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합덕읍 (문단 편집) == 관광지 == * 합덕성당 [[천주교 대전교구]] 산하의 성당. 1998년 7월 28일에 대한민국의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1890년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양촌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1899년에 당시 초대본당주임이었던 퀴를리에(Curlier, J. J. L.) 신부가 현 위치의 대지를 매입하여 성당 건물을 건축하고 성당을 옮겨 오면서 합덕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61년 합덕읍 운산리에 신합덕 성당이 생기게 되어 구(舊) 합덕성당이라고 부르다가, 1997년 다시 합덕성당으로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정면의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인 이 성당은, 3개의 출입구와 창들이 모두 [[무지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외벽은 붉은 벽돌로, 창둘레와 종탑의 각 모서리는 회색벽돌로 쌓았다. 창 아래와 종탑의 각각 면에는 회색벽돌로 마름모형의 장식을 하였다. 현재 존재하는 성당 건물은 1929년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다. [age(1890-01-01)]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조선의 천주교 박해|천주교가 박해를 받을 때]]는 [[순교]]의 장소가 되기도 한, [[가톨릭/대한민국|한국 천주교]]의 발상지 역할을 담당하였던 곳이다. 뒷뜰에는 성직자 묘지가 있다. 첫번째 묘지는 이 매스트르(1808~1857) 신부 묘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최양업]] 토마스 신부, 최방제[* 유학 중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프란치스코 신학생의 스승이었다. 1852년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전교하다가 황무실 공소에서 선종한 인물이다. 2번째 무덤은 홍병철(랑드르, 1828~1863) 신부 묘이다. 1861년 우리나라에 입국, 전교하다가 병사하였다. 3번째 무덤은 백문필(패랭, 1885~1950)신부인데 1921년부터 1950년 피납되기까지 있었다. 현 성당 건물을 지은 인물이다. 1950년 [[성모승천]]대축일 전날 축일 준비를 위해 [[고해성사]]를 집전하다가 납치되었는데 시신은 현재 대전 사정공원 애국지사 묘에 묻혀 있다. 4번째 무덤은 심재덕(마르코, 1908~1945) 신부인데 1942~1945년까지 백문필 신부 보좌로 있다 병사하였다. 합덕성당은 성소 못자리로도 유명하다. [[사제]] 30명, [[수녀]] 54명 수사5명([[수도자|수사, 수녀]]는 1990년 통계)을 배출하였다. 각종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 등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 신리성지 1866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5대 교구장 다블뤼 안토니오[* [[한국 103위 순교성인]] 중 하나] 주교가 한국 천주교회사를 위한 비망기를 이곳에서 집필하여, 조선의 [[카타콤바]]로 유명하다. * 합덕수리민속박물관 농경문화의 유산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박물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