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비자 (문단 편집) === 내용 === [[성인]]은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니 평범한 사람들로도 굴러가는 제도 구축에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 역설하였다. 성인의 현능함을 이용하는 것이 무용하다고 역설한 것은 법가의 공통된 견해이다. 또한 한비자는 다른 학자들이 옛 성인들을 언급하는 것을 비판했다. 한비자 본인도 옛사람들이나 그들의 시대가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한다. 허나 시대가 바뀐 까닭에 옛날과 같이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옛날에는 사람의 숫자가 적었으므로 재화가 넉넉하였다는 것이다.[* 관직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한다. 요순 시절의 일화를 보면 천자도 육체 노동을 하는데 살림이 풍성치 않았다. 그러므로 천자를 쉽게 사양했다. 하지만 한비자 당대는 현령 자리를 해도 자손에게 넉넉한 재물을 남긴다.] 허나 오늘날을 돌이켜 보면 백성들은 아들 다섯을 부양하기에 많다고 여기지 않으나, 이 다섯 아들이 제각기 다섯 아들을 낳으면 할아버지는 스물다섯의 손자가 생기니 자연히 차지할 수 있고, 재화가 줄어들어 다툼이 생긴다. 그러므로 새 시대에 맞는 새 정책이 필요하며, 한비자는 이를 옛 성인의 시대라 할지라도 제각기 다른 시대의 성인의 계책을 실행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며 다시금 [[수주대토]]에도 빗대어 설명하였다. 법(法)과 술(術)과 세(勢)를 중시했다. 이는 한비자가 최후의 법가이자 동시에 법가를 집대성한 법가의 거두로 불리는 이유이다. 한비자 이전의 법가에는 크게 3가지의 계통이 있었다. 첫째로 [[신도]]의 계통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세를 중시했다. 둘째로 [[신불해]]의 계통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술을 중시했다. 셋째는 [[상앙]]의 계통인데 이들은 법을 중시했다. 한비자는 어느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다고 여겼다. 한비자에 따르면 세는 군주에게 있어서 밑천이다. 일찍이 신도가 두 신하와 한 군주가 세력의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를 언급했다. 임금은 두 신하 중 하나를 쳐서 세력의 절대 우위를 점하라는 충신의 간언을 무시하였다가 한 명의 신하가 다른 신하를 쳐서 세력을 흡수하자 열세에 놓여 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세는 군주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밑천이다. 술은 군주가 신하를 부리는 술수이다. 군주는 적절한 신하를 뽑아 임용해야 하며 신하의 실적에 따라 상벌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군주가 신하를 제대로 부리지 못하면 국정은 온전히 운영될 수 없다. 법은 신하가 백성을 다스리는 규칙이다. 법이 엄정하지 못하면 나라가 어지럽다. 세, 술, 법을 적절히 병용하는 것이 치국의 요체이다. 법과 술은 군주의 수단이며 세가 없으면 수단을 부릴 힘이 없다. 한비자의 많은 부분은 술에 할애되어 있다.[* 군주가 무엇인가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감정 표현조차도 거기에 남들이 영합하여 나라를 그르칠 결정을 하게 할 수도 있으니 숨겨야 하며, 극단적으로는 잠꼬대로 국가 중대사나 그에 대한 군주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도 있으니 잠자리도 혼자 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군주는 인간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이야기인 동시에, 고위 공직자의 엄정한 공정성을 요구하는 주장.] 고분편에서 한비자는 술과 법을 다루는 선비에 대해 논한다. 지술지사, 술을 아는 선비는 식견과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사리사욕을 취하려는 신하들이 꾸미는 음모를 밝힐 수 있다. 능법지사는 법을 아는 선비인데 굳세고 곧아야 한다. 굳세고 곧지 못하면 간교함을 바로잡을 수 없기에, 이를 등용해 사리사욕을 꾸미는 간신과 귀족을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세를 따르지 못할 경우 법술지사는 누명이 씌워져 죽거나, 자객의 손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법술지사는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저러한 운명에 취할 것이다.[* 문전편에서 당계공과 한비자의 대화가 언급되는데, 당계공은 화를 피하고 몸을 보존하는 도가의 은일의 원리를 따르지 못한다고 한비자를 걱정한다. 한비자는 이를 수긍하나, 한편으로는 백성의 이익과 서민의 안녕을 도모하는 것이 법가의 정신이므로 일신의 안녕만을 도모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이므로 순자의 영향을 받았다. [[순자]]는 유가 중에서도 상당히 논리적인 부분을 중시했는데 이는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명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비자는 명가의 영향도 받았다. 