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대모비스 (문단 편집) === 2000년 이전 === [[파일:현대정공 초장기 기업광고.png]] 1977년에 "고려정공"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회사이며, 창립 초기에는 [[컨테이너]]와 [[H빔]] 등을 주로 만들었다. 단순 컨테이너 제작이 저렴한 경쟁제품이 쏟아져 나오자 냉동컨테이너 등의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연명했다. 1980년 경일요트를 합병해 요트 생산을 했다. 1985년 현대차량을 합병해 철도차량[*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주도의 빅딜사업 1호로 현대/대우/한진의 철도차량부문을 통합하게 되는데, 이후 대우의 지분을 인수하여 [[현대로템]]이 된다.]을 생산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서울교통공사 4000호대 VVVF 전동차]] 1차분과 [[한국철도공사 3000호대 전동차]] 1차분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VVVF 전동차]], [[한국철도공사 341000호대 전동차]] 이다.] 1980년대 후반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해제됐다.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기술을 조달하여 당시 [[현대자동차]]를 꽉 잡고 있던 [[정세영]] 회장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중복투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주영|왕회장]]은 '''완성차''' 사업 분야를 신규 투자하게 했다. 1989년 항공기 사업[* 이때 [[BK-117]]의 국내 생산 라이센스를 취득해 민간헬기를 생산한 적도 있다.]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1991년 [[갤로퍼]]와 [[싼타모]]를 현대정공(지금의 현대자동차 울산 5공장)에서 생산하게 하고, 판매ㆍA/S를 [[현대자동차써비스]]에서 대행하기도 했다. 참고로 현대자동차써비스는 당시 별개의 법인으로 존재하였으며 정몽구의 것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후 정몽구는 [[현대산업개발]]과 현대자동차를 숙부인 정세영과 맞바꾸게 되었다. 1994년 항공사업부문을 현대기술개발로 분사했다.[* 철도에 이은 빅딜사업 2호. 1996년 현대우주항공으로 변경했다가 현대/삼성/대우의 항공사업을 통합해 현재의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된다.] [youtube(X1gLrt22wZM)] 1999년 현대정공 변속기 사업부문을 한국DTS(現 [[현대트랜시스]])로 물적분할했다. 1999년 정부 주도의 [[빅딜]]을 통해서 철도차량제작 부문을 신규법인 한국철도차량(現 [[현대로템]])으로 넘겼다. 이후 [[현대자동차]]ㆍ[[기아자동차|기아]]의 부품 생산 부문을 양도받았다. 1999년 8월 1일자[[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73100099115006&editNo=16&printCount=1&publishDate=1999-07-31&officeId=00009&pageNo=15&printNo=10434&publishType=00010|#]]로 자동차 생산사업부를 현대자동차에 넘겼다. 2000년 요트생산부문을 현대라이프요트로 분사시켰다. 2000년 [[왕자의 난#s-3.1]]으로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분리해 나오면서 현대정공의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교통정리가 완료되고, 법인 명칭을 현재의 '''현대모비스'''로 변경하면서 자동차부품업체로 변모한다. 이때 [[현대자동차]]에 합병된 부분이 울산 5공장이다. 이런 역사 때문인지 5공장 노조는 다른 울산 1ㆍ2ㆍ3ㆍ4공장 노조들과 사이가 안좋다. 물론 연봉 올려달랄 땐 [[위 아 더 월드]]. [* 울산 5공장은 현대차 순혈이 아닌 때문인지 여러 면에서 사내 마찰이 많고 노조도 따로 논다. 심지어 파업을 결의하려 해도 곧바로 파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온건적인 입장인 잔업 거부나 특근거부로 목소리를 내고, 파업으로 결론이 났어도 총파업이 아닌 부분파업으로 투표가 가는 편이라 노조 지도부에서도 이들을 달래는데도 힘을 많이 쓰는 편이다. 이권쟁취라는 목표로는 똑같이 목소리를 내는 강성노조에 속하면서도 정작 투쟁방법과 수위에 있어서는 온건한 쪽에 속하는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투싼]]이 처음 나왔을때 5공장에서 생산을 맡았으나 주문이 폭주하여 공급이 달리자 [[싼타페]]를 생산하던 2공장에서도 생산하자고 하니 5공장은 자기네 물량 감소한다고 거부. 잘 팔릴때 바짝 팔아야되는데 계속해서 대기기간이 길어지자 결국 기아 [[스포티지]] 등으로 고객이 많이 이탈하게 되었다. 이런 양상은 이후에도 5공장에 [[현대 제네시스|제네시스]], 신형 [[현대 에쿠스|에쿠스]] 등의 신모델이 우선배치되면서 계속된다.][* 5공장에 신모델이 계속 배치되는 이유는 원래 현대자동차는 포니정이라고까지 불리던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키운 회사인데 큰 형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빼앗아서 아들 주고 동생한테는 대신, 아파트나 짓던 회사(이 현대산업개발이 원래 정몽구의 것. 보통 오래된 '''현대아파트'''는 현대산업개발에서 지은 것이고 아이파크 브랜드가 HDC현대산업개발의 것이다.)를 줘서 내보낸것인데 비해 현대정공(현대모비스+현대차 울산 5공장)은 자기가 직접 만든 것('''성골''')이다.'''] 이후 중공업 사업부문이 기아중공업(現 [[현대위아]])에 양도되었다. 부품업체로의 변모과정에서 舊 기아그룹의 몇몇 부품회사가 흡수되었다. 舊 기아정기는 한국에이비시스템을 합병한 후 카스코로 이름을 바꿨다가[* 1999~2005년까지 [[서한그룹]] 계열사가 되기도 했다.] 합병되었고, 舊 [[기아전자]][* 기아자동차 차량에 들어가는 카오디오를 납품했으며, 에어백이나 기타 부품도 만들었다. 일본 알파인과 합작 생산한 고급 기종은 기아차의 일부 고급 사양에 들어가기도 했다. 당시 기아전자와 함께 기아에 카오디오를 납품하던 경쟁 업체는 무려 전문 오디오 회사이던 [[인켈]]이었다. 인켈은 고급 사양에 들어갔다.]는 IMF 사태가 터지고 기아그룹이 무너지며 본텍으로 이름이 바뀐 뒤 현대오토넷에 현대모비스 전장사업부문과 함께 합쳐지고, 다시 현대모비스에 합병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의선]]은 과거 자신이 3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본텍을 그룹의 지주회사인 모비스에 합병시키려고 했으나 실패한 후, 자신이 보유한 본텍의 주식을 액면가의 10배가량에 지멘스에 매각하여 300억을 챙겼다. 이후 현대차는 지멘스와 컨소시엄을 맺고 오토넷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31&aid=0000062625|인수]], 합병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