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비자 (문단 편집) === [[대진부]] === 주요 조연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안왕이 아니라 환혜왕의 아들로 나온다. 아마 시기상 앞부분에서 얼굴을 보여야 하고 한나라를 주도하는 중간보스급의 느낌을 주기 위해 조정한 듯.[* 실제로 작중 환혜왕 사후에는 한나라 승상을 빼면 한비가 가장 유력한 인물이라 안왕도 한비의 말을 경청한다.] 역사대로 [[이사(전국시대)|이사]] 등과 함께 [[순자]] 문하의 직하학궁 유생으로 나오며, 그와 매우 가까운 사이로 묘사된다.[* 후일 [[시황제]]가 한비는 어떤 인물이냐고 이사에게 묻자 이사는 그가 자신보다 수십 배는 뛰어나다고 고평가한다.] [[고증 오류]]로 한비는 말더듬이가 아니라 언변이 매우 뛰어난 달변가로 나온다. 그리고 이사가 진나라에 가서 출사한 이후에는 본인도 한나라로 돌아가는데 아버지인 [[한환혜왕|환혜왕]]에게 지속적으로 한나라가 살아남으려면 변법(개혁)이 필요함을 역설하나 환혜왕은 변법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직하학궁에 유학 보내놨더니 그딴 쓸모없는 것만 배워 왔냐고 면박만 준다. 그리고 고증대로 환혜왕은 [[정국(전국시대)|정국]]을 진나라에 간첩으로 보내 관중의 수로를 건설케 해서 진의 힘을 빼는 계책을 채택하는데, 진나라 수뇌부에서는 수로 건설 제안이 한나라의 꼼수라는 것을 대강 파악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중 지방이 개간되면 국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해 그대로 추진했다.[* 이로 인해 나중에 가서 [[간축객서]]의 발단이 된, 수로 설계자 정국이 한나라 간첩이었음이 발각되어 영성 종실에 의해 이사를 포함한 객경들이 일시적으로 축출되는 사건이 터진다.] 이후 쭉 등장이 없다가 [[노애]]의 난이 진압되고 진왕 정이 친정을 시작한 중후반부부터 본격적으로 진나라에 겐세이를 놓기 시작하는데 과거의 우정과는 별개로 이미 진나라의 고위 관료가 된 이사와 같은 길을 갈 수는 없다고 직감했는지 이사가 한나라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도 그를 피해 다니며 만나주지 않는다. 또한 공족의 신분을 십분 활용해 육국을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제나라를 제외하고는 원수지간이던 연나라와 조나라를 묶어놓는 등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보이며 이사의 [[아치 에너미]]로써 진나라를 고립시키는 전국 포위망 형성에 주력한다. 또한 진나라 측의 제나라 소금과 철, 구리 매입의 속셈을 육국 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간파하고 [[희단|연태자 단]]과 함께 조나라에 철과 구리 등 군수 물자 공급에 주력한다. 하지만 조나라 내 동, 철 전매로 재미를 보던 [[곽개]]의 트롤링으로 진나라 측이 흉노를 통해 조나라에 철을 운송한다는 사실을 알아채 계획이 엎어지고, 한나라와 위나라가 농사를 제쳐놓고 백성들에게 철을 생산하게 하는 바람에 삼진은 더더욱 막장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한비는 이것을 예견하고 한, 위 양국의 민간 철 생산을 극렬하게 반대했으나 [[코인충|한나라 측 조정에서 이미 상승한 철값의 경제적 이득을 생각해 받아들이지 않았고]] 조나라 조정을 주도하는 춘평군도 밀어붙혔다. 여기서 그의 고충이 잘 드러나는데 분명 한비는 백성을 사랑하고 매우 유능한 인물이지만 주변 상황이 너무나도 안 따라줄뿐더러 그 반대로 진나라는 이사 말마따나 수백 년간 국력을 키우며 온갖 버프를 다 달고 나온 상황이라 한비가 누구보다 열심히 해도 중과부적을 면하기가 어렵다.][* 작중 한비는 진나라로 향하는 자국 유민들을 사재를 털어서 구호하며 자기 전 재산이 다 동나더라도 백성들을 먹여 살려야 국가의 근본이 있다는 모범적인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농사를 내팽개쳤으니 양국의 식량 상황도 개판이 되었고 안 그래도 가난한 농민들은 마침 정국거 개통으로 광활한 관중 지방 전체가 개간된 진나라로 대거 유입되어 삼진의 국력이 빠지는 만큼 진나라의 국력은 신장되는 환장할 진퇴양난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진나라는 역사대로 한나라가 육국에 붙었다 진에 붙었다 한다면서 한비를 초청하기 위해 신정을 치는 척하고, 한비도 마지못해 함양으로 향하게 된다. 한비자와 대단한 진왕 정은 그의 법가 사상에 감탄해서 그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환심을 사려고 노력해 보지만 한비는 넘어가지 않는다. 이후 실제 역사처럼 진나라가 한나라를 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역설하며 진나라 각료들의 첩자 혐의 의심을 받게 되고, 남양 태수 영등[* 원래 한비의 부하였던 사람인데 진나라에 귀순하였다. 나름의 줏대는 있는 인물이라 처음에는 고국을 위해 일했고 요고의 회유에 쉽게 넘어가진 않았다. 그러다가, 요고가 그를 정국과 소개시켜주고 한나라 사람인 정국이 진나라에서 재능을 인정받고 큰 업적을 세우며, 그가 만든 수로에 정국거란 이름이 붙은 걸 알려주면서 우리들은 언젠가는 세상을 뜨겠지만 정국의 업적은 정국거란 이름과 함께 영원히 역사에 남을 거라며 영등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진나라에서 정국처럼 능력을 펼쳐보지 않겠냐고 제안받자 명예욕 때문에 넘어갔다. 진시황도 그가 나름대로 줏대와 능력이 있는 인물이라 그의 귀순을 환영했다. 실제로도 정국거란 이름은 1930년대에 군벌 중 한명이었던 풍옥상 장군이 그 이름을 본따 새 수로의 이름을 만들 정도로 계속 거론되었고 지금은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honchangtong&logNo=221554094234&proxyReferer=https:%2F%2Fm.search.daum.net%2Fsearch%3Fw%3Dimg%26q%3D%25EC%25A0%2595%25EA%25B5%25AD%25EA%25B1%25B0%26DA%3DIIM|정국의 동상도 세워져 있으니]] 진짜로 후세에까지 그 명예가 남았다.]이 진군에 호응해 남양군을 통째로 넘기려 한다는 정보를 한나라에 넘기려다가 발각, 진나라 법대로 간첩에 대한 형벌인 [[거열형]]을 선고받는다. 그의 친우인 이사는 차마 한비가 끔찍한 거열형을 받게 할 수 없어서 옥에 갇힌 그를 찾아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며 [[한비자|평생 자신의 사상을 집대성한 저서]]를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듣는다. 그리고 한비는 이사에게 받은 독주를 마시고 사망한다. 하지만 얄궂게도 진왕 정은 이미 한비를 사면해 왕명이 옥으로 가고 있던 상황이었고, 타이밍이 안 좋게 한비가 사망한 직후에서야 [[조고]]가 왕명을 들고 황급히 도착한다. 이사는 한비를 사면한다는 왕명을 듣고 각혈하며 그만 기절하고 만다. 당대의 공족이며 뛰어난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한비자에게는 매우 허망하고 안타까운 최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