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른 (문단 편집) ==== 빈 호른 ==== [youtube(jnFl1q0IYTA)] ▲ 알렉산더 바겐드리슈텔이 12대의 빈 호른과 [[팀파니]], [[타악기]]를 위해 편곡한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테마곡 녹음 장면 [[빈 필]]과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빈 지역 오케스트라에서는 F조 싱글인 빈 호른(Wiener Horn)을 사용하고 있는데, 내추럴 호른에 있던 크룩 모양이 남아있어 외관상으로 다른 호른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호흡과 함께 악기 내부에 입김 형태로 들어간 물을 뺄 때 크룩을 빼고 악기를 돌리는 식으로 빼도록 되어 있다. 또한 오늘날 대세인 로터리 방식이 아닌 듀얼 펌프식 피스톤 밸브로 되어있는 등 19세기 밸브호른에 가까운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른 오케스트라들의 상용 악기인 B♭/F조 더블 호른에 비해 고음역 연주에 상당한 힘이 드는데, 악기의 기본조인 F조 관이 저음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고음에서는 손가락으로 밸브를 조작하는 운지법보다 입술의 움직임 만으로 음을 조절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반적인 더블 호른보다 삑사리가 많이 난다. 빈 호른은 19세기 빈의 금관악기 제작자인 레오폴트 울만이 개발한 악기에서 비롯되었다. 울만은 밸브 호른이 도입될 당시부터 다양한 형태의 밸브 호른을 개발해 시험해보았다. 울만의 실험과 함께 빈 호른도 진화해왔는데, 대략 19세기 후반에는 어느정도 형태가 갖추어졌다. 지금 빈 필에서 사용되는 빈 호른은 19세기 말에 거의 완성되었고, 이후로도 소소한 개량을 거쳐 대략 1910년대에 현재의 형태로 완전히 완성되었다. 하지만 19세기말에 크루스페 등에 의해 개발/진화된 더블호른이 뛰어난 성능을 보였기 때문에 빈 호른의 입지가 약해졌다. 원래부터도 빈 호른은 빈 이외의 지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20세기초 본격적으로 더블호른이 보급되자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조차도 빈 호른을 버리고 더블 호른을 썼기 때문에 빈 호른은 사실상 빈 필에서만 사용되고 거의 사멸했다. 빈 필에서는 20세기 전반기에 입단한 1900년생~1914년생[* 1914년생 요제프 펠레바(Josef Veleba) 이후 1937년생 롤란트 베르거(Roland Berger)가 입단하기 전까지 신입단원이 없었다.]의 호른단원들이 모두 1960년대까지 빈 필에서 장기재직했기 때문에 현대까지 빈 호른의 전통이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빈 호른 사용자가 크게 줄면서 단원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고, 때문에 20세기 중반 빈 필 호른 파트에도 위기가 왔다. 1946년 한스 베르거(Hans Berger)[* 베를린 국립오페라 수석이었던 미국 오케스트라들로부터 베르거에게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가 이어지자 [[괴벨스]]의 보고를 받은 [[히틀러]]가 그를 미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의 출국을 금지시키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르거가 오스트리아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히틀러의 지시는 이행되지 못했다.]를 새로운 수석으로 영입할 때 빈 필은 처음으로 그에게 빈 호른이 아닌 일반호른을 사용하는 것을 허가했다. 베르거는 빈 필에서 레귤러하게 빈 호른을 사용하지 않은 유일한 단원이었다.[* 베르거는 빈 필에서도 B♭ 싱글호른이나 더블호른을 사용했다.] 