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적 (문단 편집) == 민주적(?)인 모습들 == >1. '''누구나''' 중요한 사건에 대한 투표권이 있으며 아울러 신선한 식량이나 독한 술을 똑같이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 인종,나이 상관없이 '''누구나''' 투표권이 있다는 것에 주목. 실감이 안난다면 명예혁명으로 의회선거를 하던 영국조차 재산기반 제한선거를 하던 게 18세기이며 보통/평등선거가 보편화된 건 '''2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걸 명심하자.] >2. 아무도 돈내기 카드 놀이나 주사위 놀이를 해서는 안 된다. >3. 저녁 8시면 모든 등불을 끈다. >4. 머스킷 총, 권총 및 단검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고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간수한다. >5. 여자나 아이를 배에 태우지 않는다. >6. 전투 중에 배를 떠나면 죽이거나 무인도에 버린다. > >찰스 존슨이 해적에 관해 쓴 18세기에 쓴 책에 소개된 해적의 규율 예시 위험하고 거칠며 아무 규율없이 제멋대로인 생활을 한 무법자 이미지가 강하지만, 놀랍게도 집단 내의 규율은 꽤나 엄격하고 현대 기준으로 봐도 민주적이었다. 이런 것들을 해적의 규율(Pirate Code)이라고 불렀다. 세부적인 내용은 해적선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엄격하고 민주적인 규율을 강조하였으며, 배라는 특성상 다른 나라 선박에도 적용되었다. 민주주의 지수만 놓고보면 21세기 기준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많은 해적들이 일종의 민주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한 번 선장이 된다고 해서 죽거나 은퇴할 때까지 직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선장처럼 선원들도 당연히 난폭하고 거칠었으므로 재깍재깍 말 잘 들을 거란 보장은 없었기에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파워로 억누르던가, 존경심을 받을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던가, 그도 아니면 선원들한테 인기가 많아야 선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선원들과 의견차이가 보이는 식으로(예로 항로결정을 하는데 선원여론과 선장의견이 다른다든지) 선원들 인망을 잃으면? 선장이 찍어누르고 독재하는게 아니라 부하들이 불신임 투표로 해임해버린 뒤 '''선거로 선장을 새로 뽑는다.''' 바솔로뮤 샤프가 1680년에 해적선장이 된 것도 이런 투표제도에 의한 것이다. 항로를 못 결정하면 역시 투표로 결정했다. 투표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다.[* 물론 당연하게도 전투 도중에는 선장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모든 민주적 절차는 평시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선원을 받을 땐 국적도 신분도 인종도 가리지 않았다.[* 당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된 기록들을 보면, 영국과 아메리카 출신이 가장 많지만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는 물론 1% 정도지만 스웨덴이나 덴마크까지 북유럽 출신도 발견된다.] 카리브 해의 해적 선장들은 도망노예도 받아들여[* 주로 쿠바 등 카리브해 주변의 플랜테이션으로 팔려와 강제노동하던 흑인들. 탈출하더라도 갈 데가 없어서 해적질에 참가하는 경우가 있었다.] 당당한 선원으로 대접해 줬다고 한다. 심지어 [[바솔로뮤 로버츠]] 떼거리는 붙잡혀 재판을 받을 당시에 백인 187명, 흑인이 75명으로 무려 '''1/3이 흑인이었다고 한다.''' 이 흑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재판으로 다시 노예가 되어 팔려나갔다. 또한 먹잇감을 발견해서도 선장은 그저 습격제안을 할 수 있을 뿐 최종결정은 혼자 못하고 선원 투표를 해야 했으며, 그 외에도 매체에서 보이는 독불장군식 리더십은커녕 해적선장의 권한은 의외로 높지 않았다. 오히려 수틀리면 선상반란을 당해 보트 타고 쫓겨나든가 재수없으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해적은 배당금이 모이면 배를 떠날 수 있게 되는데, 장물 분배도 정해진 배당에 따랐다. 일반 선원을 기준으로 봤을 때 선장은 2.5배, [[의사|선의]]는 1.25배, 목수는 0.75배를 받았고 아이는 0.5배를 받았다고 한다.