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비자 (문단 편집) === 사상 === ||옛날과 지금은 관습이 다르며, 시대에 따라서 방책도 달라야 되는 것이다. 만일 관대하고 여유 있는 정치로 절박한 시대의 백성을 다스리려 한다면, 그것은 채찍을 쓰지 않고 억센 말을 다루려는 것과 같은 것이며, 그것은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오늘날 유가나 묵가의 학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선왕은 천하 사람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백성 대하기를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한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느냐고 반문하면 그들은 말한다. 「사법관이 형을 집행하면 그로 인해 군주는 즐기던 음악을 멈추고, 사형의 통지를 받게 되면 그 때문에 군주는 눈물을 흘린다.」 이것이 그들이 극찬하는 현명한 왕인 것이다. 군신 관계를 부자 관계처럼 하면, 세상은 반드시 잘 다스려진다고 하는데, 그들의 말대로라면 화목하지 않은 부자는 전혀 없어야 한다. 사람에게 부모의 애정보다 더한 것은 없고, 부모면 누구나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식을 반드시 잘 다스리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군주가 아무리 신하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어찌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선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비길 수 없으며, 더욱이 자식이 반드시 반항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니, 하물며 백성을 어떻게 다스릴 수가 있겠는가. 다시 또 법률에 의해서 법을 집행하고, 군주가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는 인의를 나타내고 있지만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형을 집행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형을 중지시킬 수 없는 것은 법 때문인 것이며, 선왕이 그 법을 없애지 않고 눈물을 별로 문제시하고 있지 않은 점으로 보더라도 인(仁)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wiki style="text-align:right" 『한비자』 <오두편>}}} || ||지금 정치를 모르는 자는 반드시 말하길, ‘민심을 얻으라’고 한다. 민심을 얻는 것으로 치세가 될 수 있다면, [[이윤(상)|이윤]]이나 [[관이오|관중]]은 쓸모가 없는 것이며, 다만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그만일 것이다. 백성의 지혜는 쓸 수 없으니, 마치 갓난애기와 같다. 대저 어린애는 뼈를 발라주지 않으면 복통을 일으키며, 고름을 짜 주지 않으면 점점 (병세가) 더해진다. (생선의) 머리를 발라주고 고름을 짜는 일은, 반드시 한 사람의 품에서 자애로운 어머니가 할 일이나, 오히려 아기가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것은, 갓난애기가 그 작은 고통을 당하는 것이 (나중에) 커다란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윗사람이 밭을 갈고 풀을 뽑으라고 재촉하는 것은 백성들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이지만 (백성들은) 윗사람을 가혹하다고 여기고, 윗사람이 형벌을 엄중하게 고치는 것은 사악을 금지시키기 위해서이지만 백성들은 윗사람을 지독하다고 여기며, 세금과 곡식을 거두어서 창고를 채우는 것은 또한 기근을 구하고 군대를 준비하려는 것이지만 백성들은 윗사람이 탐욕스럽다고 여기고, 경내에는 반드시 본분을 알아 사사로움이 없음을 설명하고 아울러 신속한 싸움에 힘쓰는 것은 종들을 관리하기 위해서이지만, 백성들은 윗사람이 포악하다고 여긴다. 이 네 가지는, 나라를 편안케 하기 위한 것인데도, 백성들은 기뻐할 줄 모른다. 대저 성인(聖人)에 통하는 선비를 구하더라도, 백성들의 지혜를 참고하는 것은 기준으로 쓰기에 부족함이 있는 것이다. 