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적 (문단 편집) === 동아시아의 해적 === 지금껏 주로 유럽 쪽의 해적을 설명했지만, 동아시아라고 해서 해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대표적인 해적은 [[왜구]]. 고대부터 빈번히 신라를 침공해 약탈하고 고려 말과 조선 시대에 이르는 긴 시간동안 한반도와 중국 남부 해안지방을 약탈했다. 이 당시 해적들은 대부분 왜(일본)지방의 해적이었지만, 중국에서 기원한 해적도 있으며 통일신라의 해적인 [[신라구]][* 일본에서 해적질하다 사로잡힌 [[현춘]]이 자신을 포함한 휘하의 해적들이 신라 왕의 명을 받고 쳐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한 것을 근거로 해적이 아니라 '그냥 신라 해군'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만, 당시 신라구와 마주쳤던 일본은 신라구와 신라 해군을 크게 구별하지 않고 그저 신라인이 쳐들어왔다는 식으로 기록했다.]는 수시로 대마도나 혼슈에 상륙해 약탈을 벌여 일본의 여러 기록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여진족]] 위주의 해적인 [[도이]]도 있었다.[* 연해주 같은 바닷가에서 살았던 여진족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항해에 익숙했는데, 특히 여진 해적들은 동해에서 해적질을 자주 벌여 [[일본]]의 [[쓰시마]]와 [[규슈]]까지 쳐들어갔다![[http://todayhumor.com/?humorbest_1645299|#]]] 규모가 큰 해적들은 수십 수백척씩 선단을 이끌고 호령했다. 특히 명말 청초의 혼란기에는 명나라의 쇠퇴 + 일본의 전국시대 + 서양의 대항해시대가 폭발적으로 맞물리면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였다. 명나라 시기에 해적들 중에서는 [[리마홍]]이라는 인물이 중국 남부를 약탈하다가 스페인령 필리핀의 루손 섬을 약탈하다 벌어진 두 차례의 [[마닐라 전투]]도 유명하다. 또한 해적왕 [[정지룡]] 같은 인물은 타이완을 정복한 아들 [[정성공]]의 기반을 마련해줄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청이 [[대만]]을 정복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쇄국 정책을 펼친 이후에는 기세가 주춤해졌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서양과의 교역이 커지며 다시 중국의 해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청나라 해군도 반정부 성향의 중국 해적들과의 교전에서 연패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 이 중국 해적들은 광둥의 해변 마을을 습격해서 여러 마을을 파괴하고 수천 명의 주민들을 살육하고 노예로 잡아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는 남중국해의 실질적 지배자였던 [[정일수]]가 있는데, 이 사람의 선단이 영국, 포르투갈 등 당대의 해양 강국들의 해군력을 능가했다고 한다. 그녀의 선단은 무력이 아니라 황제가 사면제의를 내놓는 등 정치공작을 통해서야 겨우 해산되었다. 청나라도 못 억누른 막대한 선단을 자랑하는 이들 중국 해적들은 청나라의 요청을 받은 서양 열강들이 나서서 185~60년대에 대대적인 소탕작전으로 갈아버리고 나서야 겨우 잠잠해졌다. 허나, [[남중국해]]와 위의 [[말라카 해협]]은 여전히 해적소굴이다. 1704~1705년 무렵 숙종실록을 보면 장비호(張飛虎)라는 [[청나라]] 해적이 10여 만 명의 무리에 수백 척의 선단을 거느리며 청나라에 맞섰다는 내용이 언급된다[[https://cafe.daum.net/historywar/2LjP/193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