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옥 (문단 편집) === 한옥에 대한 교조적 이미지 === || [[파일:서봉총 발굴 광경.jpg|width=100%]] || [[파일:일제강점기 평양 거리2.jpg|width=100%]] || || 일제강점기 경주 [[서봉총]] 발굴 당시 찍힌 2층한옥의 모습 || 일제강점기 평양 시가지 속 2층한옥의 모습 || || [[파일:평양상점가.jpg|width=100%]] || || 일제강점기 평양시내 2층 한옥 상점가의 모습 || 하지만 이런 2층 한옥이나, 화장실, 세면대가 설치된 한옥을 보고 "이건 한옥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건 한마디로 '''편견에 의해 범하게 되는 오류이다.''' 당장 상술한 한옥의 역사 문단과 위 사진속 한옥들처럼 한국의 전통 가옥은 수천년의 긴 세월 동안 당연히 특정한 형태를 늘 유지해오지 않고 1층, 2층, 3층 등의 형식으로 층수와 모습이 변하여 왔다. 그랬다면 진정한 한옥은 [[움집|땅파서 풀떼기를 얹은 집]]이 되어야 한다. 시대적 발전과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계속해서 변형되고 계승되어 온, 유동적인 이미지로서 이해하는 것이 한옥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며, 당연히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려온 전통 가옥 양식의 특정 요소들을 가져와 현대인의 요구와 기술과 접목시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당연히 전통에 반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한옥의 역사의 연장 선상에 서서 전통을 계승하고 유지해나가는 일인 것이다. 여담으로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수한 단층 한옥이 조선 후기에 절대적으로 보편화된 것에 대해서는 17세기 조선 [[소빙하기]]설과 연결지어서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당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사람들이 나무를 다 땔감으로 베어가 자재로 쓸 목재가 없어지고,[* 구한 말 기록과 사진을 봐도 한양 주변의 산들이 전부 민둥산이다. 복구에 실패한 북한은 지금도 마찬가지.] 구들장을 까는 것이 필수가 되면서 이런 무거운 바닥을 2층 이상에 설치하긴 힘들기 때문에 복층 구조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져서 전국적으로 수수한 단층 한옥 형태로 나아가게 됐다고 한다. 이것 관련해서는 [[경신대기근]]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