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소(삼국지) (문단 편집) == 생애 == 매달 초하룻날마다 향리의 인물을 골라 비평해 여남의 '''월단평'''(月旦評)[[https://blog.naver.com/jonghah1/222975414061|출전(出典)]]이라 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허소의 월단평으로 등용된 사람들이 매우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들도 많고 뛰어난 인물들도 많아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허소의 월단평을 받아보려고 애썼다. 허소가 여남태수 [[서구(삼국지)|서구]]에게 기용되어 군의 공조가 되었을 때 허정을 배척해 봉록을 얻을 수 없게 해 허정은 혼자 힘으로 살아야했다고 한다. [[교현]]이 [[조조]]에게 허소를 만나볼 것을 권해서 조조와 만나게 되었다가 허소는 조조가 난폭한 자로 소문난 지라 두려워 입을 열지 못하다가 재촉하자 마지못해 대답하는데, >'''[[조조/평가|그대는 태평세월의 간적(奸賊)이요, 난세의 영웅(英雄)]]이라''' 이 말을 들은 조조는 크게 웃었다고 한다[* 서술하는 역사서에 영웅과 간웅이 계속 뒤바뀌는데,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라'''라고 쓰여진 책도 일부 있지만, 후한서 허소전에는 "태평세월의 간적, 난세의 영웅"으로 되어있다. '삼국지가 울고 있네'의 저자인 리동혁은 조조의 삶을 볼 때 후한서의 표현이 더 사실에 부합할 거라고 저서에 적었다. 어차피 장차 천하에 난세가 도래할 것이 뻔했기에, '간적'이라는 평은 빈말에 불과하였고, 따라서 남아있는 '영웅'이라는 평이 조조의 맘에 들었던 것이다. [[카츠마타 토모하루 삼국지]]에서 허소가 조조를 "치세의 간적, 난세의 영웅"이라고 평가하는 걸로 묘사되었다. 연의에서는 정사 무제기의 문구를 차용해 난세의 간웅이라 하자 조조는 그것도 좋다며 크게 웃었는데, 이 일화를 통해 아무리 악인일지언정 평범한 범인이 아니라 천하를 떨게 만들 인물이 된다면 만족한다는 조조의 '''야망과 그릇'''을 보여주는 서술적 장치로 사용되었다.] 조조와 [[양표]] 등 여러 사람이 초빙하려고 했지만 모두 거절했으며, 중원에서 일어난 전란을 피해 양주 땅으로 피신했다가 [[유엽]]을 보고 세상을 보좌할 만한 인재라고 평했다. 자신은 [[유요]]에게 몸을 의탁했으나 [[손책]]이 공격해 유요가 패하자 같이 달아났는데, 회계로 도망가려고 하는 유요에게 회계는 부유하고 실한 곳이라 손책이 곧 탐낼 것이기 때문에 예장으로 피할 것을 제안했다. 유요와 함께 예장으로 피난하지만 46세에 허소는 곧 풍토병으로 사망한다. 어떤 사람이 [[유요]]에게 [[태사자]]를 써보라고 권하자 유요는 "내가 그를 썼다가는 허자장이 나를 비웃을 것이오"라고 말했을 정도로 인물의 평에 대해서는 이름있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허소는 태사자가 배신을 할 상이 보인다고 평했는데 유요는 그 말을 듣고 태사자를 기용하지 않고 홀대해서 배신당한다.[* 정확히는 태사자가 손씨네 가문을 죽을 때까지 섬긴 것으로 보아 허소가 평가한 태사자는 '유요에게 부적합한 인물'이지 '배신의 달인'이 아니다. 태사자의 성향이나 행적을 생각하면, 어지간한 인물 밑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차라리 본인이 군벌의 수장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 예장기엔 허소의 귀신 이야기가 기록되어있다. [[심계]]가 예장태수로 있을 때 대낮 대청에 어떤 사람이 나타났는데, 무사복을 입고 노란 두건을 쓰고 있었다. 그 사람은 스스로 여남 평여현 사람인 허소 자장이라 밝히며 장례를 다시 해달라고 한 뒤 사라졌다. 심계는 그의 무덤의 위치를 알 수 없어서 초혼제를 지내 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