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인관계 (문단 편집) === 20세기 === [[6.25 전쟁]] 당시 인도도 직접 병력을 파견하여 참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인도가 [[소련]]과 우호 관계를 맺었던터라 [[이승만]]이 인도의 참전을 거부했고, 이에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불쾌하게 여긴 일이 있었다. 당시 인도는 친소 공산 국가가 아닌 중립국을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엔군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반대할 명분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인도는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의료지원국 및 중립국 감시단 형태로 참전하긴 했다. 인도군은 한국에서 포로 수송 및 각종 구호 업무 등을 수행했다. 그러나 포로 심사를 두고 중립국행 문제로 [[이승만]] 대통령은 [[인도군]]이 한국에 들어오면 다 쏴버리겠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심사를 방해했고, 한국과 인도의 사이는 매우 안 좋았다. 전후 이승만 대통령이 [[대만]], [[필리핀]] 등 아시아의 친서방 국가들을 모아 아시아 반공협회를 만들려고 하였다.[* 흔히 이승만 대통령을 세계적인 [[반공]]의 지도자라고 할 때 그 근거가 되는 단체다.] 그러자 인도의 네루 총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계획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공 협회를 만들게 되면 아시아 국가들이 친공과 반공으로 분열될 위험성이 있다고 주장했고,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이승만 대통령을 "위험한 인물"이라고 혹평하였다. 한편, 인도는 반공(1세계)도 친공(2세계)도 아닌 비동맹(3세계) 진영의 모임을 만들어 지도자 역할을 자처하게 된다. 이후, 인도는 1973년 [[대한민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으며 동년에 [[북한]]과도 수교하였다. 여담으로 인도의 [[독립기념일]]은 8월 15일로, 한국의 [[광복절]]과 날짜와 의미가 같다. 1999년 1월 25일, [[김종필]] 총리가 인도와 이스라엘, 이집트, 팔레스타인을 방문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4435102?sid=10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