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영관계 (문단 편집) ==== [[구한말]] ==== 조선 말엽 영국은 처음에는 [[조선]]과 통상교섭을 요청하기도 하였으나 바로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당시 [[청나라]]에 우호적이었던 [[흥선대원군]]이 반대하였고 또 [[조선]]의 외교 정서상 보수적인 척양(斥洋) 감정이 짙은 탓이었다. 다만 그뿐이었고, '''의외로 당시의 다른 열강들'''[* [[프랑스]]는 [[병인양요]],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 [[독일]]은 국가적인 마찰은 아니었지만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있다. [[거문도 점령 사건]]은 조선과 영국의 직접적인 대립이 아니다. 거문도를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려는 의도에서 점령한 것이지 조선이 통상수교를 거부한 대가로 점령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당시 거문도 주민들과 영국 군인들은 오히려 서로 친하게 지냈다.]'''과는 달리 별다른 군사적/외교적 마찰이나 충돌을 빚지 않았던 특이 케이스'''. 그러다가 1876년 [[일본]]이 먼저 [[강화도]]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되면서 조선이 본격적으로 개국하였다. 이에 1883년에 [[조선]]과 [[조영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여 미국에 이어 조선과 외교를 수립한 2번째 서양국가가 되었고, 주(駐)조선 영국 [[영사관]]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일본]]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었을 때는 외교관계가 단절되었고, [[영일동맹|이 시기 영국은 일본과 동맹 관계였기 때문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조선 지배를 사실상 묵인했다. 1885년에는 러시아의 남하정책 봉쇄의 일환으로 [[거문도]]를 [[거문도 점령 사건|약 2년 동안 점거한 일도 있다.]] 이 외에도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 존 로스가 서양인 최초로 한국사를 전문적으로 다룬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존 로스가 참고할 수 있는 한국사 관련 사료는 극히 한정되어 있었고, 그의 한국사 책에서 다룬 내용은 당시 청나라 사람들이 한국 관련하여 알고 있는 피상적인 내용을 만연체로 묘사한 것이 주가 되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3690604|#]] 존 로스는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을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를 침공한 [[페르시아 전쟁]]에 비유했던 바 있다. 이와는 별개로 일부 영국인들이 일제에 맞선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역사가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대한매일신보]]를 창립한 [[어니스트 베델]], [[의병]] 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유명한 [[프레더릭 매켄지]] 등이 있다.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인도-버마 전선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 [[한국광복군]]이 [[영국군]]이나 [[대만군|중화민국 국군]]과 함께 합동작전을 펼친 적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