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신공영 (문단 편집) == 여담 == 이 기업의 잘 안 알려진 또 다른 [[흑역사]]로 학교법인 한신학원[* 특이하게도 법인명의 한자어가 韓信學園이 아닌 韓信學'''院''' 이었다. 일반적으로 학교법인의 한자어는 學院이 아닌 學園으로 끝난다는 것을 생각하면...]이 있는데, 1970년대에 [[서울]] [[서초구]] [[반포동]](당시 강남구 반포동) 일대에 아파트를 대량으로 지으면서 한신공영은 엄청난 부를 쓸어 담았지만 그 이면에는 특혜가 있었기에 그에 대한 대가로 반포동 일대에 [[초등학교]], [[중학교]] 용지를 기부채납하기로 했다. 허나, 막상 기부채납을 하게 되자 그 부지가 아까웠던 한신공영은 꼼수로 그 자리에 사립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만들어서 계속 가지고 있으려고[* 사립학교 형태로 설립하면 한신공영 입장에서는 추후에 어떻게 해서라도 해당 부지들을 다시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법인 한신학원을 1978년에 설립하였다. 하지만 누가 봐도 [[눈 가리고 아웅한다|눈 가리고 아웅]]이다보니 얼마 안가 그 속셈이 들통나면서 결국 1980년경 법인이 해체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부지는 약속대로 기부채납이 이루어지면서 결국 그 자리에 [[서울반원초등학교]]와 [[경원중학교(서울)|경원중학교]]가 공립학교로 들어섰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외에도 남는 부지의 경우는 계속 한신공영이 가지고 있었다가 1990년대 들면서 학교 부지 지정이 해제되어 한신타워(신반포28차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한신공영의 20여 년간의 강남 개발 대여정에 마침표를 찍기도 했다. 그다지 좋지 못한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법인이다보니, 그 사립학교들의 설립 인가가 났더라면 그 부분도 특혜시비 같은 문제로 말썽이었을 것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만큼은 아니지만[* 이 쪽의 경우는 부산지역에서 그런대로 잘 나가는듯 싶었다가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의 주요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부산에서 한동안 완전히 시망 상태가 되어버렸고 이후에 전개될 부산지역에서의 많은 계획들이 아예 엎어져 버렸다. 그러나 수십 년 후인 2014년에 재진출 하면서 장전 래미안 분양에서 대박을 터트렸다.] 기업 규모나 수도권에서의 인지도에 비하면 유난히도 [[부산광역시]](특히 동부산 지역)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던 건설 업체이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중동지역 진출 실패로 자금난에 빠지면서 1987~1992년에 '산업합리화대상업체'로 지정되어 부산지역 진출이 매우 지연되었기 때문. [[부산광역시]](당시 부산직할시)에 한신공영이 처음 진출한 것은 1985년 분양하고 1987년 3월 입주한 해운대 한신빌리지였으나 이쪽은 3층 규모의 [[타운하우스]]에 가까운 빌라였다.[*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던 [[삼익주택]]이 1975년에 부산에 진출해서 1980년대 초반까지 [[삼익비치]]로 대표되는 고급 아파트들을 대량으로 건설한 것을 생각하면 한신공영의 부산 진출은 매우 늦은 편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1980~1981년 쯔음에 부산에 진출했어도 부산지역에서 한신아파트도 고급 아파트 브랜드로 인정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후 다음 해인 1988년 11월에 부산지역 향토기업인 주식회사 삼정 및 반도종합건설과 합작으로 서부산권인 만덕에 1468세대 규모 대단지 그린코아 아파트를 공동 건설, 부산지역 향토기업인 주식회사 신익개발[* 1998년 부도]과 함께 신평동에 937세대 규모의 신익강변2차아파트를 건설하였다.[* 신익강변2차아파트는 신익건설이 부도남과 동시에 아파트 명칭을 한신2차아파트로 변경하였고 한신공영이 시공하지 않은 1단지는 신익강변타운으로 변경하였다.] 그와 동시에 근처에 소규모 저층 임대아파트 단지를 단독으로 건설한 것이 시초였으나(입주는 1990년~1991년), 본격적으로 단독으로 부산지역 아파트 사업에 뛰어든것은 1992년이었으며 그해 하반기에는 부산지역에서 처음으로 1408세대 규모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부곡동 경남한신아파트[* 지금이야 이 아파트의 과거의 위상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으나 1992년 분양 당시에는 부산에서 극초기에 20층을 돌파한 대단지 아파트로 부산에서 큰 화제를 모았으며, 1995년 완공당시 금정구 일대에서 단일 단지로는 구서주공아파트(2,180세대) 다음 가는 세대수를 자랑한데다가(민간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로는 당시 금정구 최대규모), 금정구 최초로 20층을 돌파한 고층 아파트이자 금정구 최초로 지하주차장을 갖춘 아파트로 한신공영이 [[올림픽선수기자촌]]의 시공에 참여했을때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했었고, 2006년 [[구서 롯데캐슬 골드]] 입주 이전까지 까지 금정구 대장 아파트로 유명했었다. 