결정적인 위기는 1957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빈 국립가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찾아왔다. 빈 필 호른의 삑사리를 참지못한 카라얀이 더블호른의 도입을 주장했던 것이다. 당시 빈 필 호른 섹션은 50~60대 단원들이 대거 은퇴를 앞두고 있던 때라 속수무책으로 카라얀의 주장이 먹힐뻔 했지만 당시 오케스트라 경영감독(Managing director)이자 트럼펫 수석이었던 전설적인 트럼페터 헬무트 보비슈(Helmut Wobisch)가 나서서 카라얀의 주장을 방어했고 오디션에서 아예 빈 호른만 사용하도록 규정을 바꾸었다. 결정적으로 당시 새로 수석이 된 20대 초반의 롤란트 베르거[* 롤란트 베르거가 공식적으로 빈 필의 수석이 된 것은 노장 단원들이 모두 은퇴한 196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50년대 말부터 베르거는 녹음세션에서 비공식으로 수석파트를 전담했으며, 정기연주회가 아닌 공연이나 해외순회공연에서 거의 항상 수석자리에서 연주했다. 이런 경우 '정식 수석'인 아버지 한스 베르거가 어시스턴트로 롤란트 옆에서 연주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다.]가 앞장서서 빈 호른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호한 결과 빈 호른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롤란트 베르거는 빈 필 역사상 유일하게 빈 호른을 사용하지 않았던 한스 베르거의 아들이었다. 롤란트 베르거는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빈 호른만 쓰도록 강요해서 사라져가던 빈 호른의 전통이 오스트리아의 젊은 세대로 확산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반면 또 다른 수석이었던 귄터 회그너는 빈 호른으로는 취업해서 밥벌어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더블호른을 가르쳤다고 한다.] 나중에 베르거의 제자들이 대거 빈의 오케스트라에 자리잡으면서 [[빈 교향악단|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빈 폴크스오퍼, 톤퀸스틀러 오케스트라 등이 더블호른에서 다시 빈 호른으로 악기를 바꾸게 되었다. 빈 호른은 울만의 제자들이 계속 제작했지만 빈 외의 지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기 때문에 빈 호른을 만들 수 있는 장인들이 점차 사라져 버렸다. 1970년대 이후에는 빈에서 빈 호른을 제작하는 제작자가 사라졌고 빈 필은 결국 1971년 야마하에 빈 호른의 제작을 의뢰했다. 처음에는 타국에서 악기를 생산하는 것에 대해 악단 내부의 우려와 불만도 있었지만, 야마하에서 만든 호른과 트럼펫의 품질이 단원들에게 호평을 받자 나중에는 빈 필의 목관악기들도 야마하에서 제작되었다. 그리하여 70년대부터 90년대말까지 빈 호른이 일본의 야마하에서 독점적으로 생산되었다.[* 사실 간터 등에서 계속 빈 호른이 생산되긴 했지만 빈 필에서는 야마하제 호른만 사용했다. 야마하 빈 호른의 개발과 생산에는 빈 필 단원들이 깊이 참여했다.] 하지만 빈 필의 명성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빈 호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더블호른을 쓰던 빈 심포니 등에서도 덩달아 빈 호른으로 악기를 바꾸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융비르트(Jungwirth), 알렉산더(Alexander), 하크슈톤(Haagston), 간터-피츠카(Ganter-Pizka) 등의 메이커에서 빈 호른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라첵, 슈미트 등도 가세하면서 빈 호른을 제작하는 제작사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빈 호른의 수요가 너무나 제한적이기 때문에 90년대 후반 생겨났던 빈 호른 메이커들 중에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곳도 있다. 1997년 빈 호른을 출시했던 알렉산더도 최근 빈 호른을 단종시켰다. 