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종(조선) (문단 편집) === 사망 === 조선 민생 [[역사]]상 최악의 순간을 넘긴 임금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인 [[이상 저온]] 현상(소빙기 현상)으로 인해 [[곡물]] 생산이 뚝 떨어져 조선 역사상 최악의 기근이 일어나고 각종 [[전염병]]이 연이어 창궐하는 등의 사태가 일어났다.''' [[경신대기근]] 이전의 효종 시대 ~ 현종 초기 동안 [[사치]] 풍조가 만연했던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세계 대공황|경제 대공황]]보다 몇 수 위의 [[호황]] 뒤의 [[재앙|대재앙]]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현종은 나름대로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고 현종 시대에 [[대동법]]이 [[호남]](전라도) 지역까지 확대 시행되었는데 호남이 [[쌀]] 곡창 지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민생고 해결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 듯하다. 현종은 [[붕당]]이 가장 격렬하게 날뛰는 [[예송논쟁]]과 심각한 [[경신대기근|자연재해]] 속에서 왕으로서의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그 때문인지 [[스트레스]]를 자주 받아 잔병에 시달렸고 결국 오래살지 못하고 [[1674년]](현종 15년), 30대 초반의 [[나이]]로 끝내 단명한다.[* 다혈질이었던 아내 명성왕후, 아들 숙종보다 훨씬 단명하였다. 그 명성왕후도 아들을 살린답시고 무속신앙에 기반한 무리한 얼음물세례를 받다가 당시로서는 치명적인 감기(독감)에 걸린것 때문에 죽은것이라지만 그 나이도 어쨌든 40대였음을 감안하면 30대에 죽은 현종의 단명이 더욱 체감된다. 거기다 아들이면서 자신대에는 세자였을 숙종, 그리고 아내이자 중전인 명성왕후보다도 스트레스를 받기도 쉬운 왕이라는 위치 그리고 경신대기근을 비롯한 고난들이 몰려있는 상황이면 아무리 온화한 성격의 왕이라 평가받아도 화를 어느정도 많이 낼법도 한데 실록에도 안쓰여있을 정도면 내야할 화조차도 거의 내지를 못할 정도라서 더욱 단명에 영향이 갔을것이다.][* 물론 이런 현종보다도 화를 안낼정도로 답답하게 착하면서 60대로 조선시대 치고 장수한 연산군의 왕비 [[폐비 신씨]]도 있긴하지만 이쪽은 친정 집안이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소 건강한 체질을 타고난데다(현종의 친가인 조선 왕족들은 세조 대 이후로 대대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어쨌든 왕비에 불과하였고, 되려 폭군인 남편 연산군을 유일하게 거리낌없이 대해도 무사할정도로 사이가 매우 좋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 무엇보다 이쪽은 결국 폐위가 되어서 되려 30대 후반에는 궁중생활에서 강제적으로나마 벗어난데다 친정이 박살난것을 제외하면 인현왕후와 달리 폐비인거 치고도 대우가 매우 좋았던 것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