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원자력의학원 (문단 편집) ===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 원자력은 원자를 기원으로 하는 에너지로 원자핵 반응을 통해 생기거나 원자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이나 장치에서 생성되는 양자빔(전자, 양성자, 중성자, 광자 등)에서 생긴다. 1942년 12월 핵분열 연쇄반응 제어에 성공하면서 인류에게 ‘제3의 불’로 부상하였으나 1939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공포의 무기’로 개발된다. 전쟁의 승기를 잡기 위해 독일과 핵폭탄 개발을 경쟁하던 미국은 먼저 핵폭탄 개발에 성공하여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했다. 이로 인해 약 22만 명이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하거나 오랜 시간 동안 질병으로 고통 받았다. 인류는 방사능의 위력과 폭력성에 큰 충격을 받았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대두됐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12월 8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이란 제목으로 연설하며, 원자력 발전 등 평화적 목적으로 핵을 이용하려는 나라에게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창설 제안과 함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국제적 협조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954년 8월 새로운 원자력법을 제정했다. 한국은 1956년 2월 미국과 ‘원자력 비군사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1957년 IAEA는 유엔 산하기관으로 창설됐고 한국은 IAEA 창립 회원국이 되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국제적으로 승인받았다. 이로써 원자력 발전을 위한 법적 근거, 행정 기구, 국제적 협력, 기술인력 확보가 이뤄졌다. 정부는 1959년 1월에 관련 행정을 담당할 원자력원과 같은 해 3월에 기술연구를 담당할 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를 설립했다. 정부는 국내 최초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Ⅱ(TRIGA MARK-Ⅱ)를 도입해 서울시 공릉동의 원자력연구소 부지 안에 원자로를 건설했다. 트리가 마크-Ⅱ는 100KW 밖에 되지 않는 연구용 원자로였지만 당시로는 획기적인 연구 시설로 3여 년의 공사를 거쳐 1962년 3월 30일에 가동식이 열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