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일성 (문단 편집) == [[KBO]] 사무총장 == ||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6090801000689600045511.jpg|width=100%]] || || {{{#fff ▲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직후, 야구대표팀 단장 자격으로 코칭스탭과 함께 찍은 사진[* 뒷줄 오른쪽 3번째가 하일성이다.][* 자신의 묘비명을 '올림픽 야구팀 단장'으로 정했을 정도로, 그에게는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을 듯.]}}} || 전국민적으로 유명한 해설자였기 때문에 한국 야구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으며[* 1980~90년대에 각 구단 [[프런트]]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감독]], [[코치(스포츠)|코치]]를 추천하는 등 팬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많다고 한다. 워낙 술을 좋아하고 친화력이 좋아서 프런트, 지도자, 선수를 가리지 않고 야구계의 마당발로 KBO 인맥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신상우]] 총재 시절에는 이러한 영향력과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사무총장이 되었으나 막장 운영 덕에 [[신상우]] 총재와 함께 쌍으로 까였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한일 월드컵]] 열풍 때문에 야구계에서는 암흑기가 드리웠다가[* 다만 축구계도 월드컵 효과를 받아먹지 못한 건 매한가지이다. 현재의 우수한 축구 인프라는 월드컵을 명분으로 정부나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노력해서 확보된 것이지 축구계에서 노력해서 확보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월드컵 4강이라는 엄청난 호재를 전혀 살리지 못해서 지금까지도 K리그는 관중동원이 잘 안 되는 상황이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으로 야구가 중흥기를 맞이하는 전환점을 마련했음에도 특별히 한 일이 없었다는 평가. 가장 큰 실책은 재임기간 동안 [[현대 유니콘스]] 매각 문제에서도 제대로 한 게 없다는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7개 구단 체제가 될 뻔한 적도 있었다.[* 허나 [[현대 유니콘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당시 현대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KBO가 어리숙한 모습을 보인 것은 맞지만, 이미 야구기금이고 뭐고 싹 다 유니콘스에 소진된 상황에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모기업 하이닉스가 버티는 상황에서 현대는 매각이 사실상 불가능했으며 히어로즈처럼 해체 후 재창단만이 답인 상황이었다.] 다행히 현대의 선수단을 이어받은 [[넥센 히어로즈|히어로즈]]가 [[이장석]]의 역량으로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거기다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각 구단들이 아마야구에 투자를 하지 않게 되어 연고권 지역 내 유망주들의 씨가 말라버리는 최악의 전개로 치닫게 만들었다. 다만 1차 지명에 대해서는 하일성도 억울한 측면이 있는데, 하일성은 오히려 1차지명의 확대를 주장했던 사람이다. 구단들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1차 지명 폐지를 주장해왔고, 하일성은 이와 반대로 1차 지명자를 3명까지 확대하려고 시도해왔다. [[한국프로야구/2006년/신인드래프트|직전 드래프트]]와 달리 [[한국프로야구/2007년/신인드래프트|2006년에 있었던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자가 2명으로 늘어난 것은 바로 하일성이 강력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팜이 좋지 않은 구단들의 반대와 현대 유니콘스 매각의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2008년 1명으로 줄고 2009년을 마지막으로 2010년에는 1차 지명이 없어졌다. 1차 지명 제도는 2013년에 부활했지만, 역시 지역 불균형 문제가 대두되면서 [[KBO 리그/2023년/신인드래프트|2022년]]부터는 다시 폐지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