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함풍제 (문단 편집) === 죽음 === 아무튼 이때 함풍제는 앞서 말했듯 수도를 버리고 [[청더|열하]]의 [[피서산장]]으로 몽진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중재에 나섰고, 북경에 남은 함풍제의 동생인 [[공친왕]]의 주도로 1860년 [[베이징 조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러시아는 중개 수수료 명목으로 [[연해주]]를 차지했다(…) 참고로 연해주는 만주와 함께 여진-만주족의 성지였다. 조약은 체결되었지만 크게 상심한 그는 외국 공사와의 친견을 거부해 계속 열하에 있었다. 비참한 처지에서 도피하기 위해서인지 열하에 있는 동안 함풍제는 연회와 공연 감상에만 열중했고, 곧 병사하였다.[* 유언장은 불태워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