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렘헤브 (문단 편집) == 생애 == 평민 출신으로 군대에 들어가 실력자가 됐지만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군사령관이 된 후 왕의 대리인을 거쳐 마침내 파라오가 되었는데, 아마르나 시기 이후로 이어진 이집트의 혼란을 수습하고 안정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아멘호테프 4세]] 이후 어린 [[투탕카멘]]이 왕위에 올라서 후사도 없이 죽으면서 외척인 [[아이(파라오)|아이]]가 파라오가 되는 등 파라오의 권위가 실추된 것을 우려해서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했다. 첫 번째 부인 아메니아[* 출신은 알려진 게 없지만 아이의 딸이자 [[네페르티티]]의 동생이라는 설이 있다.]는 아이가 없었고 두 번째 [[아내]] 무트노지메트[* 네페르티티의 동생이다.]가 [[임신]] 중 사망[* [[미라]]에 [[태아]]가 들어있었다.]했으나 무트노지메트 소생이 아닌 다른 아들과 친척이 있었다. 오히려 그가 19왕조의 존경을 얻은 건 아들이 있음에도 람세스에게 왕위를 계승한 점이다. 람세스의 아버지는 군사령관 세티로 어쩌면 호렘헤브는 람세스 아버지 세티의 밑에서 군대에 있었던 인연을 통해 람세스와 친해졌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호렘헤브가 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가 아니라 19왕조의 창건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의 공식적인 치세는 무려 59년이나, 그 중 30년은 그의 전임자들인 아케나텐, [[스멘크카레]], 투탕카멘, 아이의 치세를 가로챈 것이다. 그들을 이단 파라오로 규정하고 [[기록말살형]]이 처한 것이다. 그는 [[왕가의 계곡]]에 있는 거대한 KV57(57호 무덤)에 안장되었으나, [[도굴꾼]]들에 의해 부장품이 약탈당하고 석관과 기구들이 박살나는 수모를 입었다. 그의 미라는 복구를 거쳐 19왕조 [[투스레트]] 여왕과 20왕조 세크나크테의 무덤(KV14)[* 원래는 [[투스레트]]의 무덤인데 세크나크테가 뺏어버린 것이다.]으로 옮겨졌다는 기록이 벽에 적혀있지만, 그 후에는 어떻게 된 지 알려지지 않았고 현재도 공식적으로 그의 미라로 판명된 미라가 없다. 다만 그의 무덤 내에서는 4~5구의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그의 가족들로 보인다. 그의 무덤은 2개인데 그 중 하나는 파라오가 되기 전 사카라에 미리 만들었던 무덤이다. 파라오가 된 후에는 사카라의 무덤 대신 왕가의 계곡에 무덤을 다시 만들었다. 하지만 파라오가 된 후 거기 묻히지도 않을 거면서 사카라의 무덤 벽에 새겨져 있던 자신의 얼굴에 우라에우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의 왕권을 상징하는 [[코브라]] 모양의 장식이다. 대표적으로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머리 부분에 잇는 코브라가 바로 우라에우스이다.]를 덧새기게 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죽은 두 아내는 사카라에 묻혔는데, 이 무덤은 19세기에 유럽의 탐험가들에 의해 발견되었다가 1975년 재발견되어 1979년까지 발굴 조사를 했다. 이 무덤도 고대에 이미 도굴당하고 19세기 탐험가들에 의해 유린되었지만, 그래도 수준 높은 벽화와 부장품들이 발견되었으며 무트노지메트의 미라가 발견되었다. 왕가의 계곡의 무덤은 1908년 [[영국]]의 에드워드 에어튼에 의해 발견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