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협객행 (문단 편집) == 협객행의 정확한 시기는? == 연성결과 함께 시대 배경이 특정되지 않은 유이한 작품이다.[* 소오강호는 명나라 시기로 명확히 확정. 영화판은 아예 1500년대의 만력제 시기로 특정한다.] 협객행과 연성결은 구체적으로 명인지 청인지부터 불분명하다.[* 연성결은 실존 인물이 청나라 말기 사람이니 청말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작품속에서 시대 배경을 찾기 어려운데다 다른 김용 작품과 연계가 없다. 정작 김용이 감수했던 드라마판들은 죄다 변발을 하지 않았다. 국내 연성결 소개에서는 옹정제 시기인 청나라 중기로 특정하는 등 시대구분이 불분명하다.] 독자들은 협객행 배경을 소오강호보다 더 뒤인 1630~1650년대의 명말청초로 추정하는 이들이 많다. 근거로는 장삼봉 사후 수백년이 경과된 극중 시점[* 장삼봉의 사망은 김용 월드 기준 명이 세워지는 1368년에 근접한 시기에 사망했을 것이다. 여기서 수백년이 경과된 명나라 시기면 최소 1470~1630년 사이가 된다.], 등장 인물들이 변발을 하지 않은 모습, 유주(渝州) 서촉표국(西蜀鏢局)의 존재,[* 표국의 시작은 보통 명말청초에 창립되어 청의 강희제, 건륭제에 융성하였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표국이 등장한다면 명말청초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용 월드에 적용하기에 맞지 않은 점은, 엄연히 원나라 말기가 배경인 의천도룡기와 명나라 배경인 소오강호에서 용문표국과 복위표국이 등장하였다. 의천도룡기를 보면 용문표국만 있는 것이 아닌 다른 표국들이 떼거지로 존재하고 연합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애초에 김용 소설이라고 해서 고증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 나올 때도 있다.] 명청시대에만 볼 수 있는 지명, 본문에 등장하는 시대연도 언급을 계산하면 1620년이 등장[* 용도주가 백자재에게 건넨 섭종태를 기록한 장부에서 庚申五月初이나 庚申十月十七라는 육십자의 경신(庚申)년이 나온다. 이를 서촉표국 시기와 맞물려 계산하면 1560년이 아니면 1620년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경신년은 작중보다 10여년 전의 시기다.] 등으로 추정할 수 있다. --명확한 근거는 아니지만 또 명말청초 설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협객도에서 등장하는 중년 남녀들이다. 작중 석파천은 협객도에서 석벽에 대해 논의하는 중년 커플을 발견하는데, 남자의 성이 원씨고 남자는 여자를 청누이라고 부른다. 이 둘이 바로 벽혈검의 주인공인 원승지와 히로인인 하청청이 아니겠냐는 것. 둘의 대화내용을 들어보면 남자는 바른생활 사나이 느낌이 물씬 풍기고 여자는 잔인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서 석파천이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것이 벽혈검의 원승지와 하청청의 성격을 그대로 빼다박았다.-- 원승지 하청청 관련한 추측은 소설 원문을 살펴본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원' 자와 '청' 자가 아예 한자가 달라서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추측은 옛날부터 여러차례 나온 바 있는데, 성과 이름이 한글 번역으로는 글자가 같은 데다가 원서에 대한 접근성은 낮다보니 생긴 오해라고 볼 수 있을듯. 심지어 인터넷에 떠도는 텍본에는 한자병기마저 원승지와 같은 '성씨 원'으로 되어있어 사람들이 검토할 생각을 품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추측이 정말 맞다면, 두 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첫번째로 벽혈검-녹정기(1630~1660년대) 시대와 완벽히 겹친다.[* 작품을 읽어본 독자들은 그리고 김용 소설들의 연계 상 저 두 작품과 협객행이 같은 시기라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두번째로 1630년대 이후는 명말청초의 극도의 혼란기인데 무림만 따로 잘 돌아가는 것이 매우 부자연스럽다.[* 협객행은 상선벌악령의 활동까지 감안하면 시대가 30년에 걸쳐있다. 1600년대 초 중국은 몰락하는 명, 이자성의 난, 청의 침입으로 극도의 혼란기였다.] 명나라 시기인 소오강호가 흡성대법, 독고구검으로 [[천룡팔부]], [[신조협려]]와 연결되는 것에 반면 협객행은 이름만 나온 장삼봉을 제외하면 어떠한 김용 소설과 연계성을 가지지 않는다. 김용 작품들의 연계를 따져보면 명나라 중기[* 확실한 김용의 언급은 없었지만 많은 매체들이 명나라 중기로 추정한다.][*위에 언급된 경신년이 1560년이고 작중시점은 10여년 후이니 대략 [[융경제]]에서 [[만력제]]로 넘어가는 시기다.] 혹은 연대미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