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햇볕정책/평가 (문단 편집) === 긍정적 평가 === * 우선 1948년 '''분단 이후 50년 세월 대부분을'''[* 1974년 '''[[7.4 남북 공동 성명]]'''으로 잠시 해빙분위기가 일었고, [[노태우]] 정부 시기인 1991년, 6.15 공동선언의 바탕을 마련한 '''남북기본합의서'''가 서명된 역사가 있다. 다만, [[7.4 남북 공동 성명]]은 해당 문서에서 보듯이, 비록 '''강경 일관 분위기의 얼음을 깼다'''는 중요한 의의가 있지만, 남북 서로가 정권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이용한 측면도 있었다. 동시기에 우리나라는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유신헌법]]이 추진되고, 북한은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명분으로 [[주체사상]]이 들어왔기 때문.] 적대적인 대립 분위기로 일관되었던 상황을 뒤집어, (결과가 어떻든 간에)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남북 교류를 처음으로 시작해냈다.[* 보수 일각에서도 처음으로 시도된 대북유화정책이라는 점 때문에 마냥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북한과의 대화는 특정한 사항이 있을 때 일시적으로, 고위급 공무원들끼리만 했었지만(7.4 때 이후락과 김일성이 만난 것처럼.) 1985년 [[이산가족]]들을 위한 고향방문 행사 및 예술단 공연,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이후 '''남북의 "실무자"급 회담'''이 햇볕 정책을 시작으로 재개되었으며, 이는 [[금강산 관광]], [[개성 관광]], [[개성 공단]] 같은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교류 및 정상회담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 2004년 월간 "[[신동아]]"에서는 [[http://shindonga.donga.com/Library/3/01/13/103052/1|"휴전선을 사실상 뒤로 물리게 하였다."]]고 호평한 바 있다. 인민군 6사단, 64사단, 62포병여단이 송악산 이북과 개풍군 일대로 옮겨 '''"휴전선이 사실상 10 ~ 15km 북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김병연 교수는 '''"북한이 배부를 때 [[5.24 조치]]가 이뤄졌다."'''는 걸 지적하면서, “북한은 '''더 이상 폐쇄 경제가 아니다. "시장"이 (북한) 인민의 생명줄'''이 되고 있다. 북한 경제는 진화하는데, 대북 정책은 진화가 없다. 변화된 경제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대북 정책은 성과를 낼 수 없다.”고 [[http://shindonga.donga.com/3/all/13/175008/1|주장하였다.]] 하단 내용은 인터뷰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 Q: 1990년대 식량난 이후 한국이 ‘퍼줘서’ 살아남았다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 A: “많이 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잘못된 레토릭이 많아요. 햇볕정책의 모든 것이 좋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의도하진 않았으나 햇볕정책이 북한의 '''초기 시장화(市場化)에 기여'''한 부분이 있어요. 시장에 들어갈 물자와 돈이 남쪽에서 흘러들어갔으니까요. 이명박 정부의 압박 때문에 북한의 시장이 커졌다고 주장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건 억지입니다. 경제를 전혀 모르는 분이 많아요.” > Q: 5·24조치는 어떻게 봅니까? > A: “우리도 손해입니다.” > Q: 사과받아야죠. > A: “사과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5·24조치는 우리 기업에 손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북한 제품이 중국산으로 둔갑해 들어옵니다. 우리 기업이 북한에 줄 오더를 중국 기업에 주면 중국 기업은 북한에 아웃소싱을 합니다. 예전에는 [[거간]](居間)을[* 물건을 팔고 사는 사이에서 흥정을 붙이는 일] 한국 사람이 했는데, 지금은 중국 기업이 합니다. 5·24조치로 우리가 또 잃어버리는 게 있습니다. 북한 경제구조를 변화시키고 인적 자본을 키울 기간을 놓치는 겁니다. '''통일 후 한국이 번영하려면 북한에 기업가가 생기고 인적 자본이 성장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경제학의 기회비용 개념조차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봉쇄, 압박은 비용이 안 든다고 착각해요. 그러나 압박정책 때문에 중요한 기회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 Q: 금강산 관광은 성격이 다릅니다. 개발 지원이나 경협과 달리 독재집단에 현금을 직접 주는 거죠. > A: “금강산 관광이 사회 침투력과 변화력에서 제한적이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결국 시퀀싱이겠지요.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게임이니까요. 금강산을 주고 원하는 것을 받아내야 합니다. 정치하는 분들이 경제 과정의 임팩트를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중세가 근대로 바뀐 과정에서도 경제구조의 변화가 핵심입니다. 시민의 자유를 허락하고 정치적 민주화로 나간 과정도 마찬가지고요. '''경제구조의 변화는 도도한 파도여서 모든 것을 집어삼킵니다. 파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어야''' 합니다. 정책 결정자들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776|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문정인 교수]]는 햇볕정책의 실행 기간이 너무 짧았고, 만약 더 지속되었다면 긍정적 효과를 봤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711201.html|제임스 호어 전 북한 주재 영국 대리대사]]는 "햇볕정책 국면으로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에도 영향을 미쳤다. * 2008년 '북'이 비록 머지않아 복구하기는 했으나 영변 냉각탑 폭파를 직접 실시하게 된 원인 중 하나다.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991242|#]] 최근 탈북한 태영호 전 공사의 경우 지원을 하는 것 정도는 괜찮되 북한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거나 지원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조건을 단 바 있다. 구체적으로 현대식 병원 서비스 제공이나 설사 쌀 배급 중 7~80%를 북한 정권이 가져가고 주민들은 10~20%만 가져가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쌀은 주되 대신 배급 행사 등을 통해 그것이 남한 쌀이라는 점을 알게 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 햇볕정책을 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에서 통일부를 맡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은 2001년 새로 출범한 미국 부시정권의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 전임인 [[빌 클린턴]]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거부하고 뒤집어 정책으로까지 나아간데서 유래된 말. 때문에 북미 유화분위기 및 수교 얘기까지 수면에서 떠오르던 클린턴 정부 시기와 미 대북정책의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 '''110억달러의 대일청구권''' 행사가 주 골자인 북한-일본 수교의 무산 후, 이북이 생존권 차원에서 핵 프로그램을 재가동한 '''부시 정부의 대외정책 실패작'''이지, 햇볕정책에 책임을 지우는 건 온당치 않다고 주장한다. 부시 정부의 미국이 조금만 유연하게 나갔더라면, 06년 북한 핵실험 대신 다른 결과물이 나왔을 거라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