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화 (문단 편집) === 1980년대: 한국화라는 용어의 정착과 현재 === 한국화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동양화단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말이었다. 이 시기 '한국화'라는 용어는 비단 특수한 화가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나 특정 시대의 회화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닌 한국의 동양화를 두루 일컫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한국화라는 용어 사용에 있어서 1983년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우선 교육의 측면에서 1981년 12월 교육과정을 재편과 함께 1983년 기존의 동양화라는 명칭을 한국화로 바꾸어 표기하였다. 미술계에서도 1982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동양화를 한국화 부문으로 지칭한 것이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관주도의 전람회가 사단법인인 한국문화진흥협의회로 이관된 탓도 컸다.] 이후 동양화를 다루는 각종 전람회, 회고전, 기획전 등에서 한국화란 용어가 널리 정착되었다. 그리하여 80년대에 이르면 한국에서 탄생한 동양화 전반에 대해 한국화라는 용어를 빈번하게 사용했다. 이런 변화를 잘 알려주는 사례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드러난다. 1978년 국립현대미술관은 기획전에 맞추어 『한국현대미술사 : 동양화』라는 책을 발행했다. 그런데 이 책은 이후 84년 수정 보완되어 재출간할 때 '동양화' 대신 '근대 한국화의 흐름'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약 7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용어에 큰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1985년 『미술세계』 11월호에 이석구가 기고한 글은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한다. 그는 한국화의 현주소를 진단하며 "한국화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채 몇 년이 되지 않았다." 지적하고, 한국화 논의의 출발점을 청강 김영기의 기고문들과 활동들로 잡았다. 이런 관점은 최근에 와서 몇몇 반론이 제기되기 전까지는 한국화 용어의 기원을 다루는 논의에서 정설로 취급받았다. 정리하면 한국화에 대한 논의는 (김영기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 식민지 시대의 문화의 청산이라는 문제와 맞물려 제기되었고 그것은 1950년대 한국 화단이 당면했던 세 가지 주요한 문제와도 연관되었다. 이후 한국화라는 용어는 1970년대까지 한정적으로 사용되다가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를 거쳐서 동양화단에 정착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