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경종 (문단 편집) == 생애 == 허경종은 592년에 항주 신성현에서 급사중 허선심의 아들로 태어났다. 허경종은 초기 수재로 천거되어, 회양군 사법서좌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허경종이 관직 생활을 시작한 대업 연간의 [[수나라]]는 [[양제(수)|양제]]의 잇따른 실책으로 인해 점차 망국의 길로 빠지던 상황이었다. 수나라 백성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 가운데, 강도로 피난해있던 양제는 [[우문화급]]에 의해 살해된다. 허경종의 아버지인 허선심은 이때 우문화급에게 굴복하지 않아 결국 살해된다. 허선심이 살해된 뒤, 허경종은 정처 없이 떠돌다가 [[이밀]]에게 의탁한다. 이밀은 허경종을 원수부 기실로 삼았으며, 허경종은 [[위징]]과 함께 기록을 관장한다. 618년 이밀이 몰락한 뒤, 허경종은 당나라에 귀순하여, 연주(漣州) 별가가 되었는데, 진왕 이세민이 허경종의 명성을 듣고는, 그를 벽소하여 진왕부 학사로 삼았다. 진왕 이세민이 [[당태종]]으로 즉위한 뒤, 허경종은 저작랑으로 제수되었고 수국사를 겸임하였으며, 중서사인으로 승진한다. 636년 태종의 황후인 [[문덕황후 장손씨]]가 세상을 떠날 때, 조정대신들이 문덕황후의 장례식에 참여하였다. 이때 장례식에 참석했던 허경종은 구양순의 용모를 보고 그를 비웃다가 ~~엄중한 국상(國喪) 자리에서 [[얼평]]을~~ 탄핵을 받아 홍주(洪州) 도독부 사마로 좌천되었다. 그뒤 허경종은 다시 조정으로 복귀하여, 급사중, 수국사를 맡는다. 허경종은 태종의 지시로 무덕실록과 정관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고양현남으로 책봉된다. 태종이 고려를 정벌할 때, 허경종은 장안에 남아 태자의 대리청정을 보좌한다. 잠문본이 죽자, 허경종은 잠문본을 대신하여 검교중서시랑이 되었다. 649년 태종이 세상을 떠나고 태종의 태자인 이치가 [[당고종]]으로 즉위한다. 이때 허경종은 우지녕을 대신하여 예부상서로 임명되었다. 당시 허경종은 풍앙의 재산을 목적으로 자신의 딸을 풍앙에게 시집 보냈다가, 어사로부터 탄핵을 받아 정주(鄭州) 자사로 좌천되었다. 허경종은 652년에 다시 입조하여 위위경, 홍문관 학사가 되고 수국사를 다시 겸임하였다. 허경종은 고종이 [[폐후 왕씨(당고종)|황후 왕씨]]를 폐위하고 [[측천무후|소의 무씨]]를 세우는 것을 논의할 때 여기에 찬동하였고, 뒤에는 [[장손무기]], [[저수량]], 한원 등을 무고하여 좌천시켰다. 허경종은 태자빈객, 시중으로 임명되고 우상, 광록대부, 태자소사, 동동서대삼품[* 동중서문하평장사와 같은 의미이다. 당시 당고종 시기에 대대적인 관명 변경이 이루어져, 중서성을 서대로 부르고, 문하성을 동대라고 불렀기 때문.]을 역임하였다. 이후 672년에 세상을 떠났고,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양주(揚州) 대도독으로 추증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