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헥토르 (문단 편집) === [[중세]] [[기사도]] 문화 === 중세 시대에는 다른 쟁쟁한 그리스 영웅들을 제치고 [[아홉 위인]] 중 하나로 칭송을 받았다. 참고로 나머지 여덟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율리우스 카이사르]], [[다윗]], [[여호수아]], [[유다 마카베오]], [[아서 왕]], [[샤를마뉴]], [[고드프루아 드 부용]]. 하나같이 인류 역사와 신화에 길이 남을 위인들이다. 욕심, 분노, 우정 등 사적인 감정에 휩쓸려 행동하는 아킬레우스에 비해[* 일리아스를 보면 가관이다. 하루종일 빡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든가 군사들 한복판에서 큰소리로 엉엉 울기도 한다. 물론 [[고대 그리스]]인의 윤리관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잘잘못을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 이성을 강조하던 고전기 그리스와 달리 그 이전 시대에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것이 일반적인 영웅의 모습이었다.] 헥토르는 국가, 가족과 명예, 규범을 위해 싸우는 훌륭한 무인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이를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세 유럽 서사시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롤랑의 노래]]에선 ''''인류 최초의 기사(First knight) 헥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살해당한 걸로 나오는 [[아스티아낙스]]는 살아남아 [[프랑크 왕국|프랑크 왕조]]의 선조가 되었다고 나온다. 리메이크작인 [[광란의 오를란도]]에서는 로제로와 [[브라다만테]][* 작가의 스폰서의 선조라는 설정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를 비롯한 프랑크 왕조의 주요 인물들이 헥토르의 후손으로 나오고 그의 무구가 내분을 일으킬 정도로 가치 있게 나오기도 한다. 롤랑의 무기인 [[뒤랑달]]도 헥토르의 것으로 묘사된다. 중세에서 얼마나 헥토르가 높게 평가받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로마 제국]]의 시대를 영광으로 여기던 중세의 인식에서도 비롯된다. [[독일]], [[프랑스]], 심지어 [[영국]]까지도 자신들이 트로이의 후손이라는 슬로건을 걸면서 어떻게든 로마와 엮으려 했기 때문. 심지어 이러한 인식은 [[제국주의]] 시대에까지 이어져서 로마와 엮이지 못하면 황제라는 칭호도 쓸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을 정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