1990년대 당시 금정구에서 경남한신아파트의 위상은 지금의 [[래미안 장전]] 이상 가는 수준이었다. 이때 한신공영이 기업을 똑바로 운영했다면 신반포 한신아파트의 신화를 부산에서도 늦게나마 경남한신아파트를 필두로 이어갈 뻔 했었다.]를 경남섬유로 부터 단독 발주 받기도 하였으며 이때 동부산 지역에 본격 진출 하였다. 1994년에는 부산지역 주택사업을 본격화 하기 위해 부산에 작정하고 현지법인을 만드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으나 워낙 부산 진출이 늦었기 때문에 당시 기준으로 한신 아파트는 고급브랜드 임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삼익주택[* 1970~1980년대 부산지역에서 가장 알아주던 아파트 브랜드였으며 특히 당시 부산 최고의 [[부촌]]으로 통하던 [[수영구]] [[남천동(부산)|남천동]]에 위치한 [[남천 삼익비치]]로 대표되는 삼익시리즈는 부산지역 최초의 브랜드 타운이었다.], 주식회사 한양이나 지금도 잘 나가고 있는 선경건설(현 SK건설), 현대건설(현 HDC현대산업개발), 럭키건설(현 GS건설) 같은 유명 고급 브랜드 아파트들은 물론이고 부산 향토기업으로 홈그라운드 버프를 받던 당대 부산최대 건설사인 자유건설은 물론이고 [[동원개발]], 주식회사 삼정, 반도종합건설에도 인지도에서 밀릴 정도[* 부산지역 최초 진출때 향토기업과 합작한 전략을 쓴 것이 이러한 이유였다. 울산이나 광주같은 타 지역에도 최초 진출때는 향토기업과 합작하는 전략을 사용했다.]인데다가 이미 부산에는 한신주택[* 이름은 비슷하지만 이 회사의 마크는 머큐리 자동차 앰블렘과 비슷하기에 눈썰미가 있으면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이 회사 역시도 한신공영과 [[외환위기|비슷한 시기]]에 망했으나 한신공영은 그래도 건설사업부만은 매각되어 살아남은것과는 달리 이 회사는 그냥 아예 없어졌다.]이라는 비슷한 사명의 건설업체가 1970년대 후반에 훨씬 먼저 들어와서 연립주택과 아파트를 동부산 위주로 워낙 많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부산 사람들은 한신아파트 하면 한신공영 보다는 한신주택을 떠올릴 정도이며 지금도 부산에서 한신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아파트들은 한신공영에서 만든 것 보다 한신주택에서 만든게 더 많이 남아있다. 그래도 1990년대 중반이 되면 부곡동 대단지인 경남한신아파트(1995년 입주)의 성공 및 부산 중심지인 서면의 대양고무 부지에 서면 한신아파트 발주를 따내서 분양하고, [[동래구]] [[사직동(동래구)|사직동]]에서 사직한신아파트를 분양하면서 부산지역에서 나름대로 메이커 아파트 브랜드로 자리 잡는듯 싶었는데, 몇년 지나지 않아 IMF 사태로 부도나고 말았으며 이 무렵에 부도 사태로 인한 하자 보수 문제로 입주민들이 곤혹을 치루기도 했다. 결국 부산진출 타이밍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 게다가 부산지역 언론사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것도 발목을 잡은 원인이었다. 그래도 부도 이후에 워크아웃을 거치고 주인이 바뀌면서 어느정도 재기하여 부산에 재진출해 서부산지역에서 휴플러스 브랜드로 아파트를 계속 짓고 있기는 하지만, 동부산지역에서는 여전히 힘을 못쓰고 있으며 [[삼성물산]]이 한동안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부산지역에서 시망 상태가 되었다가]] 2010년대에 들어서 래미안 해운대, [[래미안 장전]] 등의 분양을 시작으로 부산지역 재진출에 대성공하여 대단지 아파트들을 계속 만들어내는것과 대조되기도 한다. 아마도 주인이 바뀐 이후에는 부산지역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으나 2010년대 중후반 들어서는 다시 부산지역에서 의욕적으로 사업을 전개하는듯 하며, 동부산권에도 IMF 사태 이후로는 정말 오래간만에 재진출 하였다. 하지만 2017년 이후 부산지역의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2018년 들어서 부산 지역업체 용적률 인센티브가 20%로 크게 상향적용되는 바람에 부산 지역 건설업체와의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이 되는 등 암초를 또 다시 만난 상황. 부산 향토기업 건설업체인 주식회사 삼정의 아파트 브랜드 [[삼정그린코아]]의 기원이 이 회사이다. 본래는 한신코아 브랜드의 연장선이자 파생형으로 한신공영, 주식회사 삼정, 반도종합건설 3사가 합작해서 만든 만덕 그린코아에서 유래된 부산지역 한정 브랜드였고 그린코아 브랜드를 주식회사 삼정과 공유하기도 했지만, 한신공영이 부도난 이후에 파트너였던 주식회사 삼정 단독의 고유 브랜드가 된것. 아이러니하게도 한신코아 브랜드는 아예 사라지지 않고 다른 회사로 넘어가서 브랜드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늦게 나온 한신 오페라하우스 브랜드는 주인이 바뀌면서 두번밖에 안쓰이고 폐기 당했고, 주인이 바뀐 이후에 나온 한신휴플러스도 실적이 신통찮아 결국은 폐기되며 2016년에 '''한신더휴'''로 교체되었다. [[구미시]]에도 한신아파트가 있다. 구미의 행정 중심지인 [[송정동(구미)|송정동]]에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