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홍구 (문단 편집) == 성향 == [[대한민국의 진보주의|진보적]] [[민족주의]] 성향과 강한 [[평화주의]] 성향이 섞였다고 볼 수 있다. 본인도 스스로를 '진보적 역사학자'로 평한다. 한홍구 교수가 대중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바로 [[김일성]]에 대한 평가. '''김일성은 20세기형 민족주의자'''라는 평을 남긴 적이 있다. 그리고 [[김일성]]의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은 그 이후 남북전쟁, 우상화 및 독재를 떠나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태극기의 태극 및 건곤감이 문양은 사실 중국의 책인 「 주역 」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태극기나 인공기가 아닌 남북한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통일국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 저서 < 대한민국史 > 1권에서. [[2001년]]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8.15 평화축전 기간 김일성의 생가인 [[만경대고향집]]을 방문해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평화 통일 이룩하자"라고 글을 남기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당한 사건이 일어난 무렵, 강정구 교수의 행동을 칭찬하며 진정한 평화통일을 이루려면 남한 사람들은 북한의 김씨 왕조 체제를 찬양해야 하고, 북한사람들은 남한의 투표민주주의 체제를 찬양해야 한다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그러나 이후 강정구 교수가 "광복 후 공산주의를 선택했어야 한다" 라거나 "미국이 6.25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 달 안에 전쟁은 끝나고 인명피해는 1만명 이하였을 것]"이라는 심히 [[종북]]주의자스러운 말을 남기자 한홍구 교수는 강정구 교수를 비판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0&oid=020&aid=0000318065|#]] 그리고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당시 [[전두환]]에게 한 평가를 보면 [[종북]]보다는 극단적인 평화주의 성향으로 보인다. 한홍구 교수는 아웅산 테러 사건 당시 [[전두환]]의 행동을 이렇게 평가했다. >(북한의 아웅산 테러 이후) >해설: >[[전두환]] 대통령은 버마에서 귀국하자마자 전방부대로 향합니다. 그리고 보복이라는 독단적인 행동을 할 경우 반역행위로 간주하겠다는 강경한 뜻을 군에 전달합니다. 그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 >한홍구: >"전쟁을 했을 때 피해가 두려웠던 거겠죠. [[전두환]]은 군인입니다. 사실 지금 현재 '''제일 두려운 거는 민간에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깐 실제 전쟁이 일어났을 때……저도 겁 없이 여러가지 활동을 했지만 제가 평화운동을 하면서 제일 두려웠던 순간은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 가서 '''전쟁이 무섭지 않다고 할 때''' 그리고 [[치킨호크|'''군대를 가 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청와대 지하 벙커에 모여갖고 전쟁을 논의하고 있을 때.''']] 저는 민주진영이기 때문에 [[전두환]]을 그렇게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전두환이 집권 기간 동안 가장 잘한 일이 __아웅산 사태를 평화적인 무드로 갖고갔고 더 이상 확산시키지 않은 부분은……'''지나놓고 보면은 그래도 전두환 정권에 점수를 줘야할 대목입니다'''__.」 >---- >[[KBS]] 다큐멘터리 "아웅산 테러 그리고 2013" 中 당시 아웅산 묘소 테러는 국제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으며[*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항목에서도 보이듯 이건 남한에 대한 북한의 선전포고로도 부족한 '''한국판 [[진주만 공습]],[[사라예보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차 대전때처럼 전세계가 미쳐돌아가던 시기도 아니고 가뜩이나 냉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베트남 전쟁]],[[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등으로 인해 무한대의 군비경쟁을 벌이면서까지 체제경쟁이 가능한가에 대한 회의가 팽배한 시점에서, 한 나라의 국가원수에 대한 암살 및 암살 시도는 그 국가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되는 것이 국제법이며, 더군다나 테러 장소로 택한 곳도 제3국, 하필 미얀마의 [[국부]]로 대접받는 [[아웅산]] 장군의 묘소였으니 미얀마 입장에서도 자국의 성역에서 이딴 테러 짓을 벌이는 북한을 결코 좋게 봐줄 수가 없다. 적국에 대한 참수작전을 벌여도 하필 그런 곳에서 한건 당시 북한의 최대 악수라고 볼 수 있다. 이건 마치 미 대통령이 중국의 자금성을 방문했는데 갑자기 대만이나 하다못해 인도도 아니고 갑자기 러시아의 요원이 나타나서 거길 폭파시키는거랑 똑같다.--[[3차 세계대전|어]]--] 당시 [[공산주의]]에 대한 강경자세를 보이던 [[로널드 레이건|레이건]] 대통령이 북한 폭격을 검토하고 [[주한미군]]을 증파했고 김일성은 아웅산 테러를 실시한 [[김정일]]을 비판하며~~제 아들 간수도 못하는 놈이 무슨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중국과 소련에게 중재를 해달라며 필사적으로 매달렸지만 소련은 '''한국과 미국의 제한적 공습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주소련 미국대사관에 전달하였고, 진짜로 '''북한이 지도에서 지워질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중국만이 김일성의 요청을 받아들여 미국에게 공습 반대의견을 전달하였다. 