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일관계 (문단 편집) === 정치 체제의 차이 === 한국은 공화제이자 대통령중심제인 반면 일본은 입헌군주제이자 의원내각제(의회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양국민 사이 정치 의식의 차이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냥 체제가 다른 것뿐이라면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세부적인 차이가 있을 뿐 두 나라 전부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민주국가이다. 마찬가지로 입헌군주제인 영국이나 스페인 등에 대해서 한국이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역시 공화제이자 이원집정부제인 프랑스와 입헌군주제이자 의원내각제인 영국이 상호 국민감정은 어떨지 몰라도 서로의 정치 체제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유라시아 외의 국가를 봐도 마찬가지인데, [[아프리카]]의 경우 [[알제리]]와 [[모로코]]가 아무리 서로 사이가 안 좋아도 서로의 정치 체제(알제리 - 공화제/이원집정부제, 모로코 - 형식상 의원내각제가 도입된 반입헌군주제)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으며, [[아메리카]]의 경우 [[미국]]과 [[캐나다]]가 [[미국 독립 전쟁]]이라는 역사적 악연과 별개로 서로의 정치 체제(미국 - 공화제/대통령중심제, 캐나다 - [[영연방 왕국|영연방 입헌군주제]])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일관계에서 이런 차이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이 과거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고 이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 체제가 주효했기 때문이다. 패전 이후에 반성을 했다고는 하지만 식민지배를 당한 국가에서 그들이 자신의 대표자로서 여긴 천황이 그리 좋게 보일 수는 없다는 점, 패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전쟁 당시 책임을 져야 했던 천황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점은 전후 일본 내에서도 비판을 받은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영국 등 유럽의 왕실은 그저 놀고 먹는 다이아 수저라는 인식을 스스로 개선하며 스스로 관광 상품화되거나 군 자원입대 같이 노력을 하는 등 왕실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반면에 일본의 천황 가문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단, 천황 내외는 국제 행사에 참석하거나 외국을 방문하여 보조적 외교업무를 수행하므로 마냥 놀고먹는 직책은 아니다. 다만 일본 정치권에서 천황이 가지는 사회적, 국제적 지위나 위상을 이용하며 또 용인하지만 이들이 자국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금지시키며 기본적으로 '''천황 가문을 현실 정치권의 감시와 보호를 받는 하위 권력'''으로 대우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입헌 군주제 국가와는 달리 왕실이 가진 실질적 권한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영국만 해도 엘리자베스 여왕이 최근 브렉시트 관련한 발언을 했다고 보도가 되거나 국내 정치문제에 조언 형식으로 의견을 말하기도 하며, 네덜란드의 경우에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3689639|왕실의 일족이 국영 스타트업 지원기관 특사를 맡는 등]] 현실정치 참여에도 활발한 반면, 일본은 천황 가문의 대외적 행보나 국내 정치 참여에 매우 큰 제약을 두고 있어 원치 않게 폐쇄적 지위만을 누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고대 신정 사회의 우두머리와 같은 종교적 상징으로서 폐쇄적 지위만을 누리며 또 일본 국민들은 이런 자들을 천황 폐하라고 부르며 따르는 모습을 봤을 때, 한국인들의 눈에 이러한 일본은 시대에 뒤떨어진 중세 봉건적 사회로[* 여담으로 일본 내에서 한국의 [[헬조선]]과 유사하게 자국을 비하하는 단어로 중세 잽 랜드(中世ジャップランド)가 있는데, 이 역시 일본의 전근대적 모습을 비하하는 단어이다.] 보이기 쉽다. 일본도 천황의 존재 자체를 하나의 문화적 형식으로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아졌지만 극우파들이 이따금씩 천황을 내세워서 구 일본 제국 시절을 상기시키는 망언을 하기라도 하면 그게 단순히 문화가 아니라 정치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신경 쓰게 만드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현재의 모습이 2차 대전 패전 이후 많이 개선된 것이란 사실이다. [[메이지 유신]]부터 2차 대전 패전까지 천황은 정말 [[제정일치]] 사회에서처럼 '''살아있는 신'''과 같은 숭배의 대상으로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와 유사했다. 따라서 천황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최고위층으로 극히 제한되어서 당시 일본 국회의원들이나 내각의 각료들도 실제 천황을 직접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러니 천황이 직접 민중들과 만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방송 출연이나 언론 인터뷰, 공개적인 대중행사 따위는 전혀 없었고, 심지어 일본인들이 천황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건 [[옥음방송|2차 대전 항복 방송]]이 처음이었다. 그때도 천황은 일반인들은 아무도 안 쓰고 오로지 천황가에서만 쓰는 고상한 궁중용어로 연설을 했기 때문에, 민중들은 방송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만큼 보통의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저 멀리 구름 속에 떠있는 신비로운 절대자였다. 그러던 것이 패전 이후 천황제 유지에 골몰하던 히로히토 천황은 전쟁 책임을 벗고, 미군정에게 천황제의 필요성을 어필하기 위해서 스스로 대중 접촉에 나서게 된다. 항복 선언 직후부터 미군정 통치기간 내내 폐허가 된 지방들을 순회하면서 민중들을 직접 위문하고, 하사품을 내리는 등 대면 접촉을 늘리면서 스스로를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자애로운 군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였고, 이것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리적으로 일본은 [[섬나라]]이고 한국은 [[반도]]라는 것도 영토 관념에 있어 차이를 만드는 점 중 하나이다. 섬나라는 주어져 있는 섬으로 곧 영토가 규정되는 반면 반도는 영토로서의 형상이 반은 주어져 있고 나머지 반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즉 바다와 맞닿은 부분은 눈에 보이는 한계선으로서 확실하게 그 경계를 보여주지만 대륙과 맞닿은 부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영토를 규정하고자 하는 마인드 자체가 섬나라와는 달라지게 된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독도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배타적 경제수역 안에 포함된 섬이기 때문인데, 섬나라에서 영토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자연국경]])임에 비해 반도국에 영토는 뺏길 수도 있고 뺏을 수도 있는 것이다. 거기에 기본적으로 반도국은 [[대륙]]에 대해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빼앗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도 마찬가지로 독도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을, 일본은 그런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령으로 주장하는 원인 중 하나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독도가 명기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일본은 "서류에 나와 있지 않았으니까 우리 땅"이라는 거고, 한국은 "옛날부터 자연법상으로 인정받은 땅이었다"라는 입장이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봤을 때는 양국 모두 겹쳐지는 경제수역 안에서는 공평하게 조업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데도 넘어오는 중국에 비하면 실제로 경제적인 이해관계 안에서의 충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두 나라를 암묵적으로 성립시키는 정치체제가 디테일한 부분에서 다르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