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할복 (문단 편집) == 외국 ==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자살한 경우가 몇몇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특수한 사례였고, 고대의 기록들로 신뢰성이 적다. 게다가 일본처럼 정례화된 경우가 아니었으므로 할복은 '''일본의 고유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즉 일본 이외에도 여러 국가에서도 할복은 있기는 했지만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와패니즈]]의 영향으로 할복을 잘못 이해한 외국인들이 할복 비슷한 그 무엇을 행한 경우가 극소수 존재한다. [[중국]]의 경우, [[춘추전국시대]] 전투에 나가 죽은 [[위의공]]의 시체가 온전하지 못하여 멀쩡한 부위가 [[간]]밖에 없게 되자 [[인간을 사용한 XXX|한 신하가 배를 가르고 자신의 내장을 꺼낸 후 그 안에 위의공의 간을 집어넣어 장례를 치르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공화주의 정치가인 [[소 카토|소(小) 카토]]의 경우가 유명한데, 자신이 수비하던 [[우티카]]가 [[카이사르]] 군대에게 항복하는 전날 저녁에 친구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벌인 후 배를 갈라 자살했다. 기록에 따라 손목을 긋고 자살한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있고 배를 가른 뒤 창자를 끄집어내기까지 했다는 얘기도 있다. 로마인들이 자살을 "의지의 죽음"이라고 불렀다고 하지만, 카토의 방식은 워낙 충격적이어서 [[카이사르]]가 카토의 행동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물론 카이사르의 정적이었던 [[키케로]]는 다시 카이사르를 비판하는 글을 적었다. [[조선]]의 경우에는 이렇게 일본 에도 시대에 사형으로 정립된 할복처럼 약간 비슷한 개념으로 [[사약]]이 있다. 우선 지배계급인 [[사대부]]/사무라이에게만 허락된 사형법이었고[* 여기서의 사대부는 협의의, 3대 내 [[향리]]라도 배출한 가문 수준이 아니라 최소한 중앙권력에 연줄이 있는 [[문벌]][[명가]]를 의미한다. 그래서 현직 관료의 직계라도 되지않으면 [[사약]]은 커녕 그냥 저잣거리에서 [[처형]]되었으며, [[영의정]]이니 [[판서]]니하는 고위급이라도 [[역적]]으로 몰리면 사약 대신 [[참형]], [[교수형]], 심지어 [[능지처참]]이나 [[거열형]]으로 [[끔살]]에 처했다.], 자살의 형태를 취하면서 최대한 명예를 지켜주는 방식이라는 점이라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조선의 사사와 비슷하게 당시의 사형방법 중 할복의 신체적 훼손도 제일 적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포로 홍호연이 할복 자살한 기록이 있다.[[https://www.yna.co.kr/view/AKR20110208131900005|참조]] 이 외에 [[병자호란]] 시기 [[이조(조선)|이조]] [[참판]] 정온이 [[삼전도의 굴욕|출성 항복]]에 반대하여 배를 갈라 자살을 기도했으나 사람들이 달려들어 치료하는 바람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헤이그 특사]]로 잘 알려진 [[이준(열사)|이준]]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회의장에서 할복으로 [[순국]]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헤이그 특사 중 한 사람이 이준이 회의장에 들어가 할복자살을 하여 창자를 흩뿌렸다는 민담[* 그 외에도 바리에이션은 많다.]이 전해지지만, '''이준은 할복은커녕 자살한 것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확한 사인은 일제의 방해로 회의장 입장도 못하게 된 상황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지병인 뺨종기가 도져서 사망했는데, [[어니스트 베델]]의 [[대한매일신보]]에서 오보를 낸 것이 민중들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주며 퍼진 것이다. 심지어 현대 [[한국]]에서도 할복을 했다고 일컬어지는 자들이 간혹 등장한다. 독립운동가 [[문일민]]은 1947년에 중앙청 앞에서 할복을 했다. 확실하게 죽으려고 [[수산화나트륨]]을 삼키고 행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할복하면서 가른 위장사이로 빠져나와 살 수 있었다. [[정치가]]들 [[관심병|중에는 특히 검찰 조사를 받게 도중이나 재판 과정 중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해 이런짓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짓을 한 사람 중에 유명한 인물로 1세대 조폭 [[김두한]]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1959)|김현철]]이 유명하다. 또한 한국의 민주화운동가나 재야인사 중에도 할복자살로 신념을 드러낸 사례도 있는데, 1975년에 숨진 [[김상진]] 열사, 1988년에 숨진 조성만 열사[* 그쪽은 할복 후 투신.], 2003년에 숨진 [[이경해]] 열사[* 세계무역기구(WTO) 제5차 각료회의 협상에 항의하며 [[멕시코]] [[칸쿤]]에서, 장례는 세계농민장으로 거행되었다.]