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민주당 (문단 편집) == 평가 == 한국민주당은 오늘날 인상과 달리 시작은 [[원세훈]], [[김약수]] 등도 참여한 좌우합작 형태로 시작한 빅텐트 성격의 정당이었다.[* 광복 이후 최초로 창당된 민주당계 정당인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EB%AF%BC%EC%A3%BC%EB%8B%B9|고려민주당]]은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운 정당이었다. 그러다 얼마 안가 한국민주당의 전신 중 하나인 조선민족당에 합류했고, 조선민족당(대한민주당)이 한국국민당과 합당하면서 좌우익 세력이 모여 탄생한게 한국민주당이었다.] 원세훈, 김약수,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다.], [[김준연]], [[백남훈]], [[송진우(독립운동가)|송진우]], [[조병옥]] 등 독립운동가들도 다수 참여했다. 해방 정국에서는 친미군정 성향이었고[* 물론 친미라는 점을 빼고는 자신들 개개인 집단의 가치관이나 이익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활동했다.], 창당 선언문에도 보이듯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봉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이 주축이 된 [[한국독립당(1940년)|한국독립당]]과 통합 논의도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그러나 점점 호남 지역을 위시한 [[지주]]층 중심의 우익 세력들이 당 주류를 점하기 시작하고, 당내 중도파들이 시도한 좌우합작운동에도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 탈당 사태를 초래하기도 한다. 지주, 자본가 세력이 중심축 중 하나였고 당내 좌파들도 공산주의에는 부정적이었기에 반공주의를 내세웠고, 이를 명분으로 [[이승만]] 정권과 협력해 [[반민특위]] 활동 무산에도 나서 당내 갈등과 친일정당 인식을 키웠다. 허나 제1공화국 시기에는 내각 약속을 어긴 이승만과 사이가 틀어져 반이승만을 내세운 야당으로 활동하였다.[* 이에 열받은 [[이승만]]이 한민당 뒷배인 지주층 돈줄을 말려버리려고 무려 [[조봉암]]까지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영입해 추진하려고 한게 농지개혁법이었다. 물론 한민당내에서도 무조건 농지개혁법 반대론자만 있었던건 아니다만. 이후 조봉암도 이승만과 사이가 틀어져 민주당 창당 과정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무산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보수를 넘어 수구정당화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의외로 오늘날의 관점에서 봐도 개혁적인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송진우(독립운동가)|송진우]] 등 한국민주당 주류는 주요 산업 국유화, 계획경제, 경제통제, 토지 소유 제한-매매 금지, 8시간 노동제 등을 공약했다.[* 다만 창당발기인이었던 [[허정]]은 사견으로, 이것은 본질적으로 한국민주당이 추구한 방향은 아니었으며 한민당은 (반독재)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한국민주당의 개혁적 방향은 어디까지나 보수주의로 가기 위해서(?) 일본의 유산들을 정리하기 위한 변칙적인 행보였다고 주장했다. 보수주의보단 시장경제 체제로 가려 했다는걸 말하고 싶었던 모양.] [[원세훈]], [[김약수]] 등이 한국민주당의 경제-사회 공약을 입안했다.[* 이는 [[조소앙]]의 영향을 받아 [[한국독립당(1940년)|한국독립당]]이 추구한 방향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공감대도 여기에 반영돼 있다. 물론 지주들의 이익이 걸린 토지개혁 같은 문제에선 한국민주당의 각론은 좌파 정당들의 공약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긴 했다. 사실 어찌보면 [[미군정기]] 여러 국내 인사들이 이념 갈등에 [[암살]]당하고 그들을 따르던 무리가 해체되면서, 해방 정국에서 큰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운 좋게 세력이 유지되어 제1공화국 시기 이승만 세력 최대의 라이벌로 부상한 점도 있었다. 물론 반탁/찬탁 운동이 전개되면서 자체적으로 세력을 키운 점도 있지만. 1949년 당 해산 이후 정계에 남은 인물들은 후신격인 [[민주국민당]]으로 들어가거나 정치적 구심점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1954년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해 탈당한 [[김영삼]], [[민관식]] 등 자유당 탈당파 10여명과 함께 [[민주당(1955년)|민주당]] 창당에 관여했고, 소수는 이승만의 [[자유당]]으로 넘어갔다. [[민주당계 정당]] 계보에도 들어가는 정당 중 하나로[* 참고로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인정하고 기념하는 전신은 1955년 창당된 [[민주당(1955년)|민주당]]이고, 실질적인 전신은 DJ의 [[평화민주당]]이나 친노계까지 합류하는 [[민주당(1991년)|민주당]]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법적으로 연관이 있는 최초의 전신 정당은 1995년 창당된 [[새정치국민회의]]이다. 또 실질적으로 볼 경우엔 [[국민의힘]] 등 '''보수정당도 아예 연관이 없는 정당은 아닌게''' 3당 합당 당시 참여한 통일민주당을 통해 한민당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김대중이 주축이 되어 창당한 평화민주당도 신민주연합당, 민주당, 통합민주당으로 당명 변경을 거쳐 1997년 한나라당에 흡수되기 때문이다.] 청년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당하여 시당 상무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었다. 다만 상기했듯 여러 흑역사들이 있을 뿐더러 지금의 민주당계 인사들과는 큰 연관점도 없어서인지[* 2020년대 초반 기준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주로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이나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 더불어민주당에선 이 당을 원류로 보진 않고 있다. 애초에 민주당계 정당이 복잡한 이합집산을 많이 거쳐온 역사를 가지고 있어 한민당 세력 외 다른 세력들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더 그렇다. 다만 민주당의 정신적 구심점 중 하나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민주당을 거쳐''' 꾸준히 그 후신 정당을 따라 이어지는 정치 역정을 밟은건 사실[* 1947년 한국민주당에 입당하여 1949년까지 활동하였고, 이후 1955년 [[민주당(1955년)|민주당]]으로 이어지는 [[장면]]의 민주당 신파 직계로 활동했다. 훗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민주당 경력을 시기와 때에 따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피력하며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민주당을 더불어민주당의 직계 전신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런 식으로 치자면 국민의힘의 직계 전신이라 보기 어려운 자유당 또한 보수정당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거쳐온 정당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당을 선배격 정당으로 취급하는 보수인사도 있긴 하다만 공식적으로 현재 보수정당은 직계 뿌리를 [[1990년]]에 창당한 [[민주자유당]]으로 여긴다. 이는 자유당 독재 시절의 행각 뿐만 아니라 이후 군부독재 시절의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에 대한 이미지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기했듯 한민당도 굳이 따지고 보면 현 보수정당의 한 원류기도 하다.]이기 때문에, [[정의당]]이나 [[민중당(2017년)|민중당]], [[노동당(대한민국)|노동당]], [[녹색당(대한민국)|녹색당]] 등의 진보정당들과 달리 한국민주당을 대놓고 비판하진 않는 편이다. 사실 진보정당에서도 오래 전에 존재했던 정당이라 언급하는 빈도는 드문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