현재 빈 필에서는 야마하나 융비르트에서 제작한 빈 호른을 쓰고 있다. 그 밖에도 야마하에서 일했던 일본 장인 기무라[* 기무라 빈 호른은 특히 수석주자 슈트란스키가 한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슈트란스키가 DG에서 녹음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호른협주곡 1번도 기무라 빈호른으로 연주되었다. 기무라가 불미스러운 일로 악기 제작을 중단하였기 때문에 현재는 생산되고 있지 않다.]의 빈 호른도 사용된 적도 있다. 오스트리아 토종 관악기 제작 업체인 안드레아스 융비르트의 빈 호른은 레오폴트 울만이 19세기 후반에 개발했던 구식 악기를 복제했기 때문에 빈 필에서 전통적으로 사용오던 모델과는 3번관의 모양이 다르다. 이 융비르트제 호른은 빈 필 수석주자를 역임했던 볼프강 톰뵈크 (jun)[* 80년대부터 수석단원으로 재직하다가 현재는 4번으로 내려왔다. 동명의 아버지도 빈 필 호른 수석을 역임했으며 둘을 구별하기 위해 아버지 이름 뒤에 sen, 아들 이름 뒤에 jun을 붙인다.]가 개발에 참여하고 보급에 앞장섰다. 톰뵈크는 야마하 빈 호른 개발에도 크게 기여했지만 일본에 있는 야마하보다 빈 인근에 공방이 있는 융비르트에 소통의 편리함을 느낀 듯 하다. 2000년대 중반 한때 빈 필에서 융비르트의 점유율이 야마하를 넘어서는 듯 하다가 이후 주춤해져서, 현재는 야마하를 사용하는 단원들이 더 많다. 한편 E.슈미트에서 2014년에 새로 출시한 빈 호른은 울만과 그의 제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기존 빈 호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디자인으로 설계되었는데, 관의 배치가 완전히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각 관의 중간연결관을 빼면 B♭조 악기로도 변경이 가능한 엽기적인 작품이다. 기존의 빈 호른에는 없던 워터키도 장착되어 있다. 크룩(보겐)과 품펜밸브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 이외에는 빈 호른의 전통과는 동떨어진 악기이다. 관의 배치가 바뀌었기 때문에 크룩의 직경과 길이, 리드파이프의 길이와 테이퍼, 각 키의 튜닝관의 두께 등도 모두 달라졌다. 유튜브의 시연 동영상을 보면 기존 빈 호른보다 경질의 소리가 나는 듯 하다. 빈 호른이 고음에서는 연주하기가 무척 까다롭기 때문에 모차르트, 베토벤 등 고음이 많이 나오는 레퍼토리에서는 데스칸트 호른을 사용하기도 한다. 데스칸트 호른을 사용하는 경우 곡 전체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패시지에서는 빈 호른으로 연주하다가 필요한 부분에서만 부분적으로 데스칸트 호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빈 필에서 데스칸트 호른에 대해서는 정해진 룰은 없고 연주자마다 각자 다른 악기를 사용한다. 대체로 high F 싱글 데스칸트 호른을 사용하는데, 레히너 등에서 제작된 악기가 많다고 한다. 70~80년대 수석 주자들은 팩스만에 특별 의뢰하여 '''F'''/high F 더블 데스칸트 호른을 사용하기도 했다. 롤란트 베르거는 60년대에는 High F 싱글호른을 사용하다가 70년대에는 구형 팩스만 40에 기반하여 제작된 '''F'''/high F 더블 데스칸트 호른을 사용했고, 볼프강 톰뵈크 (jun)은 신형 팩스만 40에 기반한 '''F'''/high F 더블 데스칸트 호른 데스칸트를 사용했다. 현재 슈트란스키 이후 수석주자들은 다시 옛날처럼 싱글 high F 데스칸트 호른을 선호하고 있다. 60년대 빈 필 수석이었던 볼프강 톰뵈크 (sen)은 데스칸트 호른은 아니지만 베토벤 교향곡 7번 등에서 '''Bb조 빈 호른'''을 사용하기도 했다. 기본적은 형태는 빈 호른과 같지만 관이 짧기 때문에 크룩이 생략된 형태다. 빈 호른 제작 회사 중 하나인 하그스톤에서도 현재 Bb 빈 호른을 제작하고 있다. 역시 크룩이 없는 형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