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진영 (문단 편집) == 활동 == 현진영이 본인 [[유튜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어릴적에 [[한남동]] [[유엔빌리지]]에서 흑인 친구들과 함께 댄스배틀을 하고 놀며 성장했다고 한다. 그 덕에 초등학생 나이에 이미 [[미국]] 본토의 완성된 비보이 기술들을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실력은 같이 놀던 흑인 친구들도 배틀이 붙을때 현진영에게 의지할 만큼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뛰어난 춤솜씨로 14살때 우연히 [[한국]] 1세대 [[비보이]]팀 스파크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아 프로댄서로 춤을 추기 시작했으며 그 당시 [[비보이]] 중에 드물게 독자적으로 댄스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댄서였다고 한다. 여러 댄스 팀을 전전하면서 [[재즈]], [[발레]] 턴, 각종 스트릿 댄스 등 온갖 종류의 춤을 마스터할 수 있었고 그 덕에 독보적인 댄서로 인정받게 된다. 직업 댄서 시절에 [[박남정]]과 [[김완선]] 등 인기가수들의 [[백댄서]] 생활을 했으며 [[이태원]] [[이주노]]-[[양현석]] 패밀리들([[영턱스클럽]] 멤버들이나 [[지누션]] 등이 대표적)을 나중에 자신의 [[백댄서]]로 쓰기도 했을 정도로 댄서들 사이에서 신망과 실력을 모두 인정받았다.[* 그의 [[백댄서]] [[밴드]]격인 와와를 거쳐간 [[가수]] 중에는 [[구준엽]], [[강원래]](1집 초반), [[김송(콜라)]], 김재현, 이의정, 이의선(1집 중후반), [[김성재]], [[이현도]](1집 후반), [[션(지누션)|션]](3집)등이 있다.] [youtube(jY6bZRqEYec)] [[이수만]]에게 발탁되어 프로듀서인 [[이수만]]과 홍종화에게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한다.[* 현진영은 [[이수만]]과 홍종화에게 트레이닝 받았다고 인터뷰하였다. 당시 홍종화는 [[SM]]의 대표 프로듀서였고 몇 년 후 [[유영진(작곡가)|유영진]]이 그 자리을 맡는다. 출처-[[중앙일보]]][* 2집만 [[이수만]]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진영이 직접 [[이수만]]이 자신을 발탁해서 1988년부터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1,2,3집 모두 [[이수만]]의 휘하에서 발표.] 현진영의 춤실력은 이미 완성되었지만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고 매우 힘든 여정이었다. [[이수만]]과 홍종화는 현진영의 트레이닝을 성악의 기초부터 성실히 가르쳤고 기초를 충실히 하여 춤을 추며 안정감있게 발성을 구사하는 보컬의 초석을 만들었다. [[이수만]]의 트레이닝 방법은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체계적이고 혹독했다고한다. 훗날 현진영이 [[이수만]]과 홍종화에게 트레이닝 받은 갖가지 방법을 응용하여 물구나무 선 채 산토끼 노래하기, 뛰면서 노래하기, 산 정상까지 오르며 계속 노래하기 등등 특수발성이란 신개념 보컬 트레이닝 만들어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후배 양성을 하고있다. 현진영이 응용한 [[이수만]]의 체계적인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SM]]의 정식 훈련법이 되어 [[보아]]를 단련시키는 데 그대로 쓰였다.특히 [[동방신기]]는 아직도 한시간 이상 러닝머신 위에서 뛰면서 노래하는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이 장르로는 선구적인 가수로, [[1990년]] "현진영과 와와"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제1집 "New Dance"에서 [[한국]]에 [[바비 브라운]] 스타일의 [[힙합]]을 기반으로한 [[뉴잭스윙]] 음악을 소개했다.[* "최초"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현진영이 매우 초기에 도입한 사람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와와’는 두 명의 백댄서로 [[https://youtu.be/BbPt_ae-noM|1기 멤버]]는 [[구준엽]], [[강원래]], 2기는 [[김성재]], [[김송(콜라)]], 김재현, 이의정, [[이의선]] 3기엔 [[김성재]], [[이현도]][* 대중들이 흔히 알고 있는 2기는 이들이다. 