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헌애왕후 (문단 편집) === 왕위 계승을 노리다 === 1009년 정월 임오(壬午)일[* 16일]에 천추전이 화재로 소실되어 헌애왕후는 거처를 장생전(長生殿)으로 옮기고 목종은 병을 얻어 정무를 보지 못했다. 이때 김치양이 헌애왕후와 자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김치양과 헌애왕후의 아들은 부계가 [[김씨]]이므로 왕조 교체를 기도한 것이나 다름없다.]을 목종의 후계자로 책봉하려다 왕위를 넘본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데[* 일단 헌애왕후는 연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의 후비들에 대한 열전 중 헌애왕후에 대한 기록에서도 김치양이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고 했다고만 나올 뿐 헌애왕후의 동조여부는 나오지 않는다. 헌애왕후에 대한 평가가 결코 좋을 리 없는 조선시대에 고려사가 편찬된 것을 감안했을 때, 이렇게까지 언급이 없다면 사실상 헌애왕후는 연루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김치양은 [[유충정]]에게 [[뇌물]]을 주면서 도와달라고 했지만 유충정은 거절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