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화 (문단 편집) == 역사 == 1952년 현암 김종희가 부산에서 '''한'''국'''화'''약(韓國火藥) 주식회사로 창립한 게 그룹의 뿌리이다. 1955년 귀속재산 조선유지 인천공장을 불하받아 1959년 화약류 국산화를 달성했고, 1964년 신한베아링공업을 인수해 사업 확장의 기틀을 만들고 1965년 한국화성공업, 1966년 태평물산을 각각 세운 후 비서실을 설치했고, 1968년 삼호그룹으로부터 [[제일화재]]를 인수해 금융업에도 손을 뻗었다. 1969년 미국 유니온오일과 합작해 '경인에너지'를 세워 대한석유공사와 호남정유에 도전장을 던지기도 했다. 1973년 호텔/관광개발업체 태평개발을 세우고 같은 해에 [[빙그레(기업)|빙그레]]의 전신인 대일유업을 인수하였다. 1976년에 서울프라자호텔을 열어 서비스 사업에까지 진출하며 중견기업을 넘어 대기업 반열에도 오르게 되었다. 위와 같은 성장 와중에도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이리역(현 익산역)의 흑역사]]를 일으키기도 했으나, 그룹은 여전히 성장 드라이브를 이어갔다. [[1981년]] 비교적 젊은 나이로 김종희 회장이 사망하면서 당시 겨우 29살이던 장남 [[김승연]]이 2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1982년 [[한국종합화학]]으로 부터 [[한양화학]] 및 [[한국다우케미칼]]을 1985년 [[한양그룹]]으로부터 [[한양유통]]을, 1986년 정아레저타운 등 구 [[명성그룹]] 관광계열사들을 각각 인수해 재계순위 10위권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1990년엔 'PRO 2000' 경영혁신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뒤 이듬해에 국내 기업으로서 최초로 환경경영 'ECO-2000' 운동을 벌였다. 1992년 빙그레가 분가하고 1993년 한국화약그룹에서 한화그룹으로 명칭을 변경한 뒤 1996년 제일화재가 분가했다. 반면 모기업 (주)한화는 1995~1996년까지 골든벨상사, 덕산토건, 한화전자정보통신, 한화기계 등을 합병해 종합사업군으로 개편했고, 소그룹제도 도입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 후 폐지됐다. 그 이후 한화는 재계 6위권에 안착하여 국내 5대 대기업[* 보통 [[삼성]],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 [[SK]], [[LG]], [[롯데]]를 말한다.] 다음가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원래 이름은 당연히 한국화약 주식회사였고 그룹의 풀네임도 한국화약그룹이었지만[* 이 때문에 과거 [[빙그레 이글스]] [[한화 이글스/유니폼|유니폼]] 한쪽에 '화약가족'이라는 패치가 붙기도 했다.] 하필 본사의 영문 이름이 Korea Explosives인지라 그룹명은 Korea Explosive Group이 되어 버렸고, 고위관계자가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 측에서 이걸 '''[[남조선]] 폭파집단'''이라는 지극히 [[테러]] 단체 같은 이름으로 번역하는 바람에[* 중국에서는 기업집단(그룹)을 집단공사(集团公司)로 표기하기 때문. 다만 한국화약그룹 내지 Korea Explosive Group을 중국어로 번역하면 한국화약집단공사 내지 한국폭발물집단공사가 되어야 하는데, 아마 영문 회사명을 중국어로 번역하려고 했다가 오역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룹 이름을 한화로 바꿔야 했다. (그 근거로 자주 회자되는 것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40700099134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4-07&officeId=00009&pageNo=34&printNo=8722&publishType=00010|매일경제 1994년 4월 7일 신문]], 34면에 해당 기사가 실려 있다.) 이후 중화권에서는 화약의 [[火]] 자가 아닌 빛날 화([[华]]) 자를 써서 韓华로 표기하고 있다. 사실 한화가 화약을 통해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긴 했지만, 주력 사업들이 화약뿐만 아니라 각종 분야에 걸쳐 늘어나면서 '한국화약'이라는 기업명 자체도 변경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제일제당은 사업 분야가 설탕을 비롯한 식품 외에도 미디어, 물류, 생명공학 등으로 확장되면서 제일제당(Cheil Jedang)의 앞글자를 따와 그룹명을 CJ로 변경했다. 물론 그룹의 모태이자 근본인 [[CJ제일제당]]은 여전히 제일제당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해당 사건이 그 기폭제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