앞서 언급된 5명은 1.5기 격이 되는 셈.], 4기엔 [[지누션]]의 [[션(지누션)|션]]이 있었다. ‘[[인순이]]와 리듬터치’, ‘[[박남정]]과 친구들’ 등등 메인가수와 댄서명을 합친 그룹명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백댄서 개념을 넘어 쇼 프로 출연이나 잡지 촬영까지 댄서와 함께하는 등 댄서와 완전히 3인조 그룹처럼 활동하는 방식은 "현진영과 와와"가 국내 최초였다.[* 2년 후 [[서태지와 아이들]]도 이 시스템을 적용한다.] 1집의 타이틀곡 '야한 여자'는 당시로서는 노골적인 가사와 힙합이라는 낯선 장르로 인해 여러모로 반향을 일으켰지만, 음악보다 춤이 더 인기를 얻었다. 후속곡 슬픈 마네킹이 음악과 춤 양쪽 모두 큰 인기를 얻으며 주목받았다. 국내 춤을 잘추는 힙합가수 중 처음으로 헤드셋형 마이크를 끼고 등장하여 2년 후 [[서태지와 아이들]]과 [[ZAM]]이 적극 활용해 1990년대 댄스가수들의 주요 아이템으로 고착화시켰다. 그러나 워낙 생소해서 그렇지 잘 들어보면 당시 흑인음악 스타일을 나름대로 잘 적용했고, 신디 사운드도 당시 국내 상황으로서는 매우 혁신적으로 흑인음악 스타일을 훌륭하게 도입했음을 알 수 있다. [[1992년]] 제2집 "New Dance 2"를 발표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 타이틀 곡인 ''''[[흐린 기억 속의 그대]]''''는 높은 완성도로 [[KBS]] [[가요톱텐]]에서 5주 1위, [[MBC]] 음악방송에서 6주연속 1위를 [[SBS]] 음악방송을 6주 연속 1위를 하는 등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당시 음악의 시대적인 느낌을 보면 그동안의 음악의 틀을 깨부수는 음악이었지만 아직도 현진영의 대표적인 노래로 남아있고 같은 앨범의 '너는 왜(현진영 GO 진영 GO)’는 '현진영 고 진영고'라는 후렴구와 랩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인기를 이어갔다.[* 훗날 [[2000년대]] 중반 연재된 [[삼국전투기]]에서 '''함'''진영이란 별명을 가진 [[여포]]군의 [[고순]]이 현진영의 모습을 하고 나와서 "함진영 고! 진영 고!"를 한다. [br][[파일:hqtDDOl.png]]] 그가 무대 의상으로 즐겨 입었던 X마크가 새겨진 알록달록한 무지개 색깔의 후드티와 큼직한 힙합스타일의 청바지는 당시 청소년 및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힙합 패션이라는 장르를 새로이 유행시키며 [[X세대]] 문화를 만들어낸 효시로 평가 받는다. 당시 [[1990년대]] 당시로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다만,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하는 팬층이 현진영과도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서태지]] 돌풍 당시 초기는 현진영, 중기는 [[이현도]], [[김성재]]의 힙합 듀오 [[듀스(음악그룹)|듀스]]가 라이벌이었다. [[1993년]]에 3집 "Int: World Beat And Hiphop Of New Dance 3"를 발표하여 '두근두근 쿵쿵'이란 곡으로 인기를 이어갈 듯 했으나, 발매 직후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되고 이때부터 방송 금지되어 긴 시간동안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1991년]] 이미 대마초 흡입 혐의로 처벌을 받은 바 있었으며 이후에 [[1994년]]에도 필로폰 혐의로 다시 체포되었다. 이후 현진영은 사실상 나락으로 떨어졌고,[* 수감과 출감을 밥 먹듯 하던 이 시기에 같이 수감되어 있던 [[전인권]]을 우연히 만났다는 에피소드가 공개된 적도 있다.[[http://m.star.mt.co.kr/view.html?no=2007041212135409531&ref=https%3A%2F%2Fwww.google.co.kr#imadnews|#]] 이 둘은 연령대도 장르도 다르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 세계가 있다는 점이 은근히 비슷하다.] [[1995년]]에 [[SM]]과의 계약이 종료되었다. 당시 [[SM]]은 현진영이 수익을 낼 시점에 [[대마초]]나 [[필로폰]]으로 구속되면서 음반과 상품을 모두 폐기시킬 정도로 큰 손해를 보았고 매니저들도 수사를 받으면서 고초를 겪게 되었으며, [[이수만]]은 그 당시 수입이 좋았던 [[월미도]]와 [[방배동]] 카페를 팔아서 [[SM]]의 부도 위기를 겨우 넘기던 절박한 상황이었다. 2007년 인터뷰에서는 [[이수만]]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고 연락도 하고 지낸다고 했으며, 2015년에도 라디오에서 ‘나에게 [[이수만]]이란?’이라는 질문에 “아버지”라고 말했다. “한참 말썽을 부릴 때도 나를 콘트롤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가슴이 뭉클하다. 죄송하다”라고. 