가 대표적 사례였다. 이외에도 일부 죄질이 극히 불량한 [[양아치]], [[깡패]], [[조폭]] 등의 경우 아직까지도 심심찮게 이런짓을 벌인다고 한다. 다만 위의 설명대로 실제 할복은 실행하기 상당히 어려우며, 김두한이나 김현철 등이 사용한 도구도 [[커터칼]]이나 [[통조림]] 깡통 뚜껑날(...) 등이었다.[* [[야인시대]] 77회에서 김두한이 [[미군]] 법정에서 군사재판을 받을 때 최후진술을 하면서 [[통조림]] 깡통 뚜껑을 꺼내 할복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방송심의상 연출이 아닌 실제장면에 가까울 정도로 잔인한 데다가, 통조림 뚜껑이 흉기로 판정되어 모자이크 처리한 상태로 나왔다.] 즉, 할복으로 보기 어렵고 복부에 자상을 입히는 수준의 [[자해]]에 불과한 것.[* 김두한의 경우 야인시대 작 중 미군 법정에서 할복을 했는데, 자상을 입는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출혈이 수반되었지만, 미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당연하지만 이 정도로는 사람이 결코 죽을 수 없고, 고통도 심하지 않다. 결국 동정심과 이목을 끌기 위한 자살쇼에 불과한 경우가 태반이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들 중에서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04190|할복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3년 1월 23일에 삼청교육대 인권실천연합회가 한국은행 본점 앞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던 중에 발생했다. 이 영향으로 시위를 막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 사건 현장 주변을 봉쇄했으며 양씨는 119에 의해 [[백병원]]으로 옮겨졌다.[* 그 결과 2003년 12월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어 2004년 1월 29일에 정식 시행됐으나, 일부 문제점이 있었다. 이후 2018년 12월 28일, 대법원은 삼청교육대 근간이던 '계엄포고 제13호'에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정부에서는 명예 회복에 대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박근혜 탄핵]]에 대하여 [[박사모]]가 할복단을 모집한다고 했다가 일본 문화를 따라한다고 비웃음을 당하고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실행은 하지 않았다. 2023년 1월, 건물주의 [[월세]] 인상에 반발한 육회집 여자 사장님이 나체로 할복 [[시위]]를 하려다가 경찰에게 제압당했다. [[https://www.news1.kr/articles/?4925751|기사]] 할복은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를 비교할 때에 드러나는 대표적인 차이점이다. 할복(정도의 퍼포먼스)을 하기 위해서는 할복을 명예로 여기는 문화와, 칼을 다루는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은 효와 [[신체발부 수지부모]] 유교적 사상 때문에 몸을 훼손하는 일에 저항감이 있었기 때문에 할복같은 자살 방법은 상상도 못했다.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한국인들이 명예나 주의 주장을 위해서 자살을 했지만, 그 중에서 할복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 한국인은 할복을 하지 않는다.[* 한국인이 누군가를 도의적으로 비난할 때 "할복하라!"는 말을 꺼내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이는 자기가 비난하고자 하는 대상에게 최고의 모욕을 주기 위해 "넌 살 가치도 없으니 자살이나 해라. 근데 그냥 죽지 말고 칼로 네 배를 스스로 가르고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라"라는 의미의 악담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일본문화에서 할복이 사무라이가 자신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까지 내놓는 숭고한 행위로 포장되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개죽음인데 그 방법도 지극히 고통스럽기까지한 미개한 자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상기한 사과 일화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일본에서는 너무나 사소한 문제라도 명예를 지키려는 사무라이의 숭고한 정신으로 교과서까지 실렸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병맛 넘치는 야만인 문화에 불과하다. "겨우 사과 하나가 존속살해와 자살로 2킬 포함해 도합 3명이나 죽어야 될 일인가? 목숨 알기를 우습게 안다." 이게 한국의 반응이다. 물론 한국문화에서도 자결을 무조건 야만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민족 또는 국가를 향한 충심이나 대의 정도는 있어야 의미있는 자결로 여기지 사과 때문에 죽었다고 하면 그냥 후손들까지 두고두고 조롱 받을 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