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헌종(조선) (문단 편집) === 요절 === 세도가 [[신 안동 김씨|안동 김씨]]를 견제하며 [[왕권]]을 힘겹게 잡아가는 시도 중에 [[1849년]](헌종 15년) [[7월 25일]][* [[음력]] [[6월 6일]].], 향년 21세의 이른 나이로 [[창덕궁 중희당]]에서 [[사망|승하]]했다. 헌종은 어느 순간부터 [[각혈|피를 토하며]] 소화 불량 증세를 자주 보였고 [[설사]]가 심해지며 [[얼굴]]에 갈수록 심한 부종 증상이 나타나 의원을 통해 [[약]]을 조제하고 치료하면서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매번 반복하다가 사망하였다고 전해진다. >오시에 창덕궁의 중희당에서 승하하다 >----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에 임금이 >'''[[창덕궁|창덕궁(昌德宮)]]'''의 '''[[창덕궁 중희당|중희당(重熙堂)]]'''에서 승하하였다. >---- >- '''《[[헌종실록]]》 16권, 헌종 15년([[1849년]], 청 도광(道光) 29년) 6월 6일 (임신) 9번째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kxa_11506006_009|#]].] 이는 현대 [[의학]]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평소 [[정력]]에 좋다는 [[음식]]을 많이 복용하였다는 일화로 미루어 급성 [[간염]]이나 [[간경변]]의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성기능 장애를 극복하려고 녹용과 인삼을 꾸준히 복용한 것을 보아 [[신부전증]]을 앓다가 심장 질환이 발생해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높다. 죽기 직전 다급히 의원을 불렀으나 결국 병을 다스리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조선/왕사|후사]]를 보지 못하며 세상을 떠났는데, 생전에 후사를 보지 못하고 요절한 탓에 '''__[[정조(조선)|정조]]의 마지막 [[남자]] [[직계]] [[후손]]__'''이기도 하다. 아버지 [[효명세자]]도 헌종과 비슷한 나이에 [[각혈]]하며 쓰러졌고, 이후 [[요절]]한 것을 보면 [[효명세자|아버지]]와 비슷하게 체질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