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비자 (문단 편집) === 기타 === 당시의 다른 사상가들과는 다르게 세상이 진보하고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상당히 혁신적인 사상이다.[* 한비자를 처음이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것은, [[상앙]]의 상군서에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상가들은 주로 옛 성인들에게 가탁해 주장을 수립하기를 즐겼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경험을 중시하며,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면서 얻는 경험을 바탕으로 생활하며 농업 사회의 특성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이는 그리스와 같은 해양, 상업 세력과는 확연히 다른 특성이기 때문이다. 단, 인류 역사를 '황금 시대로부터 은의 시대와 청동 시대를 거쳐 철의 시대에 도달한' 것으로 본 [[플라톤]]과 같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는 변화한다.'라는 명제는 받아들였지만, 그 방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쁘게'라고 생각했기에 사회 변화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 철학이 딱히 변화를 좋게 본 것은 아니다.] 한비자는 중국 고대 사상가 중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니 새 시대가 찾아올 때마다 새로운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선언한 사상가이다. 다만 사회 변화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오두' 등지에서 상공업에 대한 인식은 당대의 다른 사상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나쁘게 보았다. 다만 시대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고대 중국은 어디까지나 농업 중심의 사회였으며, 상공업은 당연히 농업보다 급수가 떨어지고 저울눈을 속이는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고대 국가 입장에서 통제를 하기 위한 품이 많이 들었다. 상업은 물자의 이동이라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보다도, 실제로 생산하는 것이 없음에도 중간에 자기 이윤만 챙기는 모습이 더 눈에 잘 들어온다. 또한 한비자가 살던 시대의 공업은 좀 더 나은 농기구나 병장기 같은 부국강병에 도움이 되는 물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주로 사치품 제작을 의미했다. 위에 말한 '신용'을 당장의 결과보다 우선하였기에 일종의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누군가 어떤 사업을 함에 있어, 그 사업의 결과가 사업 전에 그가 예상한 것보다 나쁘게 나오면 사업 실패를 이유로 처벌해야 하지만, 그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도 속임을 이유로 처벌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결과에 따라 사전의 예상에 대한 평가를 바꾸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원칙에 따라 틀릴 때가 있는 점이나 신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이용하기 부적합하다고 하였다. 이는 수천 년 후의 [[칼 포퍼]]의 '반증'과도 유사점을 보인다. 한비자와 법가에게 있어 '신용'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진나라의 법가 정치인인 상앙이 어느날, 남문에 3장 길이의 대나무를 꽂아두고는, 이 대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면 금 10냥, 은으로 치면 200백냥에 해당하는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들 무시하고는 제갈길을 가자 금 50냥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느 한 사람이 속는셈치고는 대나무를 옮기자 진짜 금 50냥을 받았다. 고작 대나무하나 옮기고 금 수십냥을 준다니 다들 믿지 않았지만, 상앙은 약속을 지킨셈이다. 인터넷상에서는 [[국가 멸망/원인|한비자의 나라가 망하는 10가지 징조]]라는 글로 유명한데 원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www.yetgle.com/hanbija1501.htm]] [[http://www.yetgle.com/hanbija1502.htm]] 자세히 읽어보면 일부 문장은 한비자의 의도와 다르게 왜곡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그와 그가 남긴 사상이 꽤 인기가 있었는지 한비자의 뛰어난 주석집인 '한비자익취(韓非子翼毳)'가 오오타 젠사이(太田全斎)에 의해 1808년 일본에서 만들어지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