과거 [[2000년대]] 초반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에서도 배임 문제로 [[미국]] 도피 중인 [[이수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을 준 고마운 분이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어서 "그러나 배임문제로 도피한 건 다 자기인생이니 내 알 바 아니고, 너희들이 [[미국]]가서 [[이수만]]을 까더라도 상관 없다."라고 말했다(…). 뭐 이렇게 말한 건 사실 굳이 자신이 개입해서 이수만의 범죄 행위까지 쉴드를 쳐야 할 명분은 없었기에 방송 분위기를 고려해 본인 스스로 적당히 드립을 친 거라 보는 편이 맞을 듯. [[1997년]]에는 절친한 친구이자 같은 힙합 가수였던 이탁[* 1973년 6월 9일생으로 본명은 이광민. [[구준엽]]과 더불어 [[탁2준2]]라는 듀오로 활동했으며 '흐린 기억 속의 그대'의 공동 작사/작곡가다.]과 I.W.B.H. (International World Beat Hip-hop)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고 "Stop aids Stop drug" 앨범을 발표해서 '뻗어봐'로 활동했고 힙합 명반으로 꼽히고 있다. 다만, 당시 이 그룹의 활동 짧았던 이유가 있었는데 IWBH로 활동하던 도중, 갑자기 이탁이 [[비자]]문제로 [[미국]]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여 악기와 짐을 챙겨 공항까지 배웅했는데, 그 후로 더 이상은 이탁과 만나지도, 연락도 할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제작자와의 갈등도 있던 상태에서 멤버가 해외에서 연락이 두절되까지 하자 짧은 활동을 끝으로 그룹 해체를 하게 되었다.[[https://youtu.be/DhPGY5AgkEI?t=470|I.W.B.H 해체의 진실]] [[서승만]]TV의 인터뷰에서 [[SM]] 수익배분은 6:4로 밝혀졌다. 6은 [[SM]], 4는 현진영이다. 또한 2014년 [[라디오스타]]에서 현진영은 흐린 기억속의 그대로 대박을 내면서 1억7000만원을 받았는데 쓰는데 두 달 걸렸다라고 하며 "주변사람들에게 시계나 명품 선물했다. 나 자신한테 쓰는 돈도 크게 썼다"라고 하였다. 또한 현진영이 방송에서 [[이수만]]이 현진영을 발탁할 때 트레이닝 문제로 댄서를 그만 두게 했는데 당장 현진영의 아버지가 [[신부전증]] 등의 병원비로 생계가 막막해지자 [[이수만]]은 병원비와 생활비를 데뷔할 때까지 지원해 주었다. [[2000년]]에 현재의 부인인 영화배우 오서운씨를 만나 교제를 시작하면서 오 씨의 설득으로 마약후유증, [[우울증]]과 [[공황장애]], 인성인격장애 치료를 본격적으로 마음먹게 되고, [[2002년]] 4집 발매와 동시에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서 '''마약 후유증 및 공황장애에 관한 공개 치료를 선언'''하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순천향대학교]]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하였다. 공개치료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그동안의 [[마약]]에 찌든 삶과 수감생활을 적나라하게 회고하는 등 [[마약]] 퇴치를 위해 공익 활동을 많이 하였고, 치료에서도 좋은 경과를 보이며 정상적인 행보를 보여준 덕분에 그동안 현진영을 마약 연예인으로 낙인 찍고 있던 대중들의 부정적 인식도 긍정적으로 많이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TV]] 혹은 [[유튜브]]에서 모습을 비출 때마다 [[마약]]을 복용한 걸로 인해 [[동정|오히려 마약으로 인해 현진영의 능력을 최대한 누리지 못해서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더 많다. 현진영 본인은 [[마약]]에 대해서 [[흑인]]들의 모든 것을 따라해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 [[이수만]]과 [[SM]] 아래에서 한국인이 따라하기 힘든 [[흑인]]의 필이나 감성을 조금이라도 더 재현하기 위해서 [[흑인]]들과 음악적인 교류 말고도 생활이나 놀이에 있어서까지 많이 어울리면서 따라하려고 했다고 한다.[* 물론 [[이수만]]이 [[마약]]을 하라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약]]을 접했다고. [[마약]]을 하는 것에 있어서 고통과 불안함도 있었지만 [[마약]]을 끊지 못하고 있었는데, 깜방에서 다른 죄수들과 함께 신년 보신각 종치는 것을 보다가 문득 자기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노력해 봐야 나 자신은 흑인음악을 하는 한국인이지 흑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진심으로 마약을 끊으려고 노력했다고. [[파일:HYunJY.jpg]] 5집 준비 시기에 "[[재즈]][[힙합]]"이란 새로운 쟝르의 음악을 선보이며 '중저음대 음색'과 '소리의 통칼라'를 바꾸기 위한 울림통을 키우기 위해 137kg으로 '살을 찌웠다'고 한다.