네이버가 시초라고 알려진 "지식검색 서비스"의 시초가 바로 하이텔의 "하이텔 서당" 서비스. 하이텔 서당의 GO 인덱스(메뉴 직접 이동 명령인 GO 명령으로 찾아가는 일종의 부호)중 하나가 '''TE31''' 이었는데[* 다만 처음에는 "TE31"이 아니라 "TE11"이였다. 원래는 컴퓨터 하드웨어 관련 질문답변을 올리는 TE01, 컴퓨터 소프트웨어 관련 질문답변을 올리는 TE02.... 이런 식으로 해서 기타 질문답변을 올리는 TE10 까지 있었으나 몇몇 이용자들이 부적절한 질문을 올려대서 게시판의 분위기가 엉망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여서 생겨난 것이 유치하거나 사소한 질문답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게시판인 "호기심해결 Q/A (TE11)"이였다. 이후 하이텔의 인덱스 개편작업을 통해 "TE11"은 "TE31"로 바뀌었고 이는 하이텔의 서비스 종료까지 쭈욱 이어졌다.], 그래서 아직도 하이텔 서당은 "알지롱 (TE31.COM)"으로 명맥을 유지 중이다. 다만 하이텔서당 시절부터 있었던 구성원은 지금은 극소수이며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서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http://te31.com|참고 링크]]. 하이텔 내에는 동호회(SIG)외에도 여러 기업체나 노동조합 등 재야 사회단체들의 CUG[* Closed Users Group. '폐쇄이용자그룹'의 준말.](닫힌 모임)가 존재하였는데, 모기업인 한국통신 [[노동조합]] CUG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CUG는 1994년에 개설되어 1995년 한국통신 파업 당시 투쟁지침을 하달하고 파업 관련 속보를 보내서 대국민홍보에 나서는 등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서다 그해 5월 22일~6월 4일 사이에 이용약관에 따라 게시글 28건이 삭제되었고, 6월 6일에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와 동법 시행령 16조에 따라 폐쇄되었다가 이용자들의 항의로 열흘 만에 철회되었다. 6월 6일 폐쇄 이후 노조 측은 하이텔 PLAZA에서도 게시글을 작성하다 [[노조]] 관련 게시글 181건([[노조]] 측 게시글 7건, 나머지는 일반사용자 게시글들)이 무더기로 삭제되기도 했다. [[https://act.jinbo.net/wp/1074/|1]], [[https://act.jinbo.net/wp/1127/|2]], [[https://act.jinbo.net/wp/1180/|3]] 이후 노조 측은 CUG 폐쇄 건에 대해 한국통신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으나 1996년 1심, 1997년 2심, 1998년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세 번 다 패소당했다. 불법자료 단속은 나머지 3~4대 통신 중에서 가장 철저히 했는지, 일단 동호회 통합자료실 개념이 없어 나우누리, 유니텔과는 달리 (듣보잡 소모임에) 우회적으로 올려서 (동호회 통합자료실로) 우회적으로 받는 수법이 먹히지 않았고, PCCOM[* 보통 PCCOM(n)이며 pccom1, pccom2, pccom3 등이 있었다. 나우누리로 치면 나우지기에 상응하는 존재.] 이하 ~~복제인간~~ 관리자들의 모니터링이 철저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하여튼 불법자료에 관해서는 대형 PC통신망 중 비교적 클린한 축에 속했다. 다만 PC통신의 말기이자 대세가 인터넷으로 완전히 넘어간 2000년대 초반에는 "[[주시경]] 선생의 우리글 97"(...)이라는 이름으로 [[한글 97]]이 통째로 올라오고, [[드래곤볼]] 코믹스 스캔본이 "두라곤발"이라는 [[이두|한자 이름]]으로 버젓이 올라와 있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2003년에는 기존의 VT 기반의 PC통신 서비스와 완전 단절된 인터넷 커뮤니티로의 전환을 발표하는 등, PC통신 서비스를 중단하기 위해서 행보를 보이더니, 결국 [[2007년]] [[2월 28일]], 하이텔VT 서비스를 중단하였다. KTH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 따라 오는 3월부터 하이텔 서비스는 폐지되고, 현재 이용자들이 축적한 동호회, 게시판 등의 DB는 포털 [[파란(포털)|파란]]의 클럽서버로 이전될 것"이라며 "이외에 아이디스크(IDISK), 프리미엄 e메일 등 기존 멤버십 서비스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70202/8402826/1|관련자료1]][[https://news.mt.co.kr/mtview.php?no=2007012916420463281&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관련자료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