하지만 당시 중국의 군사력은 냉전의 한 축이었던 미국에게 비할 바 없었기에 김일성의 불안감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는데, 전두환은 그 시점에서 전방 사단을 일일이 돌면서 "'''내 명령 없이 움직이면 반역자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군 장성들을 모아 같은 취지로 발언하면서 진정시켰다.[* 이 덕분에 전두환은 [[1988년]] 3월 [[영국]]과 [[서독]] 의원들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정식 추천되었는데 그 당시 전두환의 평화 수호를 위한 업적으로 제시된 것이 [[KAL기 폭파 사건]]과 이 아웅산 묘 테러 사건 때 전두환이 보여준 대처였다.[[http://www.ggdaily.kr/sub_read.html?uid=80325|#]] ] 그런 점에서, 실제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국민감정이 외교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21세기 한국이었다면 진짜로 휴전협정 파기와 북한 진격까지 갈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제5공화국 정부가 '''북침을 하지 않았으니 북한으로서는 고마웠음은 틀림없지만''', 그 시점에서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한반도 내에서의 남북간 전면전으로 퍼지는 것을 막고 대신 외교적으로 북한을 고립시키자]]는 전략을 채택함으로써[[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4/03/25/0503000000AKR20140325182300043.HTML|#]] 한홍구의 말마따나 북한은 급한 불을 피한 대신 국제사회로부터 막장 국가로 낙인이 찍히다시피 했고 결국 2020년 현재 중국 및 일부 친북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국제적으로 거의 고립된 상태에 놓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한홍구의 저 발언도 군사적인 충돌도 일어날 수 있었던(그리고 그것이 누가 봐도 당연해 보였던) 급박한 상황에서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방법 대신 끝까지 외교적인 대응 방법을 모색했던 전두환 정부의 선택에 점수를 주면서 더불어 '''민간에서는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기 위한 취지이기도 하다. 군사독재정권의 수괴이고 '''그 자신이 군인인''' 전두환도 전쟁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저렇게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애썼는데 정작 민주정부의 수장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전쟁이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있냐는 뉘앙스라고 할 수 있다. 한홍구를 두고 종북이냐 아니냐를 평가하자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데, 흔히 종북이라 분류되는 이들 가운데 북한에 대한 강경한 군사 행동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전쟁을 피하려는 발상이 무조건적으로 종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고(그래서도 안 되고) 이런 점에서 한홍구를 딱 잘라서 종북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극단적인 평화론자'''로 보면서 그에 대한 비판을 행해야 할 것이다. 강정구 교수를 칭찬하면서 "진정한 평화통일을 이루려면 남한 사람들은 북한의 김씨 왕조 체제를 찬양해야 하고, 북한사람들은 남한의 투표민주주의 체제를 찬양해야 한다"한 발언은 어찌 생각하면 참 순진한 이상론에 가깝달까... 한홍구를 종북이라고 보기 어려운 또 한 가지 근거로는 북한 내 '친일파' 청산 한계를 언급한 기사를 들 수 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255.html|링크]] 종북 세력이라면 북한이 만악의 근원인 '친일파'를 뿌리 뽑았다며 칭송해야 하는데, 한홍구는 '''그렇다고 북한이 아무런 문제가 없느냐'''며 도리어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분명 친일파 청산의 좌절은 우리의 현대사에서 잘못 끼운 첫 단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모든 문제를 친일파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과연 친일파만 제대로 청산하였으면 모든 문제가 다 풀렸을 것인가? 그렇다면 친일파 청산에서 남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했던 이북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한홍구는 식민지 체제 협력자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 계열의 진보 학자들보다는 더 너그러운 견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도, [[민족문제연구소]]등은 거의 항상 [[비시 프랑스]] 치하에서 친 [[나치]] 보도를 해 처형당한 언론인의 예를 들며 아주 강력히 비판하지만, 한홍구는 일제 하 합법 공간에서의 한계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동아일보에서 [[보천보 전투]]를 보도할때 [[동북항일연군]]을 비적이나 마적으로 표현한 것을 식민지 체제 협력 사례로 매도할 수 있지만, 한홍구는 그런 표현 하나하나까지 항일적으로 사용하면 신문 보도 자체가 이뤄질 수 없고, 오히려 이런 사건을 보도한 것 자체가 독자들에게 일제에 대한 자신감이나 저항 의식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그래도 [[중일전쟁]] 당시의 지원병 독려와 같은 몇몇 행위는 명백한 잘못이며, 광복 후 재발간시 이러한 잘못에 대해 확실히 사죄했으면 좀 더 바람직한 언론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일성]]이나 식민지 체제 협력자에게도 조금 너그러운 시선을 갖고 공은 인정하자는 태도로 미뤄보아, 한홍구는 민족주의와 평화주의의 틀 안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나 이념을 포용하자는 견해를 가진 것 같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