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방신학 (문단 편집) == 교황청의 제재 == 하지만 [[가톨릭]] 자체는 공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조직인데 [[요한 바오로 2세]]는 중남미의 군사독재 문제에 관해서 문제의식을 깊이 느끼고있기는 했지만 당시 공산국가였던 폴란드 출신이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감 또한 강했다. 더불어 교회의 지난날 정치적 과오로 인해 교회가 정치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좋지 않게 비칠 공산이 농후했다. 다시 말해, '''종교가 정치에 예속화 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억지로 [[성경]]을 현실 정치에 끼워맞춰 해석한다는 문제도 있었다.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라는 말처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기에 무력투쟁은 안 된다는 것. 결국 교황청은 해방신학을 탄핵하고 [[1985년]]에는 유력한 활동가인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에게 속죄의 침묵을 명했다. 그 후 레오나르도 보프 前 신부는 [[환속]] 후에 결혼해서 살고 있으며 더 이상 사제직을 수행할 수 없다. [[1986년]]에는 부당한 폭력적인 공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제한적인 무장 항거를 인정하기는 하였다. 2013년 레오나르도 보프 前 신부의 친동생인 클로도비스 보프 신부[* 형 신부와 해방신학의 동지였다.]의 인터뷰를 통해서 해방신학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단죄를 받아들인다고 말하며, 복음 정신으로 덧칠된 정치적 운동이라고 고백했다. 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되는 라칭거 [[추기경]]이 머릿말을 쓴 '''<해방신학 훈령>'''을 보면 이 입장이 더욱 명백해진다.[* 다만 이 요약문은 어느 정도 이 훈령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또, 해방신학의 중추 역할을 했던 사제, 주교들의 [[성추행]] 등 여성 편력 문제가 어우러져 교황청에서 아무래도 인식이 나빴던 해방신학을 더 나쁘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여하간 사회 개혁을 주장하는 진보적 신학=해방신학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며, 해방신학에 비판적이라고 해서 사회 개혁에 적대적인 것도 아니다. 당장 해방신학의 주적인 [[베네딕토 16세]](라칭거 추기경)만 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전후하여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입장을 취해왔다. 아래는 "해방신학 훈령"을 요약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