[* 선의는 부상당한 해적 동료의 목숨을 살려주는지라 추가 배당을, 목수는 전투에서 직접 목숨걸고 싸우지 않는다고 여겨 덜 받은 것이다.] 계급에 따라서도 받는 배당금이 다르다. 규칙 또한 엄격하여 취침 시간은 정확히 지켜야 되며 밤늦게 술 마시고 싶으면 갑판에서 불도 켜지 말고 혼자 마셔야 된다. 다른 것보다도 여자는 배에 절대 있을 수 없으며, 배에서 발견되면 여자를 데려온 선원은 사형이다. 현대에 알려진 여성 해적들은 '''해적질 중간에 여자임이 드러난 것'''이다.[* 항해 중에 온갖 위협에 시달리던 뱃사람들은 각종 미신을 신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배 안에 여자를 들이면 불길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시대적 상황상 여자들은 남자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을수 없기도 했기에 더욱. 게다가 이걸 빼고 현실적으로 봐도 당시 기준으로도 거친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해적선에 여자가 타게 되면 이를 둘러싸고 온갖 분쟁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해적들이 여자를 접할 일이라곤 무역상으로 위장해서 항구에 들릴때 항구 근처의 사창가에서 매춘부를 접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없다시피 했다.] 매체에서 꼭 나오는 여자 해적은 실제 역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 셈이다. 배당금이 모이면 배를 떠난다는 점은 현실의 화류계 종사자들과도 비슷하다. 다만 화류계 종사자들도 돈이 모이면 화류계를 떠난다고 하지만 그렇게 떠나는 경우는 소수인데다, 그마저도 상당수는 모아둔 돈이 거덜나거나 새로운 삶에 적응을 못한다던지, 혹은 나이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을 못했다던지, 심지어 단골과의 몸정 등의 이유로 다시 화류계로 돌아오는 일이 많은데 해적들의 경우도 배를 떠날수 있을만큼 배당금이 모이는 경우는 소수였던데다, 배당금이 많아도 해적소탕의 일환으로 식민지 총독이나 모국의 중앙정부가 사면장을 뿌리지 않는 이상은 고향에 돌아올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형벌에 대한 규정도 세세하게 있어서 당시 흔했던 [[결투]]도 정해진 무기와 방식으로만 벌여야 했고, 분쟁 방지를 위해 사적으로 싸우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였으며, 중대사항은 처형이나 중형을 내려 해결하였는데, 해적 창작물에서 흔히 나오는 '뱃가에 널빤지를 늘어뜨려 걸어가게 하기'는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그저 허구일 뿐이지만 '''무인도에 버려두기'''는 실존하던 형벌이었다. 보통 권총 한 자루, 화약 한 통, 물 한통 정도만 가지고 내려야 했으며 배가 떠나면 남겨진 해적은 알아서 먹고살면서 버티다가 배가 지나가면 구출신호를 보내 얻어타는 것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이 무인도 형벌을 실제로 받고 살아남은 사람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 그 유명한 [[로빈슨 크루소]]이다. 사실 17-18세기의 해적들은 그 당시 기준으로 어마어마한 복지와 보험, 보상으로 유명했다. 전투중 신체의 일부를 잃었을 경우 얼마를 보상해주는 가에 대한 규율까지도 세세히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신체를 잃은 선원은 은퇴를 하든지 자기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해적선에 머물며 동등한 배당금을 받았다. 이렇게 혁신적인 규율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뱃사람들이 겪었던 열악한 대우와 처분에 있었다. 해군이나 사략선에서 싸우다가 부상을 당할 경우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버려졌으며 그렇게 길거리에서 구걸하다 죽어가는 동료들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던 것. 여기에 더해 한 번 해적으로 찍힌 이상 다시는 문명세계를 밟지 못할 운명까지 더해져 결국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게 되고 이에 따라 자율적으로 지키게 된 해적의 규율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이들만의 고유의 사회가 등장하면서 [[나소]]의 대규모 무허가 항구와 마다가스카의 '리베테리아'라는 해적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