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항연 (문단 편집) == 행적 == 하상 사람으로 장군이 되어 기원전 224년에 [[이신(전국시대)|이신]]이 [[진(통일왕조)|진나라]] 병사 20만을 이끌고 평여, 언영 등을 함락시키자 이신을 기습해 남군을 탈환했으나, 기원전 223년, 진나라 장수 [[왕전]]이 60만 병사를 이끌고 왔을 때 1년간 장기전 끝에 패하여 초왕 [[웅부추|부추]]가 포로로 잡혔다. 한편 항연은 [[창평군#s-1]]을 초왕으로 옹립해서 회남으로 들어가서 저항을 계속했지만 기록에 따라서 항연의 죽음에 관한 기록이 달라서 대치되는데, 기원전 223년에 기에서 왕전에게 패해서 죽었거나 또는 창평군이 죽자 항연이 자살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전국시대 말기에 [[진(영성)|진나라]]에 맞서 저항한 이미지'''는 중국 전역에 강한 인상을 남겨서 한동안 생존설도 나돌았으며, 후에 [[진승·오광의 난]] 당시엔 [[진승]]과 [[오광(초한쟁패기)|오광]]이 각각 [[부소]]와 항연을 사칭하는 등 '''반([[反]]) [[진(영성)|진]]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이 있어 이후 실제 항연의 후손인 [[항량]]과 [[항우]]가 봉기할 때 많은 이들이 항씨 가문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호응해 들어왔다. 국내와 중국의 인터넷상에선 항연의 봉호가 [[백기(전국시대)|백기]]와 [[이목(전국시대)|이목]]과 같은 무안군(武安君)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정작 항연이 무안군으로 표기된 역사사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상의 정보오염인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