옛날에 우(禹)임금은 양자강의 물을 틔어서 황하로 통하게 하였으나 백성의 무리들은 기와나 돌을 던졌으며, 자산(子産)은 밭을 개간하여 뽕나무를 심었는데도 정나라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였다. 우는 천하를 이롭게 했으며, 자산은 정나라 사람을 보살폈는데도, 모두 백성들에게 비방을 받은 것이다. 대저 백성의 지혜는 쓰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또한 명백하다. 그러므로 선비를 천거하여 어질고 지혜로운 자를 구해놓고선, 정치를 할 때 백성들에게 맞추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두 난리의 실마리가 되니, 그와는 함께 정치할 수 없다. {{{#!wiki style="text-align:right" 『한비자』 <현학편>}}} || ||술수를 아는 선비(智術之士)는 반드시 멀리 보고 밝게 살피니, 밝게 살피지 않으면 사사로운 것을 간파할 수 없다. 법에 능한 선비(能法之士)는 반드시 강인함을 꾀하며 굳세고 곧으니, 굳세고 곧지 않으면 간사함을 바로잡을 수 없다. 그 신하가 명령에 미적거리면서 일을 좇으며 법을 어루만져서 관리를 다스린다고 하여 중인(重人:권세가)이라 말하지 않는다. 중인이라는 자는 명령 없이 멋대로 하고, 법을 이지러지게 하여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나라를 축내어 내 집을 편하게 하는데, 그 힘이 그의 군주에게 까지 이를 수 있으면, 이를 중인(重人)이라 말하는 것이다. 술수를 아는 선비는 밝게 살피니 받아들여서 쓰게 된다면, 또한 중인들의 숨은 뜻(情)을 간파할 것이다. 법에 능숙한 선비는 굳세고 곧으니 받아들여서 쓰게 된다면, 중인들의 간사한 행실을 바로잡을 것이다. 그러므로 술수를 아는 선비와 법에 능한 선비를 쓰게 된다면, 귀하고 중한 신하들은 반드시 줄 밖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이러므로 술수를 알며 법에 능숙한 선비는, 더럽히는 것이 마땅한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있을 수 없는 원수가 되는 것이다. 더럽히는 것이 마땅한 사람이 중요한 일을 멋대로 하면, 나라 안팎이 그를 위하여 사용될 것이다. * 이로써 제후가 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일에 반응하지 않으므로, 적국까지도 그를 위해서 칭찬하게 된다. * 모든 관료가 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업무가 진행되지 않으므로 군신이 그를 위하여 사용된다. * 낭중(郎中:벼슬 이름)이 그를 의지하지 않으면, 군주를 가까이 할 수가 없으므로 좌우가 그를 위해 숨겨준다. * 학자가 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녹봉이 박해지고 대우가 낮아지므로 학자는 그를 위한 말을 하게 된다. 이 네 가지 도움은 사악한 신하들의 스스로를 꾸미는 수단이 된다. 중인은 '군주에게 충실하여 그 원수(술수는 아는 선비와 법에 능한 선비)가 다가오게 하는 것'을 할 수 없으며, 그 군주는 '(간신들의) 네가지 도움을 뛰어 넘어 그 신하를 살피고 간파하는 것'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군주가 더욱더 가려질수록, 대신은 더욱더 (권력이) 무거워진다. {{{#!wiki style="text-align:right" 『한비자』 <고분편>}}} || ※오두편, 현학편, 고분편은 한비자의 실제 저술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내용을 기술하였으니, 이를 읽으면 한비자의 사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한비자의 법치 국가 철학은 "1.엄격한 법으로 백성을 다스림. 2.백성의 생각에 휘둘리지 말 것. 3.능력 있는 자를 등용해서, 능력 없는 권세가를 쫓아낼 것"으로 정리된다. 다만 이는 전쟁과 배신으로 극심한 혼란이 있었던 '여유 없는 시대'에 급하게 쓰이는 방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한비자의 강력한 법치와 독선적 행태가 비교적 '여유 있는 시대'에 쓰인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되어, 반란으로 무너질 것이다. 마치 진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여유 있는 시대에는 '관용이 있는 법치'와 '정치에 여론을 반영', '능력 있는 자를 등용하되 능력 없는 자라도 매몰차게 쫓아내지는 않고 살길을 열어둠'을 지키며 명분까지 고려한 왕도 정치가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