명가의 주된 노력 중 하나는 이름과 실질을 알맞게 부합시키려는 것이었다. 유가에서는 이것이 부모가 부모답고 자녀가 자녀다운 윤리론으로서 나타난다. 한비자에서는 이름과 실질의 부합이 관직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여긴다. 재무부 장관이라는 이름이면 재무부 장관다운 실적이 있어야 하며, 임명한 이후에는 명과 실이 잘 부합되는가 심사하여 상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법가의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형명(形名)이다. 다시 말하자면 재무부 장관은 관명이다. 재무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은 이름의 내용이자, 직(職)이다. 재무부 장관, 곧 재무부 장관직을 맡은 사람이 바로 실이며, 다른 말로는 형이다. 형명상합, 명실상합등은 명과 실, 직과 형이이 조화로운 상태를 이른다. 순명핵실(循名核實), 종합명실(綜合名實)은 이를 잘 판단해 상과 벌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이는 술에 속하는 것이다. 한비자는 상벌은 군주의 두 가지 권병, 도구라 말한다. 그러기에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이기 때문에 더욱 상벌을 중시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은 본디 호오의 감정을 지닌 존재이다. 이익을 좇고 해를 꺼린다. 그러므로 이해로써 사람을 부릴 수 있다. 인간이 선하지 않음은 모든 법가가 주장하는 바이지만 한비자는 더욱 강하게 주장한다. 한비자 육반편에는 부모 자식의 관계에 멋지게 빗대어 설명한다.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에도 아들은 기뻐하나 딸은 꺼린다. 같은 몸에서 나왔으나 아들과 딸 사이에 구별이 생기는 것은 부모가 훗날의 장기적인 이익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에도 계산하는 마음이 있는데 부모 자식도 아닌 관계는 어떠하겠는가? 외저설좌상편도 비슷하다. 품꾼을 샀을 때 주인이 돈을 주고 밥을 맛있게 해주는 것은 품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래야만 품꾼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품꾼이 열심히 일하는 까닭은 주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열심히 일해야 반찬이 맛있고 품삯도 쉽게 받기 때문이다. 주고 받음이란 이러하다. 마음의 모든 작용은 한결같이 자신을 위하는 마음과 함께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익이 걸리면 적이라도 화해하나 손해가 생기면 부모 자식 간에도 원망한다. 앞서 옛날에는 사람이 적었고 재물이 많았으며, 오늘날에는 사람이 많아 재물이 적어졌다고 한비자는 말한다. 봄에는 형제끼리도 양식을 양보하지 않지만 가을에는 나그네에게도 밥을 준다. 사람의 인성이 옛날에는 관대했고 오늘날 야비하지 않다. 다만 환경의 차이이다.[* 순자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형벌과 정치는 그러므로 시대에 따라 강하고 약하고 차등이 필요하다. 현학편에서 한비자는 공맹의 덕치와 예치는 무시한다. 흉포를 막는 것은 위세일 뿐이지, 덕후(德厚) 따위로는 혼란을 막을 수가 없다고 한다. 남이 내게 선행할 것을 의지치 않고, 남이 내게 감히 나쁜 짓을 못 하도록 하겠다. 남이 내게 선행할 것을 의지하면 한 나라 안에 열댓 명도 의지할 수 없겠지만, 감히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한다면 한 나라를 숙정할 수 있다. 통치자는 다수에게 통할 방법을 택해야 하므로 덕은 버리고 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은 필연이지만, 선행은 우연인 것이다. 한비자의 사상은 도가 사상과도 통한다.[* 특히 한비자에 실려있는 '해로'와 '유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덕경]] 해설서로 지금 전해져 오는 도덕경의 글과는 조금 다른 글자를 쓰기도 하기에 도덕경 원전에 대한 연구에 의미를 갖는다. 다만 그 해석의 내용은 단장취의의 한계를 보인다.] 한비자와 명가도 그렇듯 당대의 제자백가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법가의 통치술과 도가의 통치술은 본래부터가 서로 통하는 바가 많았다. 개중에서도 대단한 지혜를 가진 성인이 쓸데없다고 주장하는 거나 무위의 통치술 등은 도가와 법가가 특히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이다. 도가의 통치술은 많은 부분이 무위의 통치술로 화를 피해 은거하는 것에 집중한다. 이는 앞서 논한 신도가 세를 중시함과 통한다. 군주는 현명함으로 세에 거스르는 일을 꾸밀 필요가 없이 세에 따라서 행동하라는 것이다. 앞서 두 명의 신하와 한 명의 군주의 이야기를 했는데 군주가 세에 따라 두 명의 신하 중 한 명을 쳐서 세를 흡수했거나, 한 명의 신하가 승리한 후에는 늦더라도 왕위를 내려놓고 은거했다면 화를 피했을 것이다. 따라서 신도는 때로는 법가로 분류되고 때로는 도가로 분류된다. 본래 무위의 술은 공자가 먼저 주창한 것이다. 공자의 주장에 따르면 순이 바로 무위의 술을 활용하였다. 순은 그저 조정에 장중하고 단정하게 앉아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유가에서 말하는 덕치라고 할 수 있다. 