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광복군 (문단 편집) == 광복군 복원선언(光復軍 復員宣言) - 1946년 5월 16일, 공식해체 == 이 선언은 [[조일문]] 지사가 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 선전과장 재직시, 광복군 복원(사실상 해산) 결정에 따라 기초한 것이다. 초안은 정훈처장, 참모장을 거쳐 총사령의 재가를 얻은 다음, 중국어로 번역하여 한국 광복군총사령 명의로 공포되었다. 중화민국 남경(1946년 5월 16일)에서 공표되었다. >본군은 30여 년의 줄기찬 항적 복국정신을 받들고, 국내외 무력혁명의 대통을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 >1907년의 의병봉기 이래, 우리는 만주의 밀림 광야를 전전하며 적구와 싸우는 동안, 막중한 출혈과 희생 속애서 분전고투하였으나, 정의는 반드시 이기고 진리는 반드시 빛을 보리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 >1940년, 중국의 대일항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태평양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본군은 중국조야의 뜨거운 성원 속에 성립되어, 중국 각지의 애국청년을 망라하니, 그 기(氣) 드높고 그 세(勢) 울연하였다. 광복군 성립 후 7개 성상[* 星霜 : 星은 1년에 하늘을 한 번 돌고, 霜은 1년에 한 철 내린다는 뜻]에 걸쳐, 북으로는 만리장성으로부터 남으로는 갠지스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제 1, 2, 3, 5, 10전구의 중국군과 미얀마, 인도의 연합군 배합(配合) 병미(倂眉)하여, 적과 더불어 혈전을 벌여왔다. 30여년간 대적투쟁에서 피아의 전역은 대소 640여 차에 이르렀으며, 적에게 희생된 동지는 만 명을 헤아린다. > >이제 , 숙적 일본이 항복하여 연합군은 승리를 획득하고, 우리국토는 광명을 되찾았으니, 본군의 중국경내에서의 작전임무는 이로써 끝났다. 춘풍추우 수십 년 망명과 항전 과정에서, 우리는 이 날이 오기를 얼마나 고대하였던가! > >이에, 본군은 복원을 선포, 전대원이 귀국하여 조국을 건설 대업에 참가할 것을 명한다. > >일본의 유린을 받은 1910년 이래, 한국의 민생은 도탄에 빠져 헤어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목하 국내정국은 혼란하여 그 정돈에는 상당한 시련이 예상된다. 본군 복원대원들은 모두 정돈과 노력을 다하여, 안으로 민주 결단을 실현하고, 밖으로 독립 평화를 달성하도록 힘쓸지어다. 한민족으로 하여금 영원이 식민지의 굴레, 봉건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 행복, 존엄을 향수하도록 할 것이며, 결코 불행하였던 역사의 전철을 밟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침범하는 제 2의 적이 나타날 때에는, 본군이 놓았던 총을 다시 잡고 전장에서 그들을 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본군은 그 동안 항일전선에서 고귀한 희생을 당한 동지들의 명목을 빌며, 본군을 적극 지원하여 준 중국을 비롯한 미, 영, 소 제국에 대하여 깊은 사의를 표명한다. > >대한민국 28년[* 1946년을 의미하는 대한민국 년호로 1919년부터 시작한다.] >중화민국 35년[* 1946년을 의미하는 중화민국의 년호로 신해혁명이 있었던 1911년부터 시작한다. 현재 대만은 이 년호를 유지하는 중이다.] 5월 16일 > >광복군총사령 이 청 천 이로써 1940년 9월, 임시정부의 국군으로 창건되어 그 임무와 역할을 수행하던 광복군은 5년 8개월간 대장정을 끝내고 국내로 귀환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