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에서는 찌고 나니 저음이 좋아져서 일부러 놔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음악 작업을 하면서 엄청나게 찌웠다 뺐다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건강을 걱정해서 더 이상 안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2002년]] 4집 "21C New Dance Jin Young Vol. 4"을 발표하였고, 2006년 5집 "Street Jazz In My Soul"을 발표하였다. 2011년에는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을 냈다. 2016년에는 디지털싱글 "무념무상"이라는 [[재즈힙합]] 음원을 냈다.[* "무념무상"은 소외된 계층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일부 몰지식한 권력층과 재벌들을 향해 일침을 놓는 내용의 가사로 현진영이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소외된 계층의 심정을 느껴야 그들의 마음에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서울역에서 한 달 동안 노숙자들과 노숙을 하며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며 완성한 곡이라고 한다.[[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532456|#]]] 이후 "무념무상"은 발표한지 일주일만에 [[멜론]] [[재즈]] 부분 Top100에서 6주간 1위를 차지했다. 2017년에는 [[디지털 싱글]] "내맘대로"라는 [[재즈힙합]] [[음원]]을 냈다. 2020년에는 디지털 싱글 “나의 길”이라는 정통 발라드를 발표하며 감성보컬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2018년부터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 목요일 방송에서 '현진영 데이' 코너를 맡으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21년 3월 19일 [[김태원(음악인)|김태원]]클라쓰 방송에서 나와 [[대마초]]와 [[마약]]에 대한 명언을 남겼다. >'''피해자가 없다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피해자는 사회고, 국가입니다.''' >'''중독자가 "내가 내 돈 주고 내 몸 망치는데 그게 뭐 죄가 됩니까" 라고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그게 10명에서 ,100명 되고, 1000명에서 10000명이 되어 그 숫자가 무한 늘어났을 때, 나라가 무너지고 국민성이 나태해집니다.''' >'''여러분 귀 기울여 주세요.''' >'''이건 국가를, 사회를, 모든 이웃 사촌들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이 방송에서 하나 더 주목할 만한 발언이 있는데 [[김태원(음악인)|김태원]]이, 끊은 사람이 이 친구와 나라고 치면 끊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고 사라진 사람이 얼마나 많냐고 말했고 현진영 역시 대부분 다 사라졌다고 말했다. 현진영과 [[김태원(음악인)|김태원]] 같은 사람들을 보고 쉽게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현진영과 김태원처럼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아주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내서 끊은 것이다. 또한 현진영이 나쁜 짓을 하면 거기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작은 일에도 조심을 하는 습관을 들이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사회나 국가, 법률이 관대하고 고귀하거나 만만한 것처럼 보여도 그 이면에는 시스템을 어긴 자에 대한 냉정한 제재가 항상 기다리고 있다. 그런 거대한 시스템은 위반하는 자들에 대해 반드시 그 개인이 고통으로 인해, 위반행위를 후회할 만큼의 제재를 주게 되어 있다. 버텨낸다면 버텨내지 못할 때까지 준다. 개인들이 굳이 사서 그런 고통을 겪을 이유가 없으니 [[마약]] 등은 정말 어떤 이유에서건 하기도 전에 조심해야 한다. 2022년 7월에는 신곡인 "어마어마해''를 발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