덕으로 사람을 교화한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반면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는 작위가 없어 몸이 안전한 은자의 경우를 이른다. 한비자는 이를 결합시킨 것이다. 무위는 무위이되 그 꾸밈이 없음은 유가도 아니고 도가도 아니다. 세에 있어서 무위는 두 신하와 한 명의 군주의 경우처럼 세를 따라가는 무위를, 술에 있어서 무위는 군주가 직접 일을 하지 않고 신하를 세워서 상벌을 다루는 것을, 법에 있어서 무위는 역시 군주가 직접 일을 하지 않고 신하가 법을 적용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이를 보면 신도는 법가와 도가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때로 법가로 분류되고 때로 도가로 분류되는 것이 각자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양권편은 자못 명가와 도가의 흥취가 섞여 있다. 군주는 중앙에서 세를 쥐고 있으면서 신하들을 열심히 일하게 한다는 것이다. 군주는 신하의 일처리를 관찰하며 형과 명의 기준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이치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각 사물과 재료는 그에 적합한 일과 용도가 있다. 모든 것이 적합한 곳에 처하면 군신 상하는 무위의 도로 다스릴 수 있다. 닭은 새벽을 알리고, 고양이는 쥐를 잡는다. 신하가 그와 같다는 것이다. 군주는 닭과 고양이를 기르면 그만이지 결코 쥐를 잡을 재능, 새벽을 알릴 재능이나 근면함을 갖출 필요가 없다. 만약 군주가 어떤 능력을 특별히 더 귀중하게 여긴다면 신하는 그 능력을 이용해 군주를 기만할 것이다. 논변과 총명함을 군주가 사랑한다면 신하가 그 능력을 이용할 것이니 결코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명가와 도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군주는 이처럼 신하에게 일을 맡긴 채, 명과 실의 조화를 살펴 상벌이라는 두 권병을 이용해 그들의 공효를 평가한다. 이전 버전의 한비자 문서에서는 한비자가 도가와 통하지만 노자에 국한되지 장자와는 별 관련이 없다고 말했으나, 장자 천도편에도 비슷한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장자 천도편에서도 신도의 사상과 비슷한 구절이 있다. 무위하면 천하를 부리기에 여유가 있지만 유위하면 천하로부터 부림 당해 부족하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군주와 신하가 동시에 무위하거나 유위하면 군주와 신하가 어울리는 것이니 그르다. 군주는 무위함으로 천하를 부려야 하고, 신하는 유위해서 부림 당해야 한다. 옛날 왕들은 지혜로워도 몸소 생각하지 않았고, 달변이어도 몸소 말하지 않았고, 능력이 뛰어나도 먼저 도모하지 않았다. 하늘과 대지가 꾸미지 않아도 만물이 변화하고 생육되며 제왕이 무위해도 천하의 공적으 이룩되는데 이러한 무위의 덕이 천지, 만물, 인간을 다스리는 도이다. 그러므로 옛날 대도를 밝힌 사람은 하늘, 도덕, 인의, 분수(인의의 질서로 나누어진 몫을 지킴), 형명, 인임(재능에 따라 직책을 맡김), 원성(심사, 판별), 시비, 상벌을 밝힌다. 상벌이 밝혀지면 귀천과 지우에 따라 직위와 자리가 바루어져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했다. 비록 형명이나 상벌을 낮은 위계에 위치시켰으나 이는 한비자와 통하는 구절이다.][* 법가에 대한 도가의 비판은 똑같은 맥락을 따라가는데 형명과 상벌이 낮은 위계의 것이므로 이것만을 논하는 자는 부리는 자가 아니라 부림 당하는 자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형명과 상벌을 논하나 사적인 정에 이끌리지 않는 사람의 수는 극히 적다. 이것이 법가의 약점이라는 주장이다.] [[도덕경]]을 인용하는 해노, 유노 편 등은 비록 [[사마천]]은 한비자의 저작으로 여겼지만, 사실 후세의 편집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이들이 도가와 통하기는 한다. 말하자면 장자는 그냥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잘 살지 않겠냐고 했다.[* 순자는 이를 자연과 인간사를 혼동한다고 깠다.] 노자는 덜 욕심내고 무지한 상태에 머물면 순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도가의 일파는 사물이란 영위할 만한 것은 못 되지만 영위하지 않을 수 없고, 일은 은닉되어 있지만 도모하지 않을 수 없고, 법은 조잡하지만 실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겼다. 이들은 분수, 형명, 인임, 원성, 시비, 상벌 등을 논하긴 하였으나 역시 하늘, 도덕, 인의 등을 중시했다. 그러므로 한비자는 도가와 통하되, 또 다르다. 현학편에서는 자유주의 경제학 비슷한 이야기도 한다. 곧 유가에 대한 비판인데, 유가는 빈궁한 자에게 토지를 나눠주자고 하지만 똑같은 조건하에서 빈궁한 자와 부유한 자는 그 노력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유가의 주장은 공리공담에 불과하며, 오히려 그냥 내버려 두면 모두 열심히 일할 것이기 때문에 생산이 증가될 것이라는 얘기도 한다. 훗날 이른바 신도가, 곧 현학의 무리들도 이 통치술과 연결되는 바가 있다. 하지만 대차게 망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