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후연 (문단 편집) === [[창희]] 토벌 === [[장료]]는 하후연과 함께 [[서주(중국)|서주]] [[삼국지/지명/서주#s-4|동해군]]에서 [[창희]]를 포위했는데, 여러 달이 지나 군량이 소진되자 회군 문제를 논의하게 되었다. 장료가 하후연에게 말했다. >며칠 사이 매번 포위된 곳을 순시할 때마다 창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들이 화살을 쏘는 일이 드물었소. 이는 필시 창희가 마음속으로 망설이는 게 있어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이오. 내가 그와 얘기를 나눠볼까 하는데 어쩌면 그를 달랠 수도 있을 것이오. 이에 창희가 투항을 하였다. [[건안]] 5년([[200년]]), [[하후패]]의 사촌 여동생이자 하후연의 조카딸이 되는 [[하후씨(촉한)|하후씨]]가 13살일 때 [[장비]]와 결혼한다. 이후 다시 창희가 모반하자 조조는 [[우금]]을 보내 창희를 공격하게 했는데, 우금이 공략하지 못하자 다시 하후연을 보내 우금과 힘을 합치게 했다. 마침내 창희를 공격하여 10여 둔영을 항복시켰고 창희는 우금에게 나아가 투항했다. <우금전>에 따르면 창희는 우금과 교분이 있었으므로 우금에게로 나아가 항복했다. 제장들은 모두 창희가 이미 항복했으므로 응당 조조에게로 호송해야 한다고 했다. 우금이 말했다. >포위당한 후에 항복한 자는 사면하지 않는다 했소. 비록 창희가 옛 벗이긴 하나 나 우금은 절개를 잃을 순 없소! 이에 우금이 직접 창희의 형을 집행했는데, 눈물을 흘리며 창희를 참수했다. 하후연이 돌아오자 조조가 하후연을 전군교위에 임명했다. 《위서》에 따르면 하후연은 장수가 되어 행군이 매우 빨라 항상 적이 예상치 못한 곳에 나타났으므로 군중에서 이를 두고 말했다. >전군교위 하후연은 사흘에 오백리, 엿새에 천리를 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