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신공영 (문단 편집) == 연혁 == [[파일:한신공영 로고(1967~1983).png]] 1967년부터 1983년까지 사용된 1기 로고 [[파일:한신공영 로고(1984~1994).png]] 1984년부터 1995년 초까지 사용된 2기 로고 197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급성장한[* 가장 유명한 것이 [[잠원동]] 일대에 건설한 [[신반포아파트]]이다.] 회사로 [[한신더휴|한신더휴(THE HUE)]]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유명하다. 1980~90년대에 한신코아(현 [[세이브존]])라는 [[백화점]]도 운영했으나 [[1997년 외환 위기]]를 맞고 [[흑역사]]가 되었다. 한신코아 브랜드는 백화점 뿐만 아니라 잠실 한신코아 같은 일부 고급아파트나 오피스텔에도 사용된 바가 있는데 한신코아 브랜드는 비록 아파트에서는 널리 쓰인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파트 업계에서는 이른 시기에 고급 브랜드 마케팅을 도입한 것으로서, 이 브랜드의 파생형으로 부산지역 향토기업과 합작하면서 부산지역 한정으로 쓰이던 그린코아도 있다. 한신공영의 창업주이자 회장은 김형종이었는데, 이 김형종은 1970년대에 한 능력있는 사원을 자신의 딸과 결혼시킨다. 그 사위는 부동산을 보는 안목이 좋아 반포한신아파트 단지 개발을 주도했으며 반포한신아파트에 슈퍼마켓을 차렸고 이게 당시 기준으로 하루에 1000만원[* 지금 시세로는 억대이다.]을 벌어들이면서 아예 유통업으로 빠졌다. 그 사위의 이름은 김의철. 김의철이 주도하던 유통부문은 빠르게 성장하여 [[뉴코아]]그룹으로 발전했다.[* 다만 뉴코아그룹의 부도 후 김의철 회장은 경영권을 상실했으며 뉴코아가 이랜드에게 인수되면서 지금 뉴코아 회장은 이랜드 회장인 박성수이다.] 이후 김형종 회장이 1983년에 사망하였고, 1993년에 김의철은 자신이 키우다시피 한 유통부문을 가지고 분가하여 뉴코아그룹을 만들었다. 뉴코아는 뉴코아백화점(현 뉴코아아울렛/NC백화점), [[킴스클럽]] 등을 세우며 재벌이 되었지만 [[1997년 외환 위기]] 때 부도가 나고 결국 대부분의 계열사가 [[이랜드그룹]]에 인수된다.[* 그래서 지금 '뉴코아'의 이름이 붙은 곳에는 [[애슐리(패밀리 레스토랑)|애슐리]]와 같은 [[이랜드그룹]]의 계열사들이 들어서 있다.] 한 편 1983년에 김형종 창업주가 사망하면서 그룹의 모태이자 핵심사업이었던 건설부문은 외아들인 김태형에게 승계되었다. 김태형은 이후 여러가지 사업에 진출하면서 한신공영을 무난히 이끄나 싶었지만, 1996년에 '''[[브니엘학원 사태|브니엘학원 이전사업]]'''이라는 희대의 사업을 수주하였고 결국 외환위기로 재벌그룹들이 쓰러질 때 브니엘학원과 같이 도산하고 만다.[* 당시 브니엘학원은 신학대학을 설립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황이었다. 그렇다보니 금정구의 이상한 부지를 삼성물산에서 사들여 거기로 이전하고, 원래 학교가 있던 연제구 연산동 부지는 한신공영에 매각하여 이걸로 번 시세차익으로 신학대학을 세우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후적지는 한신공영이 아파트를 지었으면 나름 윈윈이었겠지만 도로건설 문제와 보증 문제가 엮여있었고 결국 외환위기와 함께 공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여파로 인하여 한신공영이 부산에 진출한지 30년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부산광역시 연제구에는 한신공영이 시공한 아파트가 2022년 현재도 단 한동 조차도 지어진 적이 없다. 이뿐만 아니라 연제구와 같은 동래권역인 동래구와 금정구에도 1990년대 중후반에 지어진 만세한신아파트(현 금정산한신아파트)와 사직한신아파트를 끝으로 21세기 이후로 한신공영이 아파트를 시공한 사례가 단 한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2002년에 한신공영의 건설부문만 따로 분리되어 코암시앤시개발이라는 중견기업[* 전북 소재 협승토건이라는 지역 건설업체(한때 메이커아파트였다가 1996년에 망한 우성건설과 친척관계였다고 한다)가 코암시앤시개발이라는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인수하였다고 한다.]에 팔려가면서, 2010년대 현재는 아파트 건설과 도로 등 각종 공공인프라의 건설 수주를 받는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코암시앤시개발로 인수될 당시에 언론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평하였으며, 한신공영에 오랫동안 있었던 중역들은 그래도 한때는 대기업이었단 자부심 탓이었는지 몰라도, 지방 중견기업에 인수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는 말이 있다. 1970~80년대 당시에는 강남개발을 주도하면서 [[현대건설|현대]], [[우성건설|우성]], 삼익, [[DL건설|삼호]], 한보, [[한양(기업)|한양]] 과 더불어 잘나가는 1군 메이커 아파트로 유명했고 서초구 반포동 일대에 중산층들과 부유층들을 공략하여 1977년 [[신반포아파트|신반포1차아파트부터 1996년 한신타워아파트(신반포 28차 아파트)]] 까지 무려 19년간 '''신반포'''로 불리우는 대규모 브랜드 타운이 만들어지기도 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신반포"를 브랜드화 하려는 목적이었는지 뜬금없이 [[수원 신반포아파트|수원에도 신반포아파트가 존재한다]].] 그러나 중동진출 실패로 인해 휘청거리기도 하고 산업합리화 대상업체로 지정되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1990년대 초반에 겨우 정상화 되어 흑자를 보나 싶었는데 IMF 사태때 부도 나면서 중견기업으로 팔려갔다. 그 와중에 [[삼성물산]] [[래미안]], [[GS건설]] [[자이]] 같은 후발주자 대기업 아파트 브랜드들이 고급화로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전성기때 라이벌이던 주식회사 한양과 함께 현재는 평범한 브랜드 이미지가 되어버렸고, 요새는 주식회사 한양과 비슷한 도급 순위 까지 보여주고 있다. 도로, 교량 건설과 같은 공공인프라 수주 공사도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 그래도 아예 기업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잊혀진 [[우성건설|우성]], 삼익[* 이쪽의 경우도 회사는 1990년대 중반에 폐업하여 사라지고, 우성건설처럼 브랜드만 수억대의 헐값에 팔려갔다.], 삼호[* 이쪽은 1980년대에 대림산업에 인수되어 현재도 DL건설이란 이름을 단 채 자회사로 법인만은 존속중이다.], 한보보다는 상황이 낫다. 하지만 한신공영이 최전성기에 만들었던 신반포 한신 타운은 부촌의 대명사 중에 하나로 한신공영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주었고 한때나마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 이후 한신공영의 부도 후 주인이 바뀌고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사세가 많이 기울어버렸다. 2000년대 이후 이곳이 재건축 될 무렵 한신공영이 자사에게 있어서 상징성이 강한 신반포 한신타운 재건축 사업에 다시 참여하려 했으나 이때는 한신공영의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탓에 입주자들이 재건축 수주 업체로 언급조차 안 해주거나 반대하는 굴욕을 겪기도 하였다. 결국 부도 이후로는 서초구 반포동을 포함한 소위 말하는 강남 권역에 재진출은 번번히 실패하게 되는데, 얼마나 오죽했으면 한신공영에서 신반포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이라도 수주 하려고 입주자 2만 가구에 호소문을 보냈지만, 입주자들은 하나같이 쿨하게 무시했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1&aid=0000174929|#]]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3249503|#]] 어찌보면 아파트계의 [[대우 로얄